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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학점제 성공을 위한 조건

  글_ 최영선 인천신현고등학교(고교학점제 선도학교) 교감

 

“ 「여행지리」 시간에 여행사를 만들어 수업을 해보면 어떨까?”
 

  “ 「연극」 과목을 무학년제로 극단을 운영한다는 개념으로 가르치면 어떨까?”
 

  “ 「한국사」 수업 6단위 중 1단위(17시간) 정도를 현장 답사로 진행해보면 어떨까?”
 

  “ 「과학탐구실험」은 분기별 집중 이수가 가능하도록 편성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적용을 앞두고 작년 7월부터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TF를 구성해서 살펴보고 있는 몇몇 논의들이다. 자기 관리 역량, 창의적 사고 역량 등 핵심 역량을 실제 수업에서 어떻게 구현할까 궁리하다 보니 뭔가 새로운 시도를 자꾸 상상하게 된다. 물론 이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은 다들 인정한다. 현재 학교의 여건이나 학사운영 시스템과 충돌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학생의 과목 선택 기회가 넉넉히 보장되고, 교사가 수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업무적으로 배려되고, 그리고 학교가 행·재정적 운영 자율성을 좀 더 누릴 수 있다면 이러한 상상이 실행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우리 학교가 고교학점제를 기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난관을 예상하면서도 교원 업무 구조를 재조정하고, 「한국사」와 「과학탐구실험」 과목의 경우는 당장 2학기부터 그렇게 운영을 계획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출발과 동시에 기로에 서다
  작년 11월,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추진방향을 발표하면서,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 이수하여, 누적 학점이 기준에 도달하면, 졸업을 인정받는 교육과정 이수 운영 제도’라고 학점제를 정의하였다. 시의성 없는 정책은 없다. 관행을 넘어서는 경우에는 그만큼의 절박성도 담겨있다. 그렇지만 몇몇 고등학교 관련 정책들이 학교 현장과 어울리지 못한 채 유야무야 하는 것도 아쉽지만 솔직한 현실이다.


  고교학점제는 출발과 동시에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지향과 현실의 간극이 크기 때문이다.  

 
  교실을 소(小) 우주로 표현하는 경우에서 보듯 학교는 정말 생각 이상으로 복잡하다. 학교를 향한 접근은 섬세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학교 생태계의 소소한 부분들을 간과하다가 좌초된 사례들이 적지 않다. 고교학점제는 현재 고등학교의 여러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제도적 틀로서 분명히 의미가 있고, 그 성과도 충분히 기대해볼 만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학교의 구체적인 부분들과 조응하며 실질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고교학점제의 핵심은 학생이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하는 데 있다. 사실, 과목 선택은 현행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도 이미 강조하고 있는 사항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교원 수급, 학급 구성, 수능 준비 등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제한하고 있다. 선택을 보장할 이유보다 그럴 수 없는 이유를 더 많이 갖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고교학점제가 안착하려면 후자의 이유들을 최대한 주목해야 할 것인데, 이와 관련하여 일찍부터 시도해 온 학교로서 몇 가지 제언을 해 본다.

 

 

고교학점제 안착을 위한 세 가지
  첫째, 학교의 업무적 포화 상태가 시급히 해소되어야 한다. 학점제의 취지를 제대로 구현하기에는 학교에 덧씌워진 교육 외적 요구가 너무 과중하다. 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수많은 법령, 지침, 요구 등이 과연 학교를 돕고 있는지 발목을 잡고 있는지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황새와 여우의 식탁처럼 뭔가 계속 어긋나서 답답함만 쌓이고 있는 게 현재 학교의 현실 아닌가 싶다. 학교가 본래의 기능, 즉 학생의 진로 선택과 직결한 교육에 집중하지 못하고 여러 부가적 업무에 소모되지 않도록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둘째, 너무나 상식적인 말이지만, 교사의 주된 업무(수업)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학교가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을 1개라도 더 개설하고, 교사가 자신의 수업을 재구성해서 제대로 운영하는 데에는 정말 엄청난 집중과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학교의 경우, 학생의 선택 수요를 받아서 시간표를 짜는 데만 거의 5~6달이 걸린다. 교사들이 수업과 교육적 업무에 좀 더 우선하도록 업무분장을 계속 재구조화하고 있지만, 과연 이러한 사례가 타교에도 일반화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교사들이 나누어 감당해야 하는 업무들이 여전히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셋째, 고등학교 교육에 관련된 제반 정책과 제도가 서로 모순 없이 호응해야 한다. 성적 평가 방식, 업무 관련 시스템(NEIS, 학생부 등), 학사 운영, 교사 확보, 대입 전형 등이 학생의 원활한 과목 선택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지 살펴야 한다, 어긋난 부분이 있다면 학교들이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서 혼란에 빠질 것이므로 정책을 조정하거나 관련 지침을 바꾸는 등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


  작년 우리학교의 경험을 예로 들자면, 제2외국어(아랍어, 베트남어 등)를 폭넓게 개설하고 싶어도 가르칠 교사를 구하지 못해서 포기한 경우, 학생들이 진로 희망보다 성적산출 기준에 매여 수강 인원수를 기준으로 과목을 선택하는 경향, 유연한 수업 운영을 뒷받침하기에는 늘 어려움이 따르는 업무 시스템의 경직성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요컨대, 학교 현장에서 드러나는 크고 작은 문제점들을 정확히 포착하고, 어떤 형태로든 개선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이점을 간과하면 고교학점제가 고등학교 교육 전체를 포괄하지 못하고 단지 학교에 관련된 여러 업무 중 하나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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