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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3월의 학교

글_ 권수진 명예기자(강원 교동초등학교 주무관)



  “개학이 정말 연기됐나요?” 학부모님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다. 2월은 학교 회계 마감이라 정신없이 바쁘다. 예산집행 마무리에 몰두한 동안, 먼저 소식을 들은 학부모님들이 개학 연기라는 이례적 일에 확인 전화를 한 것이다. 그제서야 인터넷 뉴스 창을 띄우자 속보로 개학 연기 소식이 메인 뉴스에 떠있다.

  개인적으로 3월의 봄이 지닌 시작의 기운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안타까웠다. 16년, 학생으로 학교를 다니면서 3월 2일은 새 출발의 날이었고 다짐과 희망의 날이었다. 물론 학교를 직장으로 다니게 되면서는 개학 연기에 일적으로 한숨 돌릴 여유가 생기긴 했다. 하지만 학교를 학생으로 다닌 시간이 더 긴 데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학교가 그리웠던 터라 안타까움이 더 컸다.

  내가 일하는 낭만의 도시, 속초에도 확진자가 생기면서 거리에 사람들이 사라졌다. 우리 학교는 물론 인근 학교 운동장에서 소리 지르며 뛰놀던 아이들은 늘어나는 확진자 수 속도에 맞춰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 자리는 마스크를 쓰고 그 위에 방한용 얼굴 덮개로 한 번 더 무장한 한두 명의 사람들 정도로 채워졌다.

  생필품을 사러 슈퍼에 가는 길, 신호등에서 기다리는 버스를 봤다. 시외버스 창 너머로 사람들은 일렬로 길게 앉아 하얀 마스크를 쓴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여행의 설렘 또는 고향 방문의 기대감은 마스크에 가려서인지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일 때문에 이 도시를 방문했으리라. 속초 하면 그 유명한 시장이 빠질 수 없건만, 가족 단위 관광객은 줄었고 길거리 먹거리는 선뜻 사먹기 어렵게 됐다.

  코로나19 관련 인터넷 댓글은 이 탓이네, 저 탓이네 하며 탓만 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탓을 하는 분위기는 ‘함께 극복하자’로 바뀌었고, 대구의 어려운 상황에 힘을 보태자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국민들의 진심 어린 바람 덕분인지 확진자 증가율도 서서히 낮아지고 있다. 물론 산발적 집단 감염에 대한 계속적 경계는 필요하지만, 우리는 탓하는 것을 그만두고 확산 예방이라는 극복에 초점을 맞췄다.

  그동안 개학은 두 차례 연기됐다. 학교는 방역하고 소독했다. 코로나19 확산 예방에 따른 공문이 여러 번 시행되었고 개학 준비를 위해 마스크 권고 가이드라인 및 감염 예방 용품 배부가 이뤄졌다. 이제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2주가 시작됐다. 이에 맞춰 몇몇 학교는 외부인 출입통제를 하게 됐다. 우리 학교도 외부인 출입통제 현수막을 제작했다. 학교에는 정문 외에도 문이 2개 더 있다. 학교가 아파트를 둘러싸고 있기에 인근 주민들이 학교를 가로질러 가기도 한다. 미안하게도 3개의 문 주변에 외부인 출입통제 현수막이 모두 붙여졌다.

  학교 안을 지나다 보면 우연히 쪽문 너머로 문을 열어달라는 주민분들을 만날 때가 있다. 나는 우연이지만 그분들은 기다림 끝에 필연일 수 있다. 그때마다 너무 죄송하지만 사정이 이러하다며 자물쇠 달린 철문을 가운데 두고 고개를 숙인다. 쪽문을 거쳐 가면 금방 가는 길을 뺑 돌아가야 하니 주민들의 불편도 크다는 걸 알기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또한 외부인의 개념은 모호해서 어디까지를 외부인으로 봐야 하냐는 포괄성은 해석의 갈등도 낳는다. 이 학교를 졸업했고, 자신이 돌보는 손자가 이 학교에 다니고, 이 학교 생긴 이래로 늘 이 길로 출퇴근을 하셨다며 다리가 불편하니 잠깐 문 좀 열어주면 안 되냐는 졸업생이자 학조부모님인 주민은 외부인으로 치부하기엔 매정하다.

  물론 대부분의 주민들은 넓게 이해해주시고 불편함을 감수하신다. 그럴 때면 코로나19는 분명 위기이지만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는지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또한 공직자로 일하며 일을 투명하게 처리하고 사회적 신뢰를 높이는 데 기여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오늘도 난 아직 학생들이 오지 않은 학교를 둘러보며 학생들을 기다린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제 막 서기 시작한 아이와 엄마를 봤다. 엄마는 아이 손을 잡고, 공무원증 매고 왔다 갔다 하는 나를 피해 운동장 구석에 가만히 앉아 막대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내키지 않는 말을 한다.

  “죄송합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로 인해 외부인 통제를 하고 있어서요.” “네… 알겠습니다. 가자…” 엄마는 아이가 벗어놓은 작고 앙증맞은 노란색 모자를 씌우고 아이를 업고 유유히 걸었다. 아이는 몇 년 후에 우리 학교에 입학할지도 모른다. 저 아이는 어디 가서 놀려나. 여러 생각을 하며 그들이 떠나간 자리에 남겨진 바닥을 봤다. 글자 봄, 그림은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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