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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 속의 긍정, 절망 속의 희망을 찾아서

글_ 홍정선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전 『문학과지성사』 대표)



까뮈의 『페스트』에는 ‘반항적 인간’에 대한 옹호와 함께
우리 인간이 수많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긍정적 사랑의 대상이라는 생각이 숨어 있다.


  이 세상은 아름답고 행복한 곳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 세상은 불행하고 추악한 곳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생텍쥐페리는 『야간비행』, 『인간의 대지』 등을 통해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만드는 의지, 용기, 우정, 책임감 등을 이야기했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이 ‘인간의 대지’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었다. 반면에 까뮈는 『시지포스의 신화』, 『페스트』 등을 통해 부조리한 인간의 모습, 이미 필연적 죽음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이 겪는 고통과 재앙과 이기적 행태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이 두 작가는 이 세상에 대해, 아니 우리 인간에 대해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해 그렇지 않다. 두 작가 모두 우리 인간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한 사람은 동화적인 명료함으로, 다른 한 사람은 깊이 숙고해야 할 상징성으로 보여주었을 따름이다.

  까뮈는 『페스트』의 첫머리에서 이 소설을 연대기라고 말하면서 서술을 시작한다. 이 소설은 ‘서술자’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밝히지 않은 채 오랑이라는 알제리의 한 소도시에 갇혀서 페스트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날카롭게 관찰하며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오랑시에 살고 있는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어느 날, 계단에서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발견하고 많은 사람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오랑시는 이 전염병이 페스트라는 판단에 따라 외부세계와 완벽하게 차단된다. 까뮈의 『페스트』는 바로 이 같은 재앙에 직면해서 여러 인물이 보여주는 다양한 행동 양태를 그린 소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소설의 핵심적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이 세상에 대해, 우리 인간에 대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까뮈의 『페스트』를 통해 본 인간 양상


  먼저 이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우리 첫 번째 태도는 이기적인 ‘도피적 태도’이다. 신문기자인 랑베르는 자신은 이 도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앙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애인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기만의 행복을 찾기 위해 온갖 방법으로 탈출을 모색한다. 두 번째로 이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는 태도는 파늘루 신부로 대표되는 ‘초월적 태도’이다. 파늘루 신부는 강론에서 오랑시의 재앙은 인간들의 탐욕과 사악함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나무토막이 이 도시의 하늘에서 소용돌이치다가 닥치는 대로 후려갈기고 피투성이가 되어 다시 솟아올라 마침내 진리의 수확을 준비하는 파종을 위하여 인류의 피를 뿌리는 고통의 광경”을 사람들에게 연상시켰다. 그렇지만 파늘루 신부는 죄 없는 어린아이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신념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 소설의 가장 핵심인물인 의사 리외가 보여주는 신이 창조한 이 세상이 “죄 없는 어린아이마저 주리를 틀게 만들어진” 곳이라면 “나는 죽어도 거부하겠습니다”라는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반항적 태도’에서 발견한 인간의 긍정성


  여기에서 우리는 까뮈 자신의 태도이자 이 소설이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유형의 태도, 즉 ‘반항적 태도’를 발견한다. 의사인 리외는 인간이 겪는 비참함에 대한 연민과 성실한 직업정신으로 최선을 다해 페스트와 싸운다. 이런 그의 주위에 탈출을 단념한 랑베르와 신이 없는 세상에서 성자가 되려 하는 타루와 말단 공무원인 그랑, 그리고 아이의 죽음에 충격받은 파늘루 신부 등이 모여들어 보건대를 조직하고 묵묵히 필사적으로 운명처럼 덮친 재앙에 반항하여 함께 싸운다. 그 과정에서 타루와 신부는 감염되어 쓰러지고 페스트는 물러간다. 그리고 지칠 대로 지친 리외는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럼에도 리외는 의사로서의 자기 직분을 변함없이 성실하게 수행한다. “환자들에게 휴가는 없다.”라고 말하면서. 또 우리 “인간들 속에는 경멸할 것보다도 찬탄할 것이 더 많이 있다는 것”을, 페스트균은 결코 죽지 않으므로 항상 경계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증언하고 싶었다고 말하면서 이 소설의 연대기적 서술자가 바로 자신임을 밝힌다.

  까뮈는 『페스트』라는 연대기적 형식의 소설을 쓴 이유를 자신의 분신인 리외의 입을 빌려 “성자가 될 수도 없고 재앙을 용납할 수도 없기에 그 대신 의사가 되겠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개인적인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행해나가야 할 것에 대한 증언일 뿐이다.”라는 말로 밝히고 있다. 그의 이 말 속에는 ‘반항적 인간’에 대한 옹호와 함께 우리 인간이 수많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긍정적 사랑의 대상이라는 생각이 숨어 있다.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프랑스의 소설가·극작가. 1942년 『이방인』을 발표하여 칭송을 받으며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에세이 『시지프의 신화』, 희곡 『칼리굴 라』 등을 통해 부조리한 인간과 사상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소설 『페스트』 등의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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