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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글_ 김석수 경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우리는 철학을 통해서 비로소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창조적으로 상상할 수 있으며,
또한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일찍이 선진 유럽 국가들에서는, 특히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철학교육을 받아왔다. 그래서 이들 나라의 학생들은 인간, 자연, 사회의 각 영역에서 출현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스스로 분석·비판하고 창조적으로 사유하는 철학적 삶을 생활화해왔다. 특히 오래전부터 바칼로레아(Baccalauréat) 시험을 치러온 프랑스 학생들은 철학적 사고를 통해 스스로 사유하고 정당하게 행동하는 책임 있는 시민으로 성장해왔다.

  또한 독일 학생들도 철학 정신을, 즉 논쟁적 사유하기에 기초하여 주어진 현안들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 Konsens)’ 정신을 생활 속에 실천해왔다. 이처럼 이들은 철학적 대화를 통해 진리와 정의를 실현하려고 했던 소크라테스의 철학하기 정신을 오늘에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들 나라의 철학교육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학생들이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해왔다.


철학교육이 부재한 우리교육의 현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학생들은 그동안 이런 철학교육을 제대로 받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왜 이런 교육이 제대로 안착하지 못했던가? 이는 아마도 약소국의 서러움을 벗어나야 했던, 그래서 급성장을 추진해야 했던 우리 현대사의 다급한 상황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급성장을 위해 한편에서는 국가의 명령에 수동적으로 따라야 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시장의 경쟁에 치열하게 참여해야 했다. 그러나 이 명령과 경쟁이 지나친 상황에서는 근원적으로 사유하는 철학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더욱이나 급성장을 향한 명령교육이나 경쟁교육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답 암기나 답 찾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 질문을 통해 근원적으로 성찰하고 비판하는 철학교육은 성장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사실 소크라테스의 철학하기는 답을 전달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답이 과연 답일 수 있는가에 대해 근원적으로 질문하는 비판적 사유하기와 논리적 대화하기에 집중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동안 우리의 교육에는 좋은 질문을 구성하는 교육보다는 빨리 답을 찾고 많은 답을 암기하는 교육이 중시되어왔다. 그러나 이런 교육구조에서는 비판적이고 성찰적인 주체가 성장하기 어려우며, 따라서 기억 중심의 인간에서 창조하는 인간으로 나아가는 것도 쉽지 않다.


‘질문하기’ 교육의 근간이 되는 철학


  우리는 지금 21세기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이런 시대에 기억 중심의 교육은 그 존재 가치를 지탱하기가 쉽지 없다. 이 지상의 어떤 인간도 지식의 양적 차원에서는 빅데이터를 기초로 하는 인공지능 전자두뇌를 이겨낼 방법이 없다. 우리는 지금 상상력을 통해 창조하는 인간으로 거듭나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이런 상상력의 활성화는 끝없이 근원을 묻는 질문하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소크라테스가 대화에서 보여주었듯이, 우리가 서로 질문하기를 통해 각자가 확신하는 기존 답이 답이 아닐 수 있는 가능성에 직면할 때, 그래서 아포리아(aporia)를 경험할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지평으로 우리의 사유를 넓혀나갈 수 있다. 질문이 열려있는 교육에서만 상상력이 활성화될 수 있으며 창조하는 인간도 기대할 수 있다. 지식정보화 사회와 인공지능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오늘의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지식의 양적 축적이 아니라 지식을 새롭게 구성해내는 상상력의 활성화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교육은 이 상상력을 길러주는 질문하기 교육보다는 답하는 교육에 집중해왔다. 사실 질문이 열려있지 못한 교육은 상상력의 활성화를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독단을 일삼는 닫힌 사회를 초래한다. 상상력을 활성화하는 질문하기 교육이야말로 개방사회로 나아가는 데 초석이 된다. 정치의 민주화, 교육의 선진화는 상상력을 활성화하는 질문하기 교육으로부터 가능하다. 물론 상상력의 활성화가 반드시 좋은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지 못하게 하고 환상에 젖어들게 할 수도 있다. 그러기에 상상력의 자유로운 활동도 지성의 엄정한 반성 활동으로부터 견제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질문하기는 이들 두 활동의 견제와 조화 속에서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견제와 조화를 지향하는 학문이 바로 철학이다. 그러므로 질문하기 교육에 근간이 되는 학문은 철학이 아닐 수 없다. 철학이야말로 근원을 사유하는 학문으로서 모든 분과학문이 전제로 삼고 있는 전제 그 자체의 정당성을 되묻는 무전제의 학문이자 질문의 학문이다. 우리는 이 학문을 통해서 비로소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창조적으로 상상할 수 있으며, 또한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질문하기로서의 철학교육이야말로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와 인공지능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는, 또한 민주적 시민으로 성장해가야 하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절실한 교육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우리 교육계도 이제 철학교육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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