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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대한 십대들의 솔직한 속내

글_ 김서규  유신고등학교 진로상담부장교사

 

  아이들에게는 공부가 제일이다. 공부가 잘 되면 기분도 좋아지고 친구들도 잘 사귀고 의젓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반대로 공부가 잘 안되면 우울해지고 자신감도 떨어지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비율이 늘어난다. 어떤 아이는 공부를 잘하고 어떤 아이는 못할까? 운명인가? 유전자인가? 부모님의 뒷바라지인가? 본인의 노력인가? 잘 모르기는 아이들도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못하는 아이의 생각
  태초부터, 그러니까 자신이 기억하는 한 공부를 잘한 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전 원래 머리가 나빠요. 공부에 취미도 없고요. 꿈도 없어요. 이제 뭘 해야 하죠?” 정말 그럴까? 아니다. 이 아이들의 IQ 검사결과를 보면 지능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 대신 좀 더 들여다보면 공부가 뭔지 모르는 환경에서 기대하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 둘러싸여 살아온 아이가 나타난다. 아빠는 가게를 꾸려나가시고 엄마도 같이 돕느라 새벽부터 저녁까지 밖에 나가서 계신다. 사촌들이나 주변 친구들도 공부보다는 알바를 하거나 자동차 중고상에 취직해 돈을 많이 버는 선배들의 얘기로 열을 올린다. 마치 북극곰과 사자가 만날 일이 없듯 공부하는 애들과 어울릴 일도 없고, 공부가 자기에게 맞는 일이라는 생각도 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이 아이들은 잘 놀아서(?) 신체를 사용하는 일을 잘하고, 활동성이 뛰어나 일을 잘 처리하며, 임기응변에 빠르다. 하지만 종종 불행하게도 학술적으로는 ‘학습무동기아동’으로 구분되어 여러 최신 학습프로그램의 실험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중의 불행을 겪는 셈이다. 이 아이들의 재능을 제대로 인정해주는 환경이 나타나기까지는 고생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공부를 잘하다가 중간에 열등생이 된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공부를 잘했어요, 엄마가 차를 몰고 이웃 도시까지 원정을 가서 좋다는 학원에 보냈거든요. 아이고, 1주일에 다녀야 하는 학원이 6개였어요. 목구멍까지 힘들었어요. ‘이제 그만!’ 하고 외치고 싶은데 엄마가 ‘이제부터 본격적이야. 중학교에 가면 정말 잘해야 돼.’ 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엄마와 싸우면서 놀기 시작했죠.” 이 아이들은 공부를 못하는 걸까? 아니다. 먹고 싶은 불고기 피자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먹으면 질리지 않을까? 된통 공부에 질려버린 기억이 있는 아이들은 공부가 트라우마다. 공부보다는 심리치료가 필요한 아이도 있다.

 

잘하는 아이의 생각
  잘하는 아이들은 도대체 어떤 아이들일까? 어떤 아이가 말했다.
  “저희 집은 시골이에요. 아빠가 동네 어른들께 인사 잘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죠. 동네 어른들이 기특해 하시면서 그다음부터는 제가 뭐든 잘하는 줄 아시는 거예요. 부득이 잘해야 됐죠. 열심히 했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우등생이 되었어요. 제 명예를 유지하고 싶어서요.” 정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이런 아이는 IQ와 관계없이 자기주도학습으로 공부를 잘한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개천용의 숫자가 많이 줄었다. 입시 요건이 까다롭고 특수해져서 혼자 혹은 공교육만으로 감당하기가 어려워진 탓이다.
  반면에 공부를 못하는 것이 더 어려운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꼭 명문대를 가야 해요. 집안에서 사촌들 20명이 모두 명문대를 가고 저 혼자 남았어요. 제가 못가면 가문의 역적이 돼요. 집안에 의사가 10명, 변호사가 5명, 교수가 3명이거든요. 명문대를 가도 잘간 게 아니고 당연한 거예요.” 하하, 이런 특별한 아이도 있다. 공부에 대한 노하우가 쌓인 집안에서 태어나면 이런 고충도 있을 수밖에.

 

함께 하는 생각
  아이들은 공부를 못하면 못하는 대로 잘하면 잘하는 대로 고민이 있다. 그래서 선생님들도 양쪽 아이들의 두 가지 목소리에 정신이 분열될 정도로 고민이 된다. 잘하는 아이들은 좀 더 훌륭한 학문의 길로, 못하는 아이들은 자신에게 맞는 진로나 직업교육의 길로 안내해야 할 텐데, 어디 지금보다 더 다양한 길이 없을까? 아이들 고민이 어른들의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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