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행복한 교육

교육 정책의 격과 질

글_ 최현섭 강원대학교 명예교수(교육부 제3기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前 전국국공립대학교총장협의회장)



  만남은 모든 인간사의 영약이기도 하다. 만남은 사람 간의 단절과 갈등을 해소하는 최적의 수단이며, 서로의 간극을 줄이거나 더 가까워지게 하는 효능도 크다.


  가능성이 10%라도 만나야 한다. 한·미 정상이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수용한 이유이다. 세계가 깜짝 놀랐고 일촉즉발의 위기는 벗어났다는 안도감도 느끼게 하였다. 엄청난 변화이고 역사적 사건이다. 만나겠다는 것은 서로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는 것이며 어떻게든 해법을 찾아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건 통 큰 지혜와 결단이다. 어려운 결심을 했으니,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평화공존과 상생번영만 생각하며 과감하게 합의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명운을 가를 만한 사안이니 간절히 기도하면서 숨죽여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만남은 북핵 해법으로서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사의 영약이기도 하다. 만남은 사람 간의 단절과 갈등을 해소하는 최적의 수단이며, 서로의 간극을 줄이거나 더 가까워지게 하는 효능도 크다. 사람들이 서로의 눈을 직접 바라보고 떨리는 목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덧 닫혔던 맘이 열리고 울림도 더 커진다. 그래서 통하려면 직접 만나라 하는 것이고, 뜻을 모으려면 대화를 하라 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공명이 살아나고 일체감이 커지도록 하라는 것이 리더십 이론의 핵심이 아닌가?

 

만남은 소통하는 정책의 출발점
  이것은 우리의 목하 관심사인 소통하는 교육 정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교육 정책 생산자와 소비자의 만남은 소통하는 정책의 출발점이고 중핵이다. 소통이 무엇인가? 생각과 마음이 서로 통한다는 뜻이 아니던가? 통한다 함은 서로 간에 공감이 일어나고 공명이 커지며 일체감이 강화되는 것을 가리킨다. 소통하는 교육 정책은 공감, 공명, 일체감을 키우는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우선적인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만나자마자 그렇게 되기는 힘들 것이고, 모든 만남이 그런 결과에 도달할 수도 없을 것이다. 모든 정책은 그 자체가 엇갈리는 주장과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운명을 안고 있다. 아무리 최적점을 찾는다고 해도 소외되거나 배제되는 경우는 남아 있기 마련이다. 불만과 갈등 제로 정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소통하는 정책은 그러한 불만과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예의이고 정성이며 지난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소통하는 교육 정책을 표방하고 핵심 과제로 한다면, 무조건 정책 소비자와의 만남의 기회를 늘려야 한다. 불만과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그래야 하지만, 교육의 본질 강화와 행복한 교육 증진과 같은 적극적 정책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더욱더 그래야 한다. 원래 적극적 정책일수록 더 정교하고 종합적인 점검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촉박하다든가 사안이 복잡하다는 이유로 만남을 줄이거나 피하는 순간, 정책의 효능은 반감되고 역기능은 배증될 것이다. 소통하는 교육 정책을 내세우면서 힘든 만남과 더딘 정책 생산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이런 점에서 교육 정책 생산의 책임이 있는 공직자들의 최우선 책무는 끊임없는 교육 현장의 방문과 교육 민원인과의 만남이어야 한다. 앉아서 의견을 수렴하고 인터넷으로 민원을 처리하는 건, 양은 늘리겠지만 질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와 같은 하부기관에 민원을 이첩하고 끝내는 소통 시늉 방식은 사라져야 한다. 얼마나 많이 그리고 다양하게 만났으며 정책의 생산 등 해결한 성과를 했는지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또한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령을 개정해서 교육 정책 생산자와 소비자와의 만남을 더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부정부패가 걱정이고 법령 때문에 만남이 제약된다면 소통하는 교육 정책은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교육 현장에 대한 민감성에 주목하라
  민주주의는 격과 질이 있고 시대에 따라 진화를 거듭하여 왔다. 특히 200여 년 동안 유지되어 온 대의민주주의의 한계 노정이 그 진화를 촉진시켰다. 국민의 기본권과 행복보다 수권자와 수권집단의 권력과 행복이 더 증진되는 부작용 양상이 참여민주주의와 숙의민주주의로의 진전을 불러왔다. 소통하는 교육 정책은 그러한 진화의 구체적 성과이자 실천 과제이다. 따라서 교육 정책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와 벽을 낮추고 모든 이의 교육 기본권과 행복을 합심하여 증진시키는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이것이 철학과 준거가 되어야 교육부가 추진하려는 국민참여 정책숙려제가 성공을 거둘 것이다. 


  정책의 격과 질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보면, 소통하는 교육 정책이 보강해야 할 일은 아주 많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정책 생산자들의 교육 현장 민감성이다. 현장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되 가장 아프고 힘든 자의 절박한 요구를 더 민감하게 감지하고 우선적으로 반영하여야 한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 교육제도와 정책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는 학부모들의 절박한 아픔과 요구를 민감하게 감지하지 못하면 소통하는 교육 정책은 허구일 뿐이다.


  소통하는 교육 정책도 잠깐 방심하면 목소리 크고 힘 있는 이들의 주장과 이해관계에 밀려 통 큰 지혜와 결단이 가로막힐 수가 있다. 그것이 더 크게 들리기도 하고 당장의 불만과 요구를 모른 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 없는 교육 현장, 힘없는 교육 가족의 절박한 아픔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지는 순간, 정책의 본질과 존재가치 자체가 부정되고 만다. 가장 약한 자가 누리는 존중과 행복이 민주주의의 격과 질을 가름하는 핵심 지수이기 때문이다. 교육 현장의 민감성이 강화되어 교육 정책의 격과 질이 더 높아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