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이달의 기사 전체보기

왕따 당해봐서 참 다행이다

글  성완 남지고등학교 교사

  친구네 집 앞에 있던 구멍가게가 문을 닫더니 리모델링을 하는 중이다. 카페가 들어선다고 했다. 친구 말로는 우리와 동기인 A의 가게인 듯하다고 했다. 나는 당황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게 “그렇구나”라고 대답했다. 잔인한 내 기억은 녹화된 영상을 보듯 아주 생생하게 내게 학창 시절을 보여주었다.

  A는 다른 학교에서 전학 온 나를 유난히 싫어했다. 사춘기 소녀 마음에 굴러들어온 돌이 쉽게 맘에 들 리가 있겠냐마는, 성격이 유순하지 못한 나를 미워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 당시 나는 그 아이만큼 고약한 성격을 지녔던 것 같았는데, 그 아이보다 많이 나약했다. 급우들 앞에서 내가 여러 번 망신을 당하자 다들 나와 다니는 것을 꺼렸다. 쉬는 시간은 지옥 같았다. 그래서 화장실 문을 꽁꽁 닫고 숨어 있었다. 하루는 종이 치자 선생님의 부탁을 받은 반장이 나를 찾으러 왔는데 변기 위로 올라가서 발을 안 보이게 숨겼었다. 매일 아침 학교로 가는 승용차 안은 장례 행렬의 맨 앞차 분위기처럼 침울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 친구는 소위 내가 설치는 것이 싫었나 보다. 뒤에서 때리는 시늉을 하기도 했으며 대놓고 미워하기 일쑤였다. 입시 준비보다 그 상황이 나를 더 힘들게 괴롭히곤 했었다.

  20살이 되면서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감옥을 탈출하고, 하늘을 나는 백로처럼 대학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지금 꽤 경력이 있는 교사로 일하고 있다. 교사를 하면서 나는 하늘에, 아니 그 A에게 무척이나 고마운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친구들과 사이가 틀어져 학교에 오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 학급의 학생에게 내 과거 얘기를 털어놓으며 같이 울 뻔한 적이 있었다. 학생과 나는 서로를 짠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 상담 시간이 고마움을 느낀 첫 순간이었다. 나는 수업은 물론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도 아이들의 표정을 세심하게 관찰하였다. 혹시 어릴 적 나처럼 담임한테 말도 못 하고 끙끙거리는 친구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또 칭찬 한마디를 가볍게 하지 못하였다. 혹여 내가 누구누구만 예뻐한다고 오해하여 다른 친구를 질투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공부를 잘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었다. 그저 아이들이 공부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깨닫길 바랄 뿐이었다. 아이들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것이 바로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 곧 인성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너무 걱정이나 불안이 많은 것은 아닐까 가끔은 반 아이들에게 미안해지기도 하였다.

  매년 교원능력평가를 실시하는데, 작년 결과를 열어보니 우리 학급 아이들이 내게 주는 사랑이 그득그득 담겨있었다. ‘완벽’이라는 단어가 제일 많았고, 다음으로 ‘평등하게 대해 주신다.’라는 말이 눈에 띄었다. 그 A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다시금 드는 순간이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했길래 그런 소릴 듣냐며 나의 기운을 북돋아 주셨다.

오늘도 학생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꽃보다 예쁘다.
어떤 아이는 속눈썹이 참 촘촘하고,
어떤 아이는 웃을 때 드러나는 덧니가 예쁘다.
어떤 아이는 목소리가 정말 멋지다.
신기한 일이다.
내가 학생일 땐 학교가 지옥 같았던 때가 많았는데,
나의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밭 같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왕따 당해봐서 참 다행이다.

열람하신 정보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