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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광주, 민주주의에 봄이 오다

글_ 강응천 역사저술가(문사철 대표)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5·18 민주화 운동은 한국 사회를 그 이전과 완전히 구분되는 새로운 사회로 만들어 놓았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5·18 민주화 운동을 기점으로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다.


  5·18 민주화 운동이 한국 사회에 가져다준 가장 큰 변화는 국민의 의식 속에 민주주의를 움직일 수 없는 가치로 심어 놓았다는 점이다.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5·18 민주화 운동 자체는 실패한 민주화 운동이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자 군부는 그 지역을 폐쇄하고 군 병력을 집중시켜 시위를 진압했다. 그 과정에서 군대가 국민을 향해 총기를 난사하고 총검을 휘두르는 비극까지 일어났다. 5·18 민주화 운동의 실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군부 세력의 집권으로 이어지고, 일시적이나마 이 땅에서 민주주의는 영원히 불가능할 것 같은 좌절감을 국민에게 안겨주었다. 그러나 그러한 좌절감은 말 그대로 일시적이었을 뿐이다. 5·18 민주화 운동의 정신은 7년 후 6월 민주항쟁으로 활활 타올랐다.

 

 

신군부 독재에 맞선 민주화 물결
  5·18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배경을 잠시 살펴보자. 1979년 10월 26일 유신 체제 아래 철권통치를 휘둘러오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국민은 기나긴 군부 독재가 막을 내리고 진정한 민주주의 시대가 열릴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신군부로 불린 한 무리의 정치군인들은 쿠데타를 일으켜 군과 정부를 장악하고 정치인들의 손발을 묶었다. 이 같은 반역사적 폭거에 맞서 전국 각지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광주에서 일어난 시위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신군부는 유독 광주의 시위를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갔다.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북한과 연계된 폭력혁명의 시도로 몰아갔다.

 
  5·18 민주화 운동이 좌절한 뒤 한동안 한국은 숨죽여야 했다. 언론은 모두 재갈이 물려 있었고 야당 정치인들은 갇혀 있지 않으면 해외로 떠나야 했다. 그러나 침묵과 굴종을 강요당하는 동안에도 국민의 민주 의식은 계속해서 성장했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대한 국민의 요구 수준은 군부 독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높아져 있었다. 유신 체제가 시대착오적이었는데 하물며 신군부 독재가 그러한 국민을 억누를 수는 없는 법. 1987년을 강타한 전 국민적 저항은 5·18 민주화 운동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역사적 행동이었다.


  5·18 민주화 운동이 한국 사회에 가져다준 또 한 가지의 변화는 미국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었다. 5·18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광주의 대학가에는 미국의 제7함대가 부산항에 들어왔다는 대자보가 나붙었다. 광주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미국이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 함대를 보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은 광주 시민의 편이 아니었다. 한국이 민주화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북한에 흡수되는 일만은 막겠다는 것이 미국의 계산이었다.

 

2007년 개봉한영화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 

 

한국 사회의 전환점, 5·18 민주화 운동
  미국에 대한 순진한 기대는 5·18 민주화 운동이 좌절한 뒤 분노로 바뀌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권은 물론 평시작전권까지 주한미군이 갖고 있었다. 그런데 신군부가 군대를 광주로 이동시켜 시위를 진압한 것은 미군의 승인이나 묵인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많은 한국인이 생각했다. 반미의 무풍지대로 여겨지던 한국에서 반미 시위가 일어나고 주한미국문화원에 방화하는 극단적인 사태도 벌어졌다. 미국은 졸지에 천사로부터 악마로 바뀌고 말았다.


  그 이후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옛날로 돌아가지 않았다. 물론 5·18 민주화 운동 직후의 감정적인 분노가 계속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의 의식이 성숙해 가면서 그들은 더 이상 미국을 천사로도 악마로도 보지 않는다. 미국 역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나라이며 이익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한국을 돕는다는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이는 한국인의 정치적 경제적 자신감이 상승하면서 그만큼 자존감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5·18 민주화 운동은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인의 신념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울러 대외적인 자존감과 자주의식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평화와 통일이라는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한국인은 어떤 경우에도 결코 5·18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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