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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시가 자아내는 애틋하고 행복한 기억들

글_ 홍정선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전 『문학과지성사』 대표)

 

  시에도 냄새가 있다. 시간과 장소와 사람의 냄새가 있다. 박목월의 어떤 시에서는 경상도의 고향 냄새가 나고, 조지훈의 어떤 시에서는 조선시대에 방불한 시간의 냄새가 난다. 그리고 서정주의 시에서는 신들린 듯한 무당 냄새가 나고, 박재삼의 어떤 시에서는 떨쳐버릴 수 없는 유년기의 냄새가 난다. 그래서 나는 시들이 지닌 그런 냄새를 맡으며 시를 읽는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냄새를 느끼며 시를 읽곤 한다. 아마도 내가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박재삼의 「추억에서」란 시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이 두 편의 시가 지닌 냄새 탓이다. 이 두 편의 시에서 느낄 수 있는 여성에 대한 냄새가 내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어떤 애틋하고 행복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까닭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의 시
  나는 박재삼의 「추억에서」란 시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없이는 읽을 수 없다. 이 시에 나오는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란 구절과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란 구절을 어머니의 삶에 대한 안타까운 연민의 감정 없이는 읽을 수가 없다. 박재삼의 시는 어린 자식들을 집에 남겨둔 채 진주장터를 오가며 생어물 장사를 하는 어머니의 고달픔을 그린 빼어난 작품이다. 물고기 행상을 하는 어머니에게 해가 져도 팔리지 않는 고기 몇 마리는 박재삼의 탁월한 표현처럼 그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아무리 몸부림쳐도 벌 수 없는 돈, 헤어날 수 없는 가난처럼 보였을 것이다. 또 그렇게 몸부림치다 동동걸음으로 돌아오는 귀갓길은 늘 배고픔에 지쳐 있을 자식 생각에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눈물의 길이었을 것이다.
  박재삼이 어머니에 대한 떨쳐버릴 수 없는 기억을 바탕으로 이 시를 썼듯이 나 역시 어머니에 대한 떨쳐버릴 수 없는 기억을 바탕으로 이 시를 읽는다. 나의 어머니는 그다지 넉넉하지 못한 종갓집의 종부로 평생을 힘들게 살았다. 손바닥의 손금이 모두 지워지고 풀칠한 것처럼 될 정도로 농사일과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에 시달리며 밤낮으로 쉴 틈이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런 어머니가 어느 여름날 저녁 중학교에 다니던 내 손을 꼭 쥐고 했던 말을 나는 평생 잊을 수가 없다. “너는 손에 흙 묻히고 살지 말거라”란 당부였다. 박재삼의 「추억에서」를 읽으면 어머니의 그 한스러운 당부와 함께 내가 못마땅할 때 미간을 찌푸린 채 입으로는 미소를 짓던 표정이 늘 함께 떠오른다. 그래서 어떤 뛰어난 교육학자의 훌륭한 말보다도 더 강력한 교육적 효과를 가진 어머니의 그 말 속에서 나는 애틋하고 행복하다.

 

두 가지 해석을 낳은 여인과 나의 누이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해석이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여인의 모습을 두고 ‘부덕(婦德)의 화신(化身)’이라고 말하는 것이 그 하나이고, 그런 여인이 아니라 매섭고 단호한 여인의 모습이라고 말하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떠나가는 사람을 말없이 고이 보내 주겠다는 태도, 떠나는 장면 앞에서 죽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겠다는 태도가 낳은 상이한 해석이다. 자신을 버리고 떠나가는 임을 위해 마음이 상할 일은 조금도 하지 않으려는 태도라고 보는 것이 전자의 해석을 낳았다면, 기정사실이 된 이별 앞에서 과거에 대한 모든 미련을 단호하게 잘라버리는 태도라고 보는 것이 후자의 해석을 낳은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시를 읽을 때 나의 누이를 떠올리며 그 같은 두 가지 해석이 서로 다른 태도를 지닌 두 여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여자의 두 가지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이유는 나의 누이가 직접 보여준 삶 때문이다. 고등학교, 대학에 다니던 시절 고향에 가는 길에 누이의 집에 들렀다가 가는 길에는 안쪽 호주머니에 늘 누이가 나 모르게 넣어놓은 적지 않은 돈이 들어 있었다. 직접 주게 될 경우 내가 느낄 부끄러움을 배려하여 누이는 그렇게 돈을 주고는 했었다.
  그런 누이가 10년 전쯤 나에게 자형이 바람피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느 날 젊은 여자가 자신이 안방에서 살겠다고 집으로 찾아온 사건이 있었다고. 그 사연을 듣고 안방을 내준 후 겸상을 차려서 한 달을 대접했다고. 그랬더니 그 여자가 자신은 불편해서 이 집에 더 못 살겠다, 미안하다고 말하며 떠났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자애롭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누이가 참으로 강인하고 매서운 면모를 가진 여자라는 사실을 절감했었다.   
  결혼 초에 마누라가 가끔 장난처럼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여자가 누구냐는 질문을 던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어매’라고 대답하여 마누라를 실망시키곤 했었다. 그러다가 어머님이 작고한 후 한참이 지났을 때 대답이 달라질 것이라 기대했었는지 다시 가장 좋아하는 여자가 누구냐는 질문을 해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별 망설임 없이 ‘누나’라고 대답해서 마누라를 크게 실망시켰다. 마누라는 아마도 속으로 나를 유년기에 고착된 구제 불능의 남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문맹에 가까운 ‘어매’와 ‘누이’가 어떤 사람보다 훌륭한 교육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며, 그분들을 떠올릴 때마다 애틋한 행복에 잠기는 데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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