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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찬 강원명진학교 교사 - 어느날 찾아온 실명…포기 없는 삶의 증거가 되다

글_ 이순이 본지 기자

 

박병찬 교사가 중도 실명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특수교사가 되기까지 그가 걸어온 발자취는 제자들에게 이정표가 되었다. 성실함이 몸에 밴 그는 매일 아침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공강시간, 박병찬(46.시각장애 1급) 강원명진학교 교사는 손끝을 따라 열심히 교과서를 읽어 내려간다. 1장에서부터 마지막장까지 암기하고 있지만, 혹시 잊었거나 막히는 곳은 없는지 점검하고 또 점검한다. 박 교사는 늘 가르칠 내용을 모두 머릿속에 암기하고 수업에 들어간다. 교실에 들어서서는 머릿속으로 학생들이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좌표를 그려 학생의 이름과 이미지를 새겨 넣는다.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수업내용을 순조롭게 이해하는지,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은 없는지, 학생들의 상태를 체크하면서 수업을 이어나간다.
  10대 고등부 학생부터 60대의 전공과 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학생들에게 직업교육을 가르치는 그는 다소 엄격한 선생님으로 통한다. 하지만 교실 밖에서는 누구보다 따뜻하게 마음을 보듬어주는 선생님이다. 2002년부터 강원명진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박병찬 교사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중도 실명 학생들을 상담하고 시각장애 학생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디딤돌이 되어주고 있다.

 

세상의 편견에 당당히 맞서다
  24년 전, 미래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했던 20대 초반의 평범한 한 대학생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박병준 학생에게 ‘망막색소변성증’이 찾아왔다.
  “버스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내리는 데 눈앞이 흐려지며 앞이 보이지 않았다.”는 박 교사는 그렇게 세상의 빛을 잃었다. 이런 상황을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겨우 버스에서 내려 기억을 더듬으며 택시승강장에서 택시를 탔는데, 이번엔 이유를 모른 채 택시기사의 항의를 들어야 했다. 택시가 길게 늘어선 승강장의 중앙에서 택시를 탔던 것. 우여곡절 끝에 가족에게 연락하고 공중전화 부스에서 기다리던 1시간이 마치 한 달처럼 길게 느껴졌다고.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는 박병찬 교사. 그에게는 잊지 못할 고마운 친구가 있다. 갑작스레 앞을 보지 못하게 된 그를 위해 친구는 군입대를 미루고 꼬박 1년을 곁에서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왔다. “포기하지 말라”는 친구의 한 마디에 용기를 얻어 점자를 배우고 새롭게 특수교사의 꿈도 키울 수 있었다. 24살 나이에 시각장애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서울맹학교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그는 수능 준비를 하며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맹학교 선생님들조차 모두 안 된다고, 포기하라고 말렸어요. 중도장애인은 점자 읽는 것이 느려서 수능을 볼 수가 없다고요. 하지만 특수교사를 향한 꿈은 포기할 수가 없었죠.”
그가 걸어온 길은 세상의 편견과 싸워온 시간이기도 하다.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모의고사를 보다가 쓰러진 적도 있다. 수학을 암산으로만 풀다보니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수능을 준비하는 시각장애인의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그해 처음으로 수능시험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지원 서비스가 도입됐다. 그렇게 두 번째 대학생이 되면서 특수교사의 꿈에 한발 다가갈 수 있었다.

 

박 교사는 강원명진학교에서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안마 등의 직업교육을 가르친다.

 

장애학생들의 재활의 길 돕는다
  강원명진학교는 유·초등부부터 중학부, 고등부, 전공과를 갖춘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로 현재 100여 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박병찬 교사는 고등부, 전공과 학생들의 침술, 안마, 마사지, 지압 등 직업교육을 담당하며 학생들이 졸업 후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치매나 중풍으로 고생하는 어르신을 위해 안마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가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한 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는 사명감이 있는 그런 선생님이요.”
  강원명진학교의 학생들 중에는 선천적 장애를 가진 학생도 있지만 박 교사처럼 평범한 삶을 살다 시력을 잃고 중도장애인이 된 경우도 많다. 중도장애인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박 교사는 학생들에게 “포기하지 말아라. 꿈을 갖고 도전하면 장애를 넘어설 수 있다.”고 말해준다.
  특수교사가 된 후에도 그는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한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시각장애 학생들의 이상행동과 불안증상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체계적인 상담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상담을 공부했다. 1급 전문교사상담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학생들의 상담, 생활지도 등을 통해 심리적 불안과 갈등을 잘 극복하고 재활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현재 강원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자신의 존재가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새로운 시도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박 교사. 봉사하는 과정에서 만난 한 선생님으로부터 클라리넷 운지법을 배웠다는 그는 동료교사들이 녹음해준 악보를 들으며 매일 아침 클라리넷을 연주한다. 박 교사의 발자취가 곧 그의 제자들에게 이정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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