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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 휴먼 시대의 인간과 인간 정체성

글_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문화협력단장 겸 연수원장

 

 

과학기술의 발전과 신인류
  인류문명의 발전과 도약에 과학기술이 가장 큰 기여를 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바퀴, 종이, 나침반, 화약, 컴퓨터의 발명 등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류사회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자신도 변화시켜왔다. 피터 노왁은 자신의 저서 『휴먼 3.0(새로운 현재, 2015년)』에서 기술 관점에서의 인류의 변화를 세 단계로 설명한다. 최초의 인류는 ‘휴먼 1.0’으로 생명활동과 환경에 종속되었고 원시적인 기술을 갖고 있었다. 제2의 인류, ‘휴먼 2.0’은 더 나은 삶을 추구해온 인간으로 자연과 공존하는 기술을 개발해 왔다. 오늘날 첨단기술시대의 인류는 그가 ‘휴먼 3.0’이라고 부르는 제3의 인류다. 휴먼 3.0은 과학기술을 이용해 생명활동과 환경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시스템을 결정하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인간이다.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네덜란드 과학자 파울 크뤼첸은 지금은 지질시대 중 홀로세(Holocene Epoch)가 아니라 인류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인류세(Anthropocene Epoch)라고 주장했다. 20만 년 전 처음 출현한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와 현재의 인류는 다른 모습이며, 미래인류는 지금의 인류와는 다를 것이다.
  미래학자 호세 코르데이로는 유전자 조작과 로봇의 발달로 현생인류는 신체 기능을 새롭게 변화시킨 ‘트랜스 휴먼’으로 진화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트랜스 휴먼이란 과학기술이 인간 신체와 융합돼 나타나는 신인류를 말한다. 실제 과학과 기술을 이용해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성질과 능력을 개선하려는 문화운동으로서의 ‘트랜스 휴머니즘’이라는 흐름도 있다. 트랜스 휴머니즘 사상가들은 인류가 더 확장된 능력을 가진 존재로 인간 자신을 변형시킬 것이며 이렇게 해서 나타나게 될 인간은 ‘포스트 휴먼’이라고 말하고 있다. 새로운 인류는 SF소설에나 나오는 허무맹랑한 상상이 아니다. 바이오 공학 발달로 인공수족이나 인공신장, 인공장기 등은 거의 상용화 직전 단계에 와 있고, 인간과 컴퓨터 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가령 인간의 두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뇌신경 신호를 활용하거나 외부로부터 정보를 유입해 인간의 사유능력을 증강하는 BCI(Brain-Computer Interface)기술 연구에서는 인간 뇌파로 컴퓨터를 작동하고 뇌파를 이용해 드론을 작동시키는 실험도 하고 있다. 영화 <로보캅>에 나오는 로봇경찰은 살해된 인간 경찰의 몸을 티타늄으로 보강하고 기억을 지운 후 정교한 프로그램을 장착했지만 여전히 인간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기억을 갖고 있는 사이보그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인공지능 기계가 상용화되는 미래에는 인간 정체성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에 봉착할 수 있다. 인간의 두뇌에 기계심장, 기계장기, 기계수족을 결합하면 인간인가 아닌가. 기계와 인간이 융합된 트랜스 휴먼, 포스트 휴먼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도대체 어디까지가 인간이며 인간의 본질과 정체성은 무엇인가 등등.
  현대기술문명은 과학연구와 기술개발이라는 두 축을 근간으로 발전해 왔으며 과학과 기술은 사회변동과 발전의 핵심동인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온 주체는 다름 아닌 인간 자신이며, 아무리 편리하고 우수한 과학기술일지라도 사회가 수용하지 않으면 인간 삶을 변화시킬 수 없다. 당장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기계로 인해 기존 일자리가 사라지고 인간 노동의 상당 부분이 기계노동으로 대체될 거라는 우려 때문에 과학기술을 버리거나 인간이 인공지능 기계와 경쟁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어떠한 경우든 인공지능 기계는 인간을 대체할 수 없으며 가상현실이 아무리 생생할지라도 실재하는 현실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기계노동과 인간노동은 다르다. 똑같은 노동을 하더라도 기계가 하는 노동은 프로그래밍으로 이루어지는 기계적 노동이고, 인간의 노동은 감정, 감성을 동반하는 인간적 노동이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노동의 기쁨을 깨닫고 자아실현을 이룰 수도 있지만 기계는 결코 그럴 수 없다. 기계와 인간이 공존하는 미래에도 기계의 일과 인간의 일은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기술문명의 발전과 인간의 정체성
  한편, 기술이 발전하면 기계로 인한 인간소외, 자존감 상실, 인간 정체성에 대한 아노미 현상 등이 만연할 수 있는 만큼 4차 산업혁명과 트랜스 휴먼시대에는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기술문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 과연 어떤 것이 인간적인가’ 등 근원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함께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미래교육의 숙제다. 사회적 기능을 가진 교육의 우선적 목적은 인간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가치와 규범을 체득하게 하는 사회화에 있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시대의 교육은 지식, 교양 교육 보다는 기계나 다른 동물과는 다른 인간의 존엄성을 깨닫게 하고 자존감을 갖게 하는 교육이 돼야 한다. 인간 정체성이 무너지고 나면 트랜스 휴먼이건 4차 산업혁명이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