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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쌤과 산골 학교 아이들의 좌충우돌 한 해 살이 덜컹덜컹 음악회

글_ 탁동철 강원 조산초등학교 교사

 

 

 

  호두알이 툭툭 굵어지고 바위가 으끙으끙 땀 흘리고 7월 밤하늘에 별이 노래한다. 우리도 노래한다. 교실에서 우리끼리 부르던 노래를 밖에 나가서 불러볼까. 손수레에 악기를 싣고 덜컹덜컹 골목길 지나 바람 시원하게 부는 바닷가로 가자.


  3월부터 지금까지 학교에서 마을에서 지내며 마음에 닿은 것들을 시로 썼고, 쓴 시를 흥얼흥얼, 길게 짧게 높게 낮게 읽으며 노래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냄비 뚜껑을 두드리다가 요즘에는 자기가 하고 싶다는 악기를 구해서 연습한다. 윤서는 캐스터네츠와 카주, 태준이랑 성원이는 우쿨렐레, 영한이는 멜로디언, 현빈이는 카혼. 악기 하나씩 잡고 폼 잡으니 음악 밴드 같다. 남들 앞에 서려면 밴드 소개부터 해야지.


  “우리 반 밴드 이름을 뭘로 할까?”


  아이들이 한마디씩 했다.


  “불건전 소년단.”


  “빵터진 소년단요.”


  방탄소년단 표절이지만 그대로 칠판에 적었다. ‘불건전 소년단’.


  “빨간 맛 소년단!”


  빨간 피처럼 열심히 하는 걸 보여주겠단다. 이것도 뭔가 표절 같기는 한데, 무슨 표절인지는 모르겠다.


  “파인애플주스단.”


  “우리 반은 남정네만 있어서 신맛과 단맛이 필요해요. 커서도 신맛과 단맛을 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뜻은 그럴듯하지만 나는 파인애플을 안 좋아하니까 반대. 칠판 글씨를 조그맣게 적었다.


  “우리 모두 다섯 살.”


  “비만 소년단.”


  “…….”


  투표 결과 내가 싫어하는 파인애플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하는 수 없이 오늘부터 우리 반은 ‘파인애플주스단’이다.


  “돈 벌어요?”


  글쎄……. 아직은 소음 수준인데. 돈 대신 돌이 날아올 것 같은데.


  “수입은 어떻게 해요?”


  노래 잘할 생각보다는 돈만 밝히는 건 아닌지.


  “여섯이 똑같이 나눌 거야.”


  선생님은 월급 받으니까 빠지라 한다. 수학 잘한다는 태준이가 연필 들고 계산했다.


  ‘십만 원 넘게 벌면, 120000:5, 120000/5는 24000.’


  “한 사람한테 이만사천 원.”


  “우와 …….”


  영한이 눈이 반짝 빛났다.


  돈 얘기가 나오자 아이들 관심이 더 커졌다. 연습 또 연습. 카혼은 유튜브 켜놓고 연습, 우쿨렐레 치는 아이는 겨우 세 개 익힌 코드로 강약만 조절하며 치는 연습, 멜로디언은 도레미파 계이름 외우고. 아직은 누가 들을까 겁나는 수준. 창밖에서 꽥꽥거리며 날아가는 직박구리 새만 못 하다. 그래도 간다. 시작은 해놓아야 그걸 딛고 또 나아갈 수 있지. 아니야, 처음부터 너무 무너져버리면 아예 의욕이 꺾일 수도 있어. 될 수 있으면 사람 없는 곳으로 가자.

 

 

‘파인애플주스단’의 긴장 가득 데뷔 무대
  달력에 표시한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왔고, 드디어 7월 9일 오늘. 손수레에 악기 싣고 교문을 나섰다. 나설 때는 떠들썩했다. 파인애플주스단 화이팅, 엄청 유명해질 거다, 유튜브 스타로 뜰 거다, 까불거리더니 마을 길 지나 바닷가 해수욕장이 가까워질수록 말 수가 줄어들었다. 말뿐만 아니라 몸도 줄어들었다.

 
  “아, 안 하면 안 돼요?”


  “다음에 와요. 제발.”


  그러나 한 번 온 걸 어떻게 하나. 그냥 해보자. 소나무 그늘 드리워진 바닷가 하얀 무대 근처에 손수레를 세우고 무대 위에 올랐다. 마이크대 두 개 세우고, 스피커 정면에 놓고, 악보대 놓고, 멜로디언 연주하는 아이는 의자에 앉고, 카혼 치는 아이는 네모난 상자 악기 위에 앉고, 우쿨렐레 연주하는 두 명이랑 나는 일어섰다. 우리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공연 매너’라는 게 있으니까 차림새도 뭔가 좀 멋져야겠지. 나는 준비해온 선글라스를 썼다. 그럼 우리도, 하며 윤서와 현빈이가 주머니에서 검은 입마개 마스크를 꺼내더니 눈을 가렸다. 창피하니까 별짓을 다 한다. 에라이……. 내가 선글라스 벗으며 소리쳤다.


  “너네도 벗어!”


  두 아이가 검은 마스크를 벗어서 주섬주섬 주머니에 넣는다. 고도 비만 덩치들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또 애원한다. 다음에 연습해서 잘하자고, 요번에는 자신 없다고. 하는 수 없이 무대를 내려갔다. 공연은 무대 아래 소나무 그늘에서 하기로 했다.


  첫 번째 노래. 태준이가 마이크 앞으로 나와 자기 노래를 소개했다.


  “아아 …… 이 노래는 우리가 학교 텃밭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서로 자기 땅을 많이 차지하려고 욕심부리다가 지은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빌리진, 보헤미안 랩소디, 렛잇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노래입니다. 잘 들어주세요.”


  하나둘, 하나둘셋넷, 노래 시작.


  “땅을 넓힌다 땅을 넓힌다…….”


  시작은 우물우물 목소리가 안 들리더니 뒤로 갈수록 조금 커지기는 했다. 두 번째 아이가 나섰다.


  “다음 노래는 성 부수기입니다. 이 노래는 우리 반 친구 성원이가 쌓은 모래성을 태준이가 부숴버렸고, 성원이가 빡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서 만들었습니다.”


  “성원이가 쌓은 성, 위험해, 위험해, 태질라가 성을 공격한다 푸아악 푸아악…….”


  저 멀리 바닷가에 있던 사람들 몇몇이 이쪽으로 고개 돌렸다. 선글라스 낀 여성이 가까이 다가와 손뼉을 쳤다. 박수받은 아이들이 갑자기 사기가 올라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 노래,


  “자전거 타고 연어길을 달린다. 쉬이이이잉…….”


  무사히 공연 마쳤다. 선글라스 여성이 “잘했다. 짝짝짝짝.” 하며 아이들한테 만 원을 건넸다. 나는 못 본 척 저쪽으로 고개 돌렸다. 성원이가 우히히히 손을 내밀어 넙죽 받는다. 우리 반 다섯 명이 공평하게 나누기로 했다.


  “이천 원 지금 줄까?”


  저축해 달라고 한다. 언제든 달라면 주겠다 하고, 내가 맡아놓기로 했다. 악기 정리하고, 파인애플주스 한 잔씩 마시고, 다음엔 잘하자 엄청 연습해서 돈 많이 벌자, 떠들어대며 손수레 덜컹덜컹 끌고 학교 교문을 들어섰다. 학교 마친 뒤 내가 선글라스 여성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까 고마웠어, 하고. 

 


필자는 1968년 강원도 양양군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같은 마을에서 살며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현재 전교생이 39명인 조산초등학교 산골 아이들과 산과 바다를 누비며 작지만 확실한 교육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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