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이달의 기사 전체보기

마무리의 자세와 시작을 맞는 자세

글_ 홍정선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전 문학과지성사 대표)


 


  한 해가 끝나가고 있다. 이 해가 끝나면 어떤 사람은 대학생이 되고, 어떤 사람은 환갑을 맞고, 어떤 사람은 퇴직을 한다. 우리는 이처럼 탄생과 소멸 사이의 시간을 토막 내어 만들어 놓은 매듭, 이를테면 입학과 졸업 같은 매듭을 매년 통과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 지구상에서 생명체의 탄생과 소멸이란 사건은 흔하디흔한 일이지만 우리 인간만은 그 사건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무한히 반복되는 생명체의 탄생과 소멸에 대해 특별한 인문적 의미를 부여하고 탄생과 소멸 사이에 성장과 노쇠의 시간을 다시 설정하면서 다양한 인문적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 인간은 시작과 끝을 짐작하기 어려운 우주적 시간 안에 인간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수많은 시간의 매듭을 만들어서 지난 시간에 대한 반성을 유도하고 미래의 시간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었다. 인간이 자신의 삶과 죽음을 좀 더 품위 있는 방식으로 영위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의연하게 맞이하는 시작과 끝, 이형기의 시 「낙화(落花)」
  이형기의 시 「낙화(落花)」 는 우리 인간이 꼭 지켜야 할 어떤 시간의 매듭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 시의 첫머리는 평이한 언어로 메시지를 비교적 선명하게 느끼게 만드는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철 맞춰 떨어지는 꽃을 매개로 우리 인간이 어떤 일을 끝내는 데에는 반드시 적절한 때가 있다는 것을 되풀이 강조한다. 예컨대 때를 맞춰 사라지는 꽃잎들이 그렇지 않은 꽃잎들의 지저분함에 비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혹은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라는 시구에서 보듯 좀 더 노골적으로 다음 세대의 탄생을 위해서는 지금 세대의 사라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그 강조는 되풀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별의 아픔, 사라지는 것의 고통이 나의 성숙과도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나의 사랑, 나의 결별/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내 영혼의 슬픈 눈”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형기의 「낙화(落花)」는 우리가 삶에서 직면하는 수많은 일에서 시작과 끝을 어떻게 의연히 맞이해야 하는가를, 떠날 때의 아픔과 아쉬움과 섭섭함 등의 감정 앞에서 어떻게 품위 있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경건하고 정성스런 모심의 자세, 조병화의 시 「의자 7」
  반면에 조병화의 시 「의자 7」은 새로운 시작, 다음 세대의 등장을 어떤 자세로 맞이해야 하는 가에 대해 너무나 쉬운 언어로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 시의 메시지를 다음과 같은 시구에서 분명하게 읽을 수 있다. “지금 어드메쯤/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그분을 위하여/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이 시에서 반복되고 있는 이 시구는 의자의 다음 주인을 위해 우리가 경건한 모심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계시옵니다’라는 경어체에서 알 수 있듯이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그 분에게 우리의 자리를 제대로 물려주기 위해서는 정성스런 준비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병화의 「의자 7」은 의자의 주인인 지금 세대가 자신의 세대를 어떻게 마무리하고 다음 세대를 어떤 자세로 영접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흥미로운 시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일하던 자리를 어수선하게 난장판으로 만들면서 떠난다. 그런 사람은 다음 사람을 올바르게 맞이하는 태도를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 또 그렇게 자리를 물려받은 사람은 앞 사람에 대해 존경보다는 원망이나 경멸의 감정을 가진다. 따라서세를 가져야 한다. 이 사실을 조병화의 「의자 7」은 평이한 언어로 훌륭하게 전달하고 있는 시이다.

 

열람하신 정보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