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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진 날, 인류는 우주로 떠나게 되었다

글 _ 지웅배 연세대 은하진화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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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이미지천문학은 수억 광년 먼 거리에 떨어진 별과 은하의 원리를 지상으로 옮겨오는 여정이다.기사 이미지



  1666년 영국의 링컨셔 인근의 한 시골 마을 들판에 어린 소년이 앉아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소년의 머리 위에 있던 나무에서 사과가 하나 떨어졌다. 소년은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진 사과를 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의 이야기다. 


  우리는 뉴턴이 정수리에 사과를 얻어맞고, 사과가 떨어진 이유가 바로 지구가 잡아당기는 중력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뉴턴이 실제로 사과를 얻어맞은 적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현재 많은 역사가들은 이 일화가 뉴턴의 제자들이 그의 천재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덧붙인 일종의 ‘MSG’라고 생각하고 있다. 



달은 왜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늘에 떠 있을까?

  실제로 뉴턴이 한 고민은 단순히 “사과가 왜 땅으로 떨어지는가”가 아니었다. 그가 남긴 <프린키피아>를 보면 뉴턴을 고민하게 만든 진짜 범인은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늘에 높이 떠 있는 달’의 정체였다. 뉴턴은 사과처럼 작고 가벼운 물체도 지구의 중력에 붙잡혀 떨어지는데, 대체 어떻게 훨씬 거대하고 무거워 보이는 달이 떨어지지 않고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렇다면 뉴턴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 찾았을까? 그는 한 가지 재밌는 사고 실험을 제안했다. 높은 산꼭대기에서 대포를 하나 세우고 옆으로 대포알을 발사한다고 생각해 보자. 대포알을 느리게 발사하면 얼마 안 가서 산기슭 바로 앞에 툭 떨어질 것이다. 대포알의 발사 속도를 점점 빠르게 올리면 대포알은 더 멀리까지 둥근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우리 지구가 평평하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 지구는 둥근 공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제 둥근 지구 위에 솟은 산에서 대포알을 발사하는 모습을 지구 바깥 우주 공간에서 본다고 생각해 보자. 


  처음에 대포알이 느리게 발사되었을 때에는 역시 둥근 지구 위에서 얼마 가지 않아 금방 코앞에 떨어진다. 하지만 충분히 빠르게 대포알을 쏠 수 있다면, 둥근 궤적을 그리며 떨어지는 대포알의 궤적이 영원히 지구 표면에 닿지 않게 만들 수 있다! 마치 지구의 달이 영원히 땅에 닿지 않고 지구 주변을 맴도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말해서 지구의 달은 계속 지구의 중력에 붙잡힌 채 아래로 떨어지는 중인 것이다. 다만 달의 속도가 충분히 빠르고 아주 크게 둥근 궤도를 그리고 있어서, 동시에 둥글게 휘어진 지표면에 영원히 닿지 않을 뿐이다. 



뉴턴의 <프린키피아>에 담겨있는 대포알 사고 실험의 내용



뉴턴의 사고 실험, 그리고 탄생한 인공위성

  이러한 대포알 사고 실험을 통해 뉴턴은 중력과 달의 움직임에 대한 완전히 다른 통찰을 제시했다. 이전까지 달은 단순히 ‘공중에 떠서 지구 주변을 맴도는’ 존재로 여겨졌다. 하지만 뉴턴은 달이 사실 지표면을 향해 ‘영원한 낙하’를 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뉴턴의 놀라운 통찰은 결국 충분히 빠른 속도로 날릴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든 땅에 영원히 닿지 않고 계속 지구 주변을 맴도는 궤도 운동을 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준다. 만약 당신이 엄청난 괴력을 발휘해서 손에 들고 있던 공을 아주 빠르게 던질 수 있다면, 그 공은 영원히 땅에 닿지 않고 지구 주변을 맴도는 궤도를 그릴 수 있게 된다. 


  뉴턴이 했던 이 사고 실험 속 대포알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한 물건과 아주 비슷하다. 바로 인공위성이다. 얼핏 보면 지구 주변의 허공에서 빙글빙글 맴돌고 있는 것 같은 인공위성도 사실은 마찬가지로 계속 지구의 중력에 붙잡힌 채 지표면을 향해 영원한 낙하를 하고 있는 중이다. 충분히 빠른 속도로 무언가를 날릴 수만 있다면 인공적으로 지구 주변을 맴돌게 만들 수 있다. 결국 뉴턴이 발견한 이 간단하면서도 놀라운 원리를 활용해 1957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1호가 궤도에 올랐다. 그리고 현재 4,500개가 넘게 작동 중인 인공위성들이 지구의 하늘을 가득 덮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의 아름다운 현대 문명을 이룩하게 되었다. 



천문학, 인류를 더 넓은 우주로 초대하다

  350여 년 전 한 몽상가는 머리 위에 떨어진 사과와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당시의 사람들이 봤을 땐 이 몽상가가 던졌던 질문이 굉장히 쓸데없는 질문처럼 보였을 것이다. “사과는 당연히 땅으로 떨어지고, 달은 당연히 하늘에 떠 있는 것이 아닌가? 당연해 보이는 것을 가지고 왜 고민을 하는 걸까?”라고 걱정하며 당장 하루하루 먹고사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망상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소년을 안타깝게 바라봤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뉴턴도 “대륙 반대편에서 열리고 있는 축구 경기를 생중계로 보고 싶다.”던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주고받고 싶다.”라는 식의 실용적인 고민을 한 것이 아니다. 애초에 이런 식의 고민 자체를 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았으니 말이다. 그는 정말 단순히 왜 달은 사과와 달리 땅으로 떨어지지 않는지를 궁금해했다. 어쩌면 당시 기준으로는 쓸데없어 보였을 이 질문은 결국 350여 년이 지나 인류가 우주 시대를 살 수 있게 해준 아주 중요한 씨앗이 되었다. 1666년 어느 여름날 영국의 한 시골 마을 땅에 떨어진 사과의 씨앗은 결국 350여 년의 시간이 지나 인류를 우주까지 이어준 커다란 나무로 자라났다. 


  지구 바깥의 머나먼 별과 은하를 연구하는 천문학은 과연 인류의 일상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뉴턴의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의문에 대한 가장 멋진 답변이 될 수 있다. 천문학은 수억 광년 먼 거리에 떨어진 별과 은하의 원리를 지상으로 옮겨오는 여정이다. 어둠과 추위에 떨고 있던 인류를 위해 신의 불씨를 지상으로 훔쳐 왔던 프로메테우스처럼, 천문학자들은 아무리 그 과정이 길고 고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우주의 원리를 지상으로 옮겨오기 위해 매일 밤을 지새우고 있다. 


별과 은하를 바라보며 알아낸 한 톨의 지식이 바로 당장은 당신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장담할 수 있다. 그 한 톨의 지식은 머지않은 미래 또 한 그루의 거대한 나무가 되어, 인류를 더 넓은 우주로 이끌게 될 거란 사실을 말이다. 21세기 천문학자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는 사과 속에는 또 어떤 나무의 씨앗이 숨어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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