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행복한 교육

환청이 들리는 아이

학교상담 전문가가 전하는 우리 아이 심리

글_ 김서규 경기대 교육상담학과 겸임교수(전 유신고등학교 진로진학상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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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서 환청을 치료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학교생활을 감당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은 가능하다. 교실에서 눈에 띄는 정신과적 소동을 벌이는 아이의 지도 방안을 학교상담 전문가가 제시한다.

문제

  고등학교 1학년인 경훈이는 아이들이 등 뒤에서 자기를 욕하는 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특히 키 크고 농구를 잘하는 아이들이 상습적으로 ‘에이, 뭣 같은 놈’이라고 욕하자 견딜 수 없었다. 경훈은 전자 회사에서 근무하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고성능 녹음기로 그들의 욕설을 녹음했다. 충분한 증거를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 경훈은 담임선생님과 학생과 선생님께 그들을 언어폭력으로 신고했다. 학급의 아이들이 줄줄이 학생과에 소환되어 진술을 요구받았지만, 그들은 그런 적이 없다고 딱 잡아뗐다.

  경훈은 격분해 녹음기를 틀며 “들어보세요! 증거가 있어요!”라고 해서 모두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나 들리는 것은 잡음뿐이었다. 녹음이 잘못된 걸까? 그때 경훈이가 말했다. “들어보세요. 복도에서 저를 욕하잖아요.” 아니, 아무 소리도 없는데? 그러나 그는 계속 들린다고 우겼고, 그제야 선생님들은 사태가 심각한 걸 알아차려 부모님께 경훈을 데리고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진단

  정신과에서는 경훈에게 원인 미상의 망상과 환청이 있다는 진단을 했다. 그러나 경훈은 인정하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이 상담 선생님께 호소했다. “경훈이는 계속 아이들이 자기를 욕했다고 신고해요. 두 달 동안 학급 아이들 절반이 학생과에 조사받으러 불려갔어요. 그 애 녹음기는 3m 밖에서도 사람 음성을 선택적으로 녹음할 수 있는데, 알다시피 아이들끼리 가끔 욕할 때도 있고, 실제로 경훈에게 욕을 할 때도 있어요. 그걸 모조리 녹음해서 자기한테 한 욕이라고 신고하니 진위를 가리기도 곤란하고 실제로 처벌받는 아이들도 있어요. 학급 분위기는 엉망이고 저도 신경쇠약에 걸릴 것 같아요.” “부모님께 대안학교나 휴학을 권유해보시지 그랬어요?” “부모님은 아이의 증상을 알면서도 이 학교에서 졸업시키겠다고 해요. 학급이 망가져도 내 자식이 우선이라는데……. 어떡하죠?”


지도

  “경훈아, 뭘 도와줄까?” 경훈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애들이 저를 욕해요. 들어보시겠어요?”라고 하면서 예의 그 녹음기를 틀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떠드는 소리뿐. “아이, 좀 잘하지 그랬니? 음성이 불투명한데.” 경훈이가 신이 나서 몸을 기울이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사실은 수업 시간에도 녹음하려고 해요. 옆 분단 아이가 몰래 욕하거든요.” “좋은 생각이야. 어떻게 녹음을 할 건데?” “걔 책상 서랍에 몰래 넣어놓을 거예요.” “그러다 그 애가 우연히 그걸 만지면 들킬 텐데.” 경훈이 움찔하더니 “그럼 책상 밑에 접착테이프로 붙여놓을게요.”라고 했다. “그게 낫겠다. 그런데 녹음하면 그 애들도 욕했으니까 처벌받겠지만, 너도 남의 말을 불법으로 수업 시간에 녹음했기 때문에 처벌받을 수 있어. 이건 어떻게 할 거니?” 경훈이 헉하고 말문이 막히더니 “사실 저도 그게 조마조마해요. 아직 그게 불법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만약 누군가 따지면 저도 걸리거든요. 그러면 제가 가고 싶은 대학교에 수시지원을 할 수 없어요.”


  상담 선생님이 말했다. “너를 욕하는 아이들을 몰래 녹음해서 처벌을 받게 하는 것, 원하는 학과를 위해서 참고 봐주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이 유리하겠니?” 경훈이 한참 생각하더니 답했다. “후자요. 억울하지만 참아야겠네요.”
경훈은 그 후 녹음하지도, 아이들을 신고하지도 않았다. 환청을 완치하진 못했지만,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환청을 무시할 수 있었다. 망상이든 환청이든 잘 도와주면 정상에 가까운 생활을 할 수 있다. 의지마저 무너지진 않았으니까.


  의사가 약을, 학교가 지원을, 부모가 사랑을 보이면 그 관심의 동심원에 놓인 아이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