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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가장 큰 상처, 이산가족

글_ 강응천 역사저술가(도서출판 문사철 대표)

 

2010년 여름 인도네시아 발리 섬의 우붓에서 열린 한 출판 포럼에 참석했다. 그날 저녁 대부분 동남아시아 사람들인 참석자들과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한국은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잖아요? 북쪽에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 가족을 만나죠?”


한국인이 외국에서 으레 받을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해 편하게 대답했다.


“남북이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가족이라고 해도 개인적으로는 만나기 힘들어요. 이렇게 외국에 나와서도 정부의 허락 없이 북한 사람을 만나면 처벌을 받을 수도 있거든요.”


참석자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인도네시아 출판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네 나라 민주주의 국가 아니었던가요?”


필자는 잠시 당황했다. 대다수 한국인처럼 필자도 1980년대 말 이래 민주화된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솔직히 미국이나 서유럽이 아닌 지역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의심하는 말을 듣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한반도 분단의 기형적 현상 ‘이산가족’


그러나 어찌 보면 그런 의문은 당연하다. 일반적인 경우 정치적 이유로 가족이나 민간인의 자유로운 만남을 막는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닐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분들에게 분단국가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정도였을지도 모른다. 두 나라는 본래 한 나라였다가 몇 가지 이유로 싱가포르가 분리 독립했다. 그 이후로 두 나라 사이에 이산가족 상봉이 문제가 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어쩌면 중국과 타이완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두 나라도 남북한처럼 무력충돌을 겪었지만 민간인의 왕래는 비교적 자유롭다.


사실 동남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의 어느 누가 한국인이 겪고 있는 분단의 아픔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만큼 한반도의 분단은 기형적 현상이다. 필자를 향했던 ‘돌발’ 의문처럼 이산가족 문제는 그 기형적 성격을 가장 아프게 보여주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해방 당시 한국인 치고 분단을 기대하거나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무도 원하지 않았기에 분단은 더욱더 폭력적으로 이루어졌다. 처음 38선에서 차량과 열차의 통행을 막았을 때는 단순히 관리상의 편의라고들 생각했다. 사람들은 걸어서 남북을 왕래했다. 북한의 급진 개혁에 불만을 품고 월남하는 사람들이나 미군정에 불만을 품고 월북하는 사람들은 지금처럼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었다. 많은 가족이 잠시 이별을 했지만 그것은 곧 끝나게 될 ‘불편한’ 이별일 뿐이었다. 그러나 1947년 말 통일임시정부의 수립을 논의하던 미소공동위원회가 최종 결렬되고 남북이 각각 정부 수립을 준비하자 38선에는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돌았다.

 

 

38선과 생이별, 그 후 70년의 세월


1948년 8월과 9월, 남북한은 살아 보지도 않고 이혼부터 한 부부처럼 딴 살림을 차리고 말았다. 편의상의 경계선인 줄 알았던 38선은 사실상의 국경선으로 바뀌었다. 잠시 헤어진 줄 알았던 남북한의 가족들은 영구적인 생이별의 위기에 처했다. 6·25전쟁은 일부 가족에게 재상봉의 기회를 주었다. 인민군이 남하하는 동안, 그리고 국군이 북상하는 동안, 남북의 경계를 넘나들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가족들에게 전쟁은 끔찍한 이산의 아픔을 안겨주었다. 예상치 못했던 남침과 인민군의 빠른 진격은 준비 안 된 피란민을 양산했고, 피란길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국군이 압록강 부근까지 진격했다가 철수할 때 또 한 번 대량의 이산가족이 생겨났다.


전쟁은 통일로 이어지기는커녕 아무도 원치 않았던 분단을 더욱 굳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남북한은 서로 사랑하는 가족들이 살고 있는 상대방을 다른 어떤 민족의 나라보다 더 미워해 왔다. 그렇게 70년을 보냈다. 이 모순된 상황을 세계의 어느 민족이 이해할 수 있을까? 남북한 당국은 다른 건 몰라도 이산가족 상봉만큼은 어떤 경우에도 중단하지 말고 이어갈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만이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는 이 해괴한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는 길일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필자처럼 “너희 민주주의 아니었어?”라는 질문을 받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또 그처럼 멀어 보이던 통일이 어느 순간 눈앞에 다가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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