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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쌤과 산골 학교 아이들의 좌충우돌 한 해 살이

우러러보는 풍경


글_ 탁동철 강원 조산초등학교 교사





  출근길에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정류장 근처 보도블록 길 위에 대여섯 명 중학생들이 조각상처럼 멈춰 섰다. 고개 젖히고 하늘 저편을 본다. 나도 고개 돌려 아이들이 보는 그쪽을 보았다. 쭉 뻗은 버즘나무 우거진 잎 그늘 속에서 째래랙째잭 거리는 소리들. 넓고 푸른 잎에 숨어 울어대는 소리의 주인을 살피느라 가던 길 멈췄구나. 온통 숙이는 세상인데, 고개 떨군 스마트폰 세상인데, 뜻밖에도 우러러보는 풍경이라니. 낯설다. 신비하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우러러보는 이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도 오늘 하루는 우러러보는 사람이 되리라, 존경으로 대하리라 마음먹는다.

  학교 안쪽 시멘트 담장 따라 걷는 내내 또륵또륵또륵, 호르르르르르, 릴릴릴릴릴릴리. 어제 퇴근길에도 울어주었다. 밤에도 울었겠지. 해가 뜬 이 아침에도 울고. 오, 우러러보아야지. 몇몇 이름은 알겠다. 아이들 불러모아 말해줄까. 이건 귀뚜라미야, 긴꼬리야, 방울벌레야 하고. 아냐, 가르치려 드는 것, 묻지 않는데 알려주는 것. 이건 못된 버릇일지 몰라. ‘나는 안다. 너는 와서 배워라.’ 하는 시대는 진작에 갔다.

  ‘너가 말해라, 내가 가서 배우리라.’ 이러면 모를까.

  교실 들어서니 성원이가 밀키스 음료 깡통을 척 내민다. 아침에 가게 들러 세 개를 샀다고, 한 개는 나 마시라고 한다.

  “왜?”

  “어제 지들끼리 껌 씹잖아요. 나는 안 주고. 그래서 저도 이제 애들 안 줄 거예요.”

  차별받은 것에 대한 막장 복수극이구나. 6학년이 펼치는 작전으로는 좀 치사한 것 아닐까, 쪼잔한 것 아닐까, 이것도 존경해야 되나, 이런 마음이 들려다가 얼른 생각을 바꿨다.

  “멋지다. 넌 절대 안 봐주는구나. 속이 바늘구멍만큼 좁아서 이런 멋진 복수를 할 수 있는 거야. 훌륭해.”

  칭찬하고 나니 드디어 우러러보인다.

  “존경합니다, 형님.”

  아이는 별로 기쁜 얼굴이 아니다. 자기가 요즘 우리 반에서 왕따라는 것이다.

  “너가 왕따시키는 거잖아.”

  옆에 있던 아이가 그게 아니라고, 성원이가 다른 넷을 왕따시키는 거라 한다. 아무렇게 둘러 앉아 이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네가 교실에 들어오면 맨날 게임 얘기만 하니까 나는 끼어들지 못해. 나는 아는 게임도 없고. 그래서 맨날 혼자고, 그러니까 관심 끌어보려고 너네한테 말 거는 건데, 너네는 내 말에 대꾸도 안 하고, 대충 대꾸하고, 무시하고. 나는 안 끼워주고…….”
어째서 따돌림이 생겼고, 어째서 오늘 아침 내가 밀키스를 얻어먹었는지 알겠다. 내가 끼어들어 한마디 했다. 따돌림 안 돼, 게임 안 돼, 이런 말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지럽지만 꾹 참고, 이건 귀뚜라미야 하고 싶지만 꾹 참고,

  “게임 잘 아는 사람이 성원이한테 게임을 가르쳐주면 어떨까.”

  게임 중독 두 아이가 말했다.

  “상황에 따라 규칙이 계속 달라지기 때문에 가르치기 힘들어요.”

  “게임이란 게 경력이 쌓여야 하는 건데, 나는 어릴 때부터 게임만 했거든요. 유치원 때부터. 성원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따라오기 힘들어요.”

  서로 반반씩 양보하기로 하고 규칙을 정했다. 앞으로 게임 이야기는 월요일, 화요일에만 하기.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에 교실에서 게임 얘기 금지. 수, 목, 금에는 성원이도 잘 아는 평범한 얘기만 할 것.

  짚어내고, 참여하고, 세계를 새로 짓고, 고개 떨군 세상을 빠져나올 길을 찾고. 훌륭하다. 우러러보인다. 밀키스 덕분이다. 성원이가 들고 온 밀키스야말로 최고의 교과서다. 지금, 여기, 우리들의 문제로 시작하는 국어 교과서, 도덕 교과서, 사회 교과서.
‘TV쇼 진품명품’ 비슷한 놀이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칠판에 한 줄씩 적었다. 게임 얘기 말고, 그냥 시시한 것. 그냥 머물러 살핀 것 아무거나.

  과자 먹는 도중 후두둑……
  거미가 줄에……
  검은똥꾸멍 모든 걸 빨아들……

  “오늘 나온 작품들, 한눈에 봐도 보통이 아니네요. 어떤 평가가 나올지 전문가 위원님들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작품, 영한이가 내놓은 글자에 밑줄을 그었다.

  ‘과자 먹는 도중 후두둑 후두둑. 부스러기에 바닥은 처맞기만 하고.’

  감정위원들이 예술품을 살피듯 찬찬히 살핀 뒤에 결과를 발표했다.

  “과자를 먹고 있는 상황에서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것까지 보고 있는 게 훌륭합니다.”

  “철학적이다. 누군가의 행복이 누군가의 불행이 되는 것을 보여주는.”

  아무것도 아닌 얘기, 과자 먹다 흘린 얘기가 이 정도 값진 보물인지, 나는 처음 알게 되었다.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인 무늬 없는 돌멩이 하나에서 별을 찾고 인간의 길을 찾아내듯,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 아니겠나.

  다음은 성원이 작품을 살필 차례.

  ‘해가 쨍쨍 거미가 빛을 맞고 있다.’

  감정위원들이 깜짝 놀라는 말투로 한마디씩 했다.

  “거미가 그냥 거미줄에 있을 뿐인데 선탠을 하는 거로 표현했네요. 창의성이 풍부합니다.”

  “맞고 있다는 표현이 맘에 들어. 거미가 고생하는 걸 보여준다.”

  거기 그곳, 버즘나무 위에 무엇이 있는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째래랙째잭 새가 우는지 꽃이 피는지 거미가 일광욕을 하는지, 안 궁금하다. 이슬이 떨어지는지 벌레가 잎을 갉는지, 안 궁금하다. 길 멈추고 거기 그곳을 바라보는 이, 그이가 궁금하다. 거기 그곳에 눈길을 주는 누군가를 보아주는 또 다른 이, 우리 아이들이 궁금하다. 귀하고 아름답다.




필자는 1968년 강원도 양양군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같은 마을에서 살며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현재 전교생이 39명인 조산초등학교 산골 아이들과 산과 바다를 누비며 작지만 확실한 교육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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