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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주의 시대, 니체를 다시 보다

글_ 김석수 경북대 철학과 교수

 

  현대는 니체 철학의 부활 시대라고 해도 될 만큼 그의 철학이 주목을 받고 있다. 철학이 시대정신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면, 이런 흐름 역시 시대정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시대가 니체 철학을 찾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시대가 허무주의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삶의 희망을 상실한 채 생존의 법칙에 묶여 하루하루를 그저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더욱이 인터넷 문화의 발전과 글로벌 자본의 확산으로 오늘의 우리는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이 왜 사는지 돌아볼 겨를도 없이 그저 주어지는 업무에 떠밀려 수동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는 이런 삶에조차 참여도 못한 채 무력하게 바깥으로 밀려나는 자들도 증가하고 있다. 그야말로 우리 사회에는 삶의 희망을 포기한 채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지금 우리 사회는 피로사회를 넘어 포기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우리 사회에는 허무의 그림자가 점점 더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자유정신을 추구하는 ‘위버멘쉬의 길’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상황을 넘어서기 위한 다각도의 모색도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날 주목을 받고 있는 니체 철학을 통한 새로운 모색은 그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허무에 직면해 있는 오늘의 현대인은 자신의 고달픈 삶에서 새로운 희망을 건져내고자 니체의 철학에 노크하고 있다. 익히 알다시피 니체는 신이 죽은 허무주의 시대를 넘어가기 위해 ‘수동적 허무주의’의 길이 아닌 ‘능동적 허무주의’의 길을 추구한다. 그에 의하면 전자의 허무주의에는 삶의 가치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한 채 그저 현실의 생존법칙에 순응한 채 안주하며 살아가는 태도가 담겨 있다. 그런가 하면 후자의 허무주의에는 이런 현실에 예속되지 않고 매 순간 끝없이 자기창조를 감행하는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 그는 이 후자의 입장에 기초하여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지금 이 ‘순간’을 긍정하는 인간의 길, 그래서 ‘힘에의 의지’를 표현하는 인간의 길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이 인간은 우리를 노예로 길들이는 정해진 답이나 규율을 가로질러 자신의 자유정신을 추구하는 위버멘쉬(Übermensch)의 길로 나아간다. 이 위버멘쉬는 하나의 절대적 지평에 갇혀 있기보다는 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관점주의로 향해 있다. 따라서 이 위버멘쉬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의무를 이행하는 낙타의 길에만 머물러 있거나, 기존의 모든 규율, 관습 등을 격파하고 스스로에게 명령하며 자율성을 추구하는 사자의 길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이는 외부로부터 자기에게 주어지는 의무와 이를 극복하도록 스스로에게 강제하는 명령이라는 틀을 넘어 놀이하는 순진무구한 아이의 길로 향해 있다. 이 아이는 선악이나 옳고 그름이라는 이분법에 갇힌 인간을 넘어서려고 한다. 놀이하는 아이는 대지에서 고통을 짊어진 채 고행을 감내하는 복종의 길이나, 대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소유하고 지배하는 정복의 길을 넘어 대지에서 대지와 함께 춤추며 노는 자이다.

 

허무적 삶을 넘어 새로운 자기놀이로
  사실 이 대지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생로병사라는 어쩔 수 없는 반복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리는 이 과정이 없기를 희망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그 과정에 참여하여 그 과정을 긍정하며 놀이할 수 있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그동안 인류의 역사는 놀이의 가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 신이라는 이름 아래서 강한 율법과 규율이 작동했던 시대에는 놀이는 옳음의 가치를 이탈하는 타락으로 규정되기 십상이었고, 돈이라는 이름 아래서 강한 경쟁과 생산이 지배하는 오늘의 사회에서는 놀이는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무용한 것으로 규정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놀이는 몸의 감각을 활성화해주며, 아울러 우리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통해 억압된 무의식을 풀어내는 길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이 놀이는 성취 목표에 속박된 오늘의 우리 삶으로부터 삶의 무게를 덜어내 주며, 저마다 지금을 긍정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윤활유를 제공한다. 또한 이 놀이는 늘 새롭게 자기를 창조할 수 있는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다. 현대인은 이성이 설정한 목표에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 이 목표를 내려놓고 몸이 원하는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바로 거기에 진정한 놀이가 존재한다. 우리는 이 놀이를 통해 고달픈 지금을 아름답고 즐거운 지금으로 승화시켜내야 한다. 허무를 벗어나는 삶의 즐거움은 늘 새롭게 지금을 맞이하고 지금을 살려내는, 그래서 진정으로 자기를 새롭게 길러내는 예술적 놀이에 있다. 바로 여기에 니체가 살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