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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적 여행의 감동과 울림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글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우리도 언젠가 광활하게 펼쳐진 거칠고 아득한 바다로 나아가, 산티아고 노인처럼, 강인한 의지로, 스스로를 이겨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많은 이들의 활동 반경이 위축되고 있고, 모험적 삶의 순간을 허락했던 여행의 의미도 현저하게 달라지고 있다. 어느새 사람들은 해외보다는 국내, 복잡한 곳보다는 호젓한 곳을 선호하게 되었다. 스스로를 풀어줌으로써 성숙한 자아로 발돋움하게 해주던 여행이 방 안에서 치르는 독서 형식으로 변모하기도 하였다. 물론 여행이란 복귀를 전제로 하는 떠남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귀환의 형식을 띤다. 하지만 돌아온 자아는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다. 새롭고 낯선 경험을 받아들인 탓에 그는 이미 한 차원 달라진 존재로 몸을 바꾼 것이다. 일상을 떠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만나보는 책으로의 여행 역시, 천천히 사라져가지만 그 사라짐의 눈부심으로 빛나는 역설의 순간을 만나는 과정이 아닐 수 없다. 그 눈부신 역설의 순간을 담은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한번 소환해보자.


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Miller Hemingway
『노인과 바다』(1952)로 퓰리처상,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소설가.
문명의 세계를 속임수로 보고, 인간의 비극적인 모습을, 간결한 문체로 묘사한 20세기의 대표작가이다.



운명과 맞서 싸우는 인간의 강인한 의지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오랫동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다른 어부들의 놀림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카리브해로 배를 끌고 나간다. 어느 날 만난 엄청나게 큰 고기는 미끼를 물고는 바닷속을 헤엄쳐 노인과 배를 밤새도록 끌고 다닌다. 하지만 노인은 포기하지 않는다. 죽을힘을 다해 고기를 끌어 올려 배에 붙들어 맨 채 집으로 뱃머리를 돌린다. 그런데 그때 상어가 습격하여 노인이 힘들게 잡은 고기를 뜯어 먹기 시작한다. 다시 노인은 노 끝에 칼을 매고 상어와 힘겹게 싸워 항구로 돌아왔지만 이미 고기는 뼈만 남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노인은 그 참담한 결과에 절망하지 않는다. 그는 밤에 혼자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쓰러지듯 잠에 빠져든다.

  소설이 인생에 대한 해석을 담는다고 할 때 ‘노인’은 강렬한 의지를 가진 인간을, ‘바다’는 거칠고 고된 현실을, ‘고기’는 인생의 목표를, ‘상어’는 삶에서 마주치는 장애물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상징들을 통해, 비록 인간이 패배할지라도 그 패배에서 오히려 역설의 존엄성을 발견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황폐한 현실에서 어떻게 자신만의 삶을 추구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되고, 좌절을 모르는 한 노인에게서 험난한 운명과 맞서 싸우는 인간의 강인한 의지를 배우게 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삶이 모험적 여행임을 은유하는 소설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산티아고 노인을 따라가면서 인간과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하게 되고, 그가 지나온 낯선 흔적을 따라 말할 수 없는 상상적 여행의 감동과 울림을 한껏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도 언젠가 광활하게 펼쳐진 거칠고 아득한 바다로 나아가, 산티아고 노인처럼, 강인한 의지로, 스스로를 이겨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넓이보다는 깊이의 여행을 위하여

  진정한 여행은 오지를 찾아 나서는 열정에 의해 완성된다. 오지라는 말에는 훼손되기 이전의 원형과 오랜 자연스러움이 담겨 있고, 자연과 인간이 어울려 빚어내는 놀라운 순간적 통일성이 깃들여 있다. 벤야민(W. Benjamin)은 세계와 내면의 순간적 통일성을 “아우라(Aura)의 경험”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러한 ‘아우라’를 가장 순연하게 간직한 곳이 바로 오지일 것이다. 우리가 책을 통해 만나는 오지는 산간벽지 같은 주변부이거나, 사람들이 가닿기 어려운 정신의 극한이거나, 사람들 흔적이 드문 간이역이거나, 꿈속에서나 가볼 수 있는 격절의 공간일 것이다. 그때 우리의 여행은 ‘넓이’가 아니라 ‘깊이’의 문제, 곧 얼마나 더 많이 가보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더 깊이 아우라에 닿아보았느냐의 문제로 수렴될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문학 작품의 여행을 통해 우리는 이 낯선 팬데믹(pandemic)의 시대에도 거듭 새로워진 자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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