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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치와 교육과정의 지역화

글 _ 정광순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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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치는 우리 교육의 ‘패러다임’이다

  ‘자치는 오늘날 우리 교육이 처한 시대의 관점이다.’ 시대의 관점을 쿤(T.S.Kuhn)은 ‘패러다임’이라는 말로 설명하는데, 패러다임은 햇살과 같은 것이어서 햇살 아래 사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누구나 받아야만 하고, 그래서 피하려 해도 피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쿤의 이런 설명은 미래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모두의 삶과 생활에 총체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 준다.


  지금까지 우리의 학교 교육이 걸어 온 노정을 볼 때,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교육자치는 지금부터 향후 우리가 걸어야 하는 학교 교육의 패러다임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치고 교육자치라는 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자치를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어느 나라 어느 곳이든 교육자치를 희망하고 자치를 지향해 가는 동안에는 내내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의견과 이견이 서로 갈등하고 그 과정에서 숙의하면서 비로소 안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교육자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육자치를 할 준비가 되었는가?

  모든 국가가 주기적으로 현재 자국의 학교 교육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방안을 찾는다. 그리고 그 방식은 각 나라의 전형에 새로운 방식을 접목하는 식이고 이런 점에서 하향식은 상향식으로, 상향식은 하향식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가령 연방제 국가들(영국, 미국 등)은 주 정부 중심의 자치를 통해서 학교 교육의 문법을 만들어 왔고, 그러는 동안 상향식 문화를 잘 정착시켜서 학교 만족도, 구성원의 자율 능력 등 상향식 체제가 가진 효과들을 이미 내고 있다. 오늘날 그들은 상향식에 하향식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자국의 (학교) 교육개혁을 모색 중이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 이후 빠르게 근현대 학교 교육 체제와 구조를 갖추면서 중앙집권형 정책들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켜 왔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학교 교육은 높은 성취 문화, 교육열, 고학력 등 하향식의 성과들을 거뒀다. 오늘날 우리나라 학교 교육은 그동안 중앙의 관료주의, 집단주의, 성과주의를 타깃으로 하면서 미뤄 두었던 지역형, 단위 학교·교실 중심, 학생과 교사 중심으로, 즉 상향식 학교 교육 문화, 체질, 분위기, 만족도 등을 체감할 수 있도록 체제와 체질을 보완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오늘날 교육개혁이나 학교혁신의 방향을 상향식으로 모색 중이다. 


  이렇듯 ‘하향식 → 상향식’ 혹은 ‘상향식 → 하향식’으로 체질을 보완하려 한다는 점에서 모두가 상향식과 하향식이 공존하는(독일이나 핀란드처럼) 새로운 체제 전환에 꾸준히 도전 중이다. 뻔한 말이지만 우리도 기본적으로 하향식·상향식 모두 우리 교육의 장에 존치 시키기 위해 이제 교육자치를 시작해야 한다.



상향식 정책 마련과 하향식 경험 기반

  그럼 우리도 교육자치를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중앙의 정책 차원의 기반과 현장의 경험 차원의 기반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전자는 교육자치를 하향식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면, 후자는 상향식으로 견지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첫째, 정책적 기반을 보면, 1980년대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되면서 사회적으로는 통행금지 등 봉쇄 정책들을 해제하고 학교는 두발 및 교복 자율화 등을 실시했다. 교육과정도 1981년 제4차(문교부 고시 제442호 1981.12.31.)부터 한국교육개발원을 설립하여 연구·개발 보급형으로 전환하는 등 교육과정 분권화 정책을 시작하며 중앙집권 경향을 완화·개방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변곡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제7차 교육과정(교육부 고시 제1997-15호)을 개정하면서 국가-지역-학교 수준의 교육과정 개념을 명시하고, 교육과정을 좀 더 다양화하고 지역화하는 방향을 지향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학교자율화추진계획’ 아래, 학교에서 교사가 교육과정 자율권을 발휘하는 데 규제를 가하는 29개의 지침을 폐지하고 학교 교육과정 자율화를 위한 6개 조치(연간 수업시수 20% 범위에서 증감 운영 허용, 학생의 과목 선택권 확대, 재량 활동과 특별 활동을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통합, 집중 이수, 학년군, 교과군 도입 등)를 취했다. 그리고 현재 개정 중인 2022 개정 교육과정에 이르는 동안 교육과정 재구성 등 현장의 교육과정 실행 양상이 바뀜에 따라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 주체성 개념을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 제4차 이후 교육과정 분권화 

 • 제6차 전후 교육과정 지역화 및 교육과정 다양화 

 • 2009 개정 전후 교육과정 자율화 조처 

 • 2022 개정에 즈음하여 현장, 특히 교사·학생 교육과정 주체성 강화 움직임


  이렇게 중앙에서는 하향식으로 상향식의 길을 여는 마중물을 내려보내 왔다. 앞으로도 이런 흐름이 대세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둘째, 현장의 경험적 기반이다. 교육자치는 현장, 특히 교사가 지역(Local)에서 교육과정을 개발하여 실천하는 교육과정 자율화 능력에 의존한다. 학교의 일상적인 교육활동, 문화를 바꾸는 일은 교사 집단에서 자생하는 ‘운동’으로 시작해서 새로운 ‘질서’를 형성한다. 이런 운동은 기존의 문제 해결에 도전하고 새로운 교육 문화를 정착하는 형태로 순환한다. 그동안 우리는 이런 운동을 적어도 세 번은 경험했다. 1950년대의 ‘새교육 운동’, 1980년대의 ‘열린교육 운동’, 2009년 전후 등장해서 아직도 진행 중인 ‘혁신학교 운동’이 그것이다. 이 운동을 거치면서 교사 집단은 ‘교과서 차시 재구성’ → ‘차시 개발’ → ‘단원(유닛, 주제 중심 단원, 프로젝트 등)을 개발하여 실천’하는 양상을 일반화시켰다. 이는 우리의 학교 현장이 이미 교육자치에 필요한 교육과정 자율화 경험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교육과정 자율화에 필요한 상향식에서의 정책 마련도 하향식에서의 경험적 기반도 어느 정도 갖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중앙도 학교 현장도 이미 하향식에서 상향식으로 향하는 기점을 돌아서 직진 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육자치의 꽃은 지역에서 자신의 교육과정을 갖는 것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나는 ‘국가 교육과정에 후속해서 지역에서 자신의 교육과정을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답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첫째, 우리나라 교육과정 연구 분야에서도 이 분야 연구자와 학자들이 교육과정을 국가 차원에 한정하는 용어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다차원으로 확대 사용하여 교육과정에 대한 주체의 다양성을 현실화해야 한다. 교육과정 변천에 대한 역사 연구자들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강좌나 과목으로서 학교 교과 형성의 역사를 조명해 왔다. 우리도 교과를 국가 차원에서만 개발하고 변화를 줄 뿐만 아니라 지역 차원에서의 교과목 개발의 잠재성을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국가 교육과정’과 ‘시도 교육과정’, 이 둘의 역할을 좀 더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단위 학교나 교실에서는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국가 교육과정’과 ‘시도 교육과정’의 지원을 모두 필요로 한다. 우리는 특히 시도 교육과정에 국가 교육과정과 연속하면서도 차별화된 역할을 세워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이 자신의 교육과정을 개발할 수 있도록 국가 교육과정과 시도 교육과정의 역할을 어떻게 분담해야 하는지 그 길을 찾아야 한다. 


  물론 그동안 우리도 17개 시도교육청에서 모두 자기 지역의 색채를 드러내는 활동들을 꾸준히 해왔다. 교실에서는 주변 지역 친화적인 교육 소재를 선정·조직하여 수업에 사용해 온 경험이 이미 있다. 자기 시도에 있는 것, 가진 것들을 교육 자료로 삼아서 관내 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교재를 발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시도교육청 차원에서 하는 이런 여타의 노력이 교실에서는 보조교재 정도에 그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시도 교육과정’은 총론의 지침 중심이다. 학교나 교실 입장에서 국가 교육과정과 유사하거나 국가 교육과정을 구체화하고 있어 옥상옥에 머물러 있다. 시도 교육과정이 독일 베를린처럼 국가 수준의 교과교육과정을 재구조화할 수 있는 학교교과 주제를 제시한다든지, 미국 캘리포니아처럼 교과별 성취기준 중에서 지역 성취기준을 개발해서 연방교육과정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도록 포섭하는 형태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국가-시도-학교-교실의 교육과정이 서로 상생할 수 있고 무엇보다 국가 교육과정 개발에 후행해서 교실 외부에서 개발한 여러 형태의 지역화 교육과정도 현장으로부터 환영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국가-교육청-지원청-학교가 서로 교실에서 교사가 교육과정을 개발할 수 있도록 무엇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가를 따져 보면서 자신의 역할을 찾을 때, 지역화 교육과정 개발 문화가 꽃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교육자치를 견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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