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행복한 교육

게으른 아이 정현

학교상담 전문가가 전하는 우리 아이 심리


글_ 김서규 경기대 교육상담학과 겸임교수(전 유신고등학교 진로진학상담교사)



  시간관념이 없어 지각하기 일쑤고, 빈둥빈둥 놀다가 뒤늦게야 숙제를 끄적이거나 그마저도 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성향의 아이들에게는 잔소리나 혼을 내는 전통적인 방식이 전혀 효과가 없다. 게으른 행동이 개선되지 않는 아이들은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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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현은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이다. 아침에 일찍 학교에 가지 않고, 수업을 잘 듣지 않으며, 저녁에는 학원을 자주 빼먹는다. 집에 오면 제 방에 들어가서 새벽까지 핸드폰을 중독 수준으로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시험을 치면 모든 과목이 30점 수준이다. 엄마가 걱정돼서 이것저것 충고를 했지만, 고쳐지는 게 없었다. 그래서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상담실에 왔다.



진단

  정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얘는 정말 걱정이에요. 게을러터졌어요. 제발 마음잡고 공부하라고 해도 바뀌는 게 없어요. 참다 못해서 뭐라고 하면 저한테 고함질러요. 몇 주 전에는 공부하랬더니 짜증 난다고 망치로 방문을 때려 부쉈고, 금주에는 다리미를 마루에 내리쳐서 꽂았어요. 어떡하죠?”

  상담 선생님이 엄마를 잠시 대기실에 있게 하고, 정현과 마주 앉았다. “정현아, 엄마는 네가 놀기만 해서 걱정이라고 하시는구나. 네 생각은 어떠니?” 정현이 울면서 말했다. “전 엄마, 아빠를 죽이고 싶어요. 간섭이 너무 심해요.” 정현은 너무 지쳐서 죽을 지경이니 자기 방에 불쑥 들어와서 여러 시간 잔소리하지 말 것, 나쁜 친구들과 절교하라고 하지 말 것, 알아서 공부하게 내버려 둘 것을 요구했다. 아이고, 이런. 엄마와 정현은 생각이 정반대다. 이러면 서로 부딪힐 수밖에!

  상담 선생님이 어머니께 말했다. “정현이 게으름피울 때 혼을 내면, 근면에 대한 적개심이 생겨서 열심히 하기가 싫어져요. 게다가 게으름뱅이로 낙인찍히니까 더 하기가 싫죠. 그래서 다음번엔 더 게을러집니다. 그러면 엄마는 더 야단을 치고, 정현은 더 게을러지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사이도 나빠지고요.”

  아이들은 아차 하는 순간 나태로 빠지기 쉽다. 다시 근면한 생활로 돌아오려면 세 가지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게으르게 지내다가 다시 시작하려면 귀찮음이라는 관성을 극복해야 한다. 게으름도 일종의 안락한 평형 상태기 때문에 힘든 일을 시작하려면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아이도 잘하고 싶은 의욕에 ‘앞으로 열심히 할게요.’ 하면 엄마는 순진하게(?) 그 말을 믿지만, 말만 하고 몸이 안 따라줘서 본의 아니게 거짓말쟁이가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면 엄마는 거짓말했다고 화내고 아이는 그 말이 맞긴 하지만 잔소리가 너무 심하다고 원망한다. 이쯤 되면 근면이라는 원목적은 사라지고, 비난하기에 열중한다. 둘째, 다시 시작하려면 뭣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다. 게으름뱅이 대부분이 몇 년 동안 벼르기만 하고 시작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엄마가 ‘열심히 해라.’ 하는 말씀만 해서는 안 된다. 시작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옛 속담에도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셋째, 지나친 충고는 아이를 더 게으르게 만든다. 아이가 게으르면 엄마가 아이보다 더 초조해서 그만 자제심을 잃고 날카로운 말을 하기 쉽다. 잘하라는 뜻으로 했지만, 아이가 듣기에는 자신을 멸시하는 것으로 느껴지고 용기를 움츠러들게 한다. 그래서 불손한 행동을 하기 쉽다. 그러면 엄마는 더 예리한 비판을 하기 쉽다. 이래저래 악순환이다.
 


‘열심히 해라.’ 하는 말씀만 해서는 안 된다.
시작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지도


  정현엄마와 상담 선생님이 서로 의논한 끝에 몇 가지 행동원칙을 정했다. 첫째, 앞으로 2주 동안 일절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서로 휴전 상태로 지낸다. 서로 격화된 감정을 가라앉히고 신경을 안정시키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주가 지나자 엄마는 ‘아빠는 회사 임원이 될 준비에 바빴고, 저도 학위를 받으려고 바빠서 정현을 제대로 못 봐줬어요. 우리가 문제네요.’ 하시며 마음이 누그러지셨고, 정현은 ‘이제 좀 편해졌어요. 살 만해요.’ 했다. 둘째, 이래라저래라하기보다 정현이 무얼 하고 싶은지 알아보고 돕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현은 ‘집에 있으면 침대가 있어서 자꾸 자게 돼요. 독서실에 가고 싶어요. 그리고 핸드폰을 신형으로 바꿔주면 새벽까지 하지 않을게요.’ 했다. 엄마가 그 얘기를 듣자 ‘너는 맨날 거짓말만 하는데 지금 또…’ 하시다가 ‘앗, 이러지 않기로 했지.’ 하면서 미안해하셨다. 세 번째 계획은 서로 사이좋아지기다. 사람은 사이가 좋으면 좋을수록 상대방이 싫어하는 걸 안 하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어머니는 세 번째 계획을 실천하는 셈이다.

  한 달쯤 지나서 정현이 상담 선생님께 말했다. “엄마, 아빠가 잘해주시니까 가족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잘하고 싶어요.” 그래, 정현아, 게으름을 열어젖히고 근면으로 나아가는구나. 참 보기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