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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에서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힘’

글 _ 이선영 경기 백석고등학교 교사


  이선영 선생님은 현재 경기 백석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동안 중학교, 일반고, 과학고에서 근무했으며, 성균관대학교 수학교육 겸임교수 등을 지냈다. 또한, 학생 사고 기반 수학 수업, 개념적 이해 기반의 수학 수업 등 학생들이 수학 개념 이해를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다양한 수학교육 연구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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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로 정상적인 학교가 운영되지 못했던 건 교사로 살아온 10여 년의 인생에 정말 큰 사건이었다. 방학이 아닌데도 학생들이 학교에 없을 수도 있구나! 급하게 필요한 에듀테크를 찾아 익히고, 수업 자료를 그에 맞춰 다시 디자인하는 것뿐 아니라 출석을 재촉하고 과제를 제대로 완수하도록 전화기를 붙들고 있어야 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급급했던 학교 현장, 모든 학생이 배움을 위해 제대로 배려되었는가? 


  교사는 원격수업을 할 수 있는 업무용이든 개인용이든 노트북이 있었지만, 학생들은 휴대전화만 겨우 가지고 있거나 집에서 개인적인 학습 공간이 마련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인터넷이 집에서는 지원되지 않기도 했다. 파일로 올린 학습지를 학생들에게 출력하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가 ‘아차!’ 했던 순간이 있었다. 집에 프린터기가 있는 학생이 몇이나 있겠는가. 급하게 시작된 원격수업은 각 가정의 사회·경제적 수준과 맞물리면서 교육적 불평등을 수면 위로 올렸고, 교사들의 에듀테크 활용 능력에 따라서도 천차만별의 수업을 만들어냈다. 여러 요인이 맞물려 돌아가는 학교 현장을 보면 약 2년 동안 학교 교실보다 원격으로 더 많이 행해진 수업으로 학생들의 학력이 낮아지고, 그 차이가 가정환경과 경제적 수준에 따라 더 커지리라는 것은 예견된 결과라 생각된다. 실제로 BBC 뉴스(2020.6.7.)에서도 2007년 미국 폭설로 인한 단기 휴교가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에 영향을 주었고 장기간의 휴교는 이보다 더 큰 영향을 줄 것이며 학년이 어릴수록 인지 및 정서에 손상을 줄 수 있음을 경고했다. 또한, 이러한 영향은 모든 학생에게 똑같지 않고 가정의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라 더 벌어질 것이라는 전문가 의견을 보고했다.


  최근 학교는 다시 학생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로 가득 찼다. 또래와 같이 운동장을 뛰어다니고, 복도에서 모여 재잘거리다 소풍 가고 싶다고 교사에게 매달리는 학생들을 보니 마스크만 아니면 코로나19 이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 이제는 제법 학생들이 이전과 같은 학교생활을 시작했지만, 그동안 발생한 학력 격차와 정서적 결핍을 회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낮아진 학력과 벌어진 학력 격차 해결을 위해 학생, 학부모가 택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사교육, 즉 학원에 다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원은 낮아진 학력을 회복하고, 벌어진 학력 격차를 메우는 데 도움이 되는가? 사교육과 학력의 관계는 이전부터 중요하면서도 예민한 주제였지만, 최근 학생들의 교육적 회복을 이야기하면서 이 문제를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얘들아, 학원에 왜 다니니?

  학생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그들은 다양한 이유로 학원에 다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모님이 학원에 다니라고 해서, 이전부터 다녔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다른 학생들이 다니니까 불안해서, 혼자 하면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어서 등과 같이 여러 가지 이유로 학원에 다닌다. 학생들이 학원에 다니는 여러 이유의 근간에는 학교 수업과 평가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염려가 있다. 그렇다면 학원은 학생들의 학교 수업과 평가에 도움을 주고 있는가? 이 부분에 있어 나는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더 많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학원의 무용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분명 학원이 필요한 학생들은 존재한다. 학생들은 제각기 가지고 있는 지식의 정도가 다르고, 수학을 이해하는 속도가 다르다. 수학을 이해하는 속도가 느리다고 해서 수학을 할 수 없는 아이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 긴장감이 높거나, 천천히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학교 수업은 한 학급에 있는 약 25~30명의 학생이 가진 지식의 양과 이해 속도를 모두 맞출 수가 없다. 중간 정도에 맞추어 수업하면 천천히 생각하며 이해하는 학생들은 학습 결손이 누적되는데, 그 부분을 학원이 보충해줄 수 있다. 물론 학교에서도 이를 보충해주기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을 계획하지만, 학원이 이 부분을 적절하게 보완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학원에서조차 천천히 생각하며 배우는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보다 빠른 속도를 강조하는 선행학습과 고난도 문제를 푸는 프로그램이 더 성행한다는 것이다.



학원에서의 선행학습이 뭐가 문제인가요?

  학교 수업을 듣기 전에 학원에서 더 많이, 더 빨리 배우는 게 무슨 문제인가? 선행학습이 학습을 방해하는 세 가지 측면을 살펴보자.

  첫째, 선행학습은 학생이 실제로 수학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선행학습을 한 학생의 대부분은 어떤 수학을 알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수학을 아는 건 수학을 이해하는 것과 다르다. “난 선영이라는 사람을 알아”라는 말은 선영이란 사람이 여자인지, 직업이 무엇인지 등의 몇 가지 정보를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난 선영이란 사람을 이해해”라는 것은 그 사람의 단편적인 몇 가지 정보를 안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수학에서 ‘이해’는 이전에 배운 것과 현재 배우는 것이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즉, “삼각비는 사인, 코사인, 탄젠트에요. 사인은 빗변 분의 높이입니다.”라고 말하는 학생은 삼각비를 알고 있다. 그러나 ‘빗변, 밑면, 높이’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정확히 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왜 직각삼각형에서만 삼각비를 이야기하는지 물으면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것은 삼각비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단편적인 지식만 외운 학생은 나중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힘을 잃게 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지 않은가? 고등학교 1학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암기한 학생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다시 공부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선행학습은 결국 다시 공부해야 하는 허탈한 결과를 낳을 뿐이다.


  둘째, 학원에서 미리 선행학습을 한 학생들은 학교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학원에서는 열심히 배울까? 여기에서 누군가의 설명을 듣는 행동 자체만으로 배움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님에 주의하자. 학교 수업에서 열심히 하지 않아도 학원에 가서 하면 된다는 것처럼 학원은 학생이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있는 좋은 핑계가 된다. 이전에 한 지인이 아일랜드의 중등학교에 방문하여 수학 수업을 보았는데 모든 학생이 수업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우리나라와 너무 달라 인상 깊었다고 한다. 물론 외부 참관인들의 교실 방문이 어떤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지만, 아일랜드의 수학 교사는 평소에도 학생들이 수업 활동에 적극적인데 그 이유는 학교가 아니면 주어진 과제 해결에 도움을 받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 했단다. 나와 함께하는 학생 중 몇 명은 수업 시간에 학원 숙제를 한다. 수학 문제가 빼곡한 문제집을 푸느라 수학 수업에 참여할 여유가 없다. 수업 중에 나눠준 활동지가 없어 어디에 두고 왔는지 묻자 학원에 있단다. 학교 수업 중에 제시한 과제는 학원에 가져가서 그것을 배운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학원에서 제대로 하지 못한 과제를 하느라 바쁘고, 학원 과제를 하느라 해결하지 못한 학교 과제는 학원에서 그 방법을 전달받는 것이다. 매시간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핑계를 제공하는 이러한 현상은 학생의 생각하는 힘을 없애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셋째, 선행학습의 또 다른 문제점은 수학 개념을 깊이 이해하기보다는 과도한 문제 풀이에 매몰된다는 것이다. 학원 숙제를 하면서 학생들은 제시된 문제를 깊이 고민하지 않고 알려준 전략을 그대로 사용해볼 뿐이고, 그마저도 잘 안되면 답지를 베낀다. 학교에서 스스로 생각해보라고 준 과제를 학원 강사가 대신 고민해서 풀이 전략을 전달해준다. 학생이 생각할 힘을 기를 수가 있겠는가? 반짝 효과를 보는 듯했더라도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약한 학생은 그 한계에 좌절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았다. 선행학습은 학생들의 학습 불안감을 확산시킨다. 수학을 이해하는 데 속도가 중요하지 않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 어떤 대상을 이해하는 힘은 실제로 천천히 깊이 사고할 때 길러진다. 그런데 무조건 빨리 배우는 것이 강조되는 선행학습은 천천히 깊이 사고하는 학생들에게 뒤처지고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조성한다. 수학을 하는 힘은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에 있다. 스탠퍼드대학의 조 볼러 교수는 빨리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스트레스와 불안감은 학생들이 수학을 잘할 가능성을 닫아버린다고 강조했다.



수학영재와 선행학습

  국가발전을 위한 수학 및 과학 인재 양성을 위해 전국의 영재학교에서 학교별로 약 100여 명의 학생을 선발한다. 이들은 정말 수학적인 재능을 타고난 것일까?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수학영재는 선행학습을 통해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과학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만난 학생들은 중학교에서 소위 ‘수학적으로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었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떤 학생은 초등학교 5~6학년 때 고등학교 수학을 배웠다고 했고, 어떤 학생은 선행학습을 전혀 하지 않기도 했다. 그렇다면 선행학습을 해온 학생들은 과학고등학교에서 매우 뛰어난 성취도를 보였을까? 그렇지 않다. 초기에 선행학습의 반짝 효과가 있었지만, 깊이 사고해본 경험이 없어 생각하는 힘이 부족한 학생들은 곧 “수학에 재능이 없나 봐요”라며 한탄했다. 


  수학교육과 뇌과학을 오랫동안 연구한 스탠퍼드대학의 조 볼러 교수는 타고난 재능에 대한 교사와 학부모의 믿음이 수학 성취도가 낮은 학생뿐 아니라 성취도가 뛰어난 학생에게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하였다. 실제 스탠퍼드대학에서 ‘재능있는 아이’의 딱지가 붙은 학생들은 다른 사람이 재능있다고 믿는 자신이 질문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실수나 실패를 누군가 눈치챌까 봐 숨기려 노력했다고 한다. 이들 중 일부는 어느 수준에서든 수학이 어렵다는 사실에 맞닥뜨리면 이를 헤쳐 나가기보다 “결국 나도 재능이 없었구나!”라고 포기한다고 한다. 만약 이들에게 ‘타고난 재능’이란 딱지가 없었다면 자유로운 질문, 도전과 실패를 통한 배움 속에서 더 큰 인재로 성장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같은 조건을 가진 것은 아니며, 배우는 속도는 제각각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고정되어 있기보다 변화되는 과정에 있으며, 특히 아직 어린 학생들은 고정된 재능이 아니라 유연하게 발전할 가능성이 풍부한 존재들이다. 선행학습으로 만들어진 영재들에게 ‘타고난 재능’이란 딱지를 붙여 그들의 가능성을 닫아서는 안 될 것이다.



선행학습보다 ‘이해’가 중요하다

  학습 결손과 학력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서 선행학습보다 ‘이해’가 중요하다. ‘이해’는 단편적인 지식의 나열보다 이전의 지식과 새로운 지식의 연결성을 아는 데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수학을 이해하게 하려면 빠른 속도에 초점을 둔 선행학습보다 학생의 사고에 초점을 둔 수업으로의 변화가 시급하다. 엘리 골드렛의 ‘더 골’에 나오는 다음 글은 왜 학생의 사고에 초점을 둔 수업으로 변화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배운다는 것의 최대 장애물은 답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스스로 답을 찾아낼 기회를 영원히 박탈해 버리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해서 답을 찾아내야 진정한 배움을 얻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생각하는 인간을 만들려면 명령형인 “!” 부호보다 의문형인 “?”부호가 훨씬 더 좋다.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학생 본인의 잠재력을 스스로 발현하도록 도와줄 때 배움이 일어난다. 교사는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수학을 발견하게 하는,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힘을 길러주는 사람이다. 어떤 교사는 아무리 과제를 주어도 학생들이 하지 않으니 소용없다, 교실에서 열심히 설명해줘도 듣지 않고 무기력하다고 한숨을 내쉬지만, 모든 것을 자기 주도적인 태도가 부족한 학생 탓이라고 돌리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 교사도 어떤 일에는 게을러지고, 하기 싫어 미루곤 하는데 학생들은 어떠하겠는가? 하물며 난해한 수식이 가득한 수학을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배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교사의 역할이다. 코로나19로 커진 학업 격차와 학력 저하의 문제점은 학생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노력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선 생각하는 힘이 있는 학생들은 원격수업이든, 교실 수업이든 능동적으로 배움에 임할 것이다. 이것은 선행학습이나 사교육을 통해 해소되지 못한다. 결국에 중요한 건 이제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힘을 키우는 수학 수업을 위한 교사의 도전과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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