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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에 가려진 예술가를 기르는 교육

글_ 김민정 스페셜아트 대표

  나에게는 나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쳤던 외삼촌이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분노가 많았고, 신체적으로는 건강했으나 마음이 많이 아팠던 것 같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고, 남들과 너무 다른 방법으로 삶을 살아내어 항상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삼촌이 나빴던 것이 아니라, 삼촌이 아팠다는 것을 마음으로 이해하는 데 오래 걸렸다. 


  한 달에 두 번 삼촌을 면회하러 갈 때면 삼촌은 시조를 읊어 줬고, 하모니카를 연주해줬다. 긴 병원 생활로 무서움과 애잔한 마음이 동시에 드는 우리 삼촌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은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없었고, 삼촌을 기리는 사람은 5명이 채 되지 않았다.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머무는 하모니카 연주와 시조들은 그 어디에서도 기록으로 찾을 수가 없었다.



황성정 언제나 자빠져있는 영훈이 42×29.5cm│종이에 펜│2020황성정 언제나 자빠져있는 영훈이 42×29.5cm│종이에 펜│2020



우리가 잘 만나지 못했던 이들의 예술적 기록…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

  삼촌의 영향이었을까.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많았다. 힘들어하던 우리 외삼촌, 그를 바라보는 우리 외갓집 식구들. 그 누구 하나 즐겁게 웃지 못했던 듯하다. 정신장애를 가진 가족 구성원의 가족들은 노심초사했고, 매달 내야 할 병원비에 책임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미안함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미술을 전공한 후 미술치료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할 그림, 사람들의 마음을 표출할 그림, 나아가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그런 일을 해야 했다.


  나는 그렇게 미술치료사로, 장애 문화예술 기획자로 일을 하게 되었다. 정신장애나 중증장애인과 가까이할 수 없는 사회 구조 속에서, 그들과 마주하며 그들의 놀라운 잠재력을 발견하고, 가시화하고 남기는 일들. 나는 장애 문화예술이 ‘이름과 흔적을 남기는 예술’이 되기를 바라며, 나아가 관계를 확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장애인을 넘어 한 명의 고귀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의 장애라는 그늘에 감춰졌던 놀라운 능력과 예술성을 만나게 된다. 그것들에 대한 기록과 그것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한다. 


  장애인복지관에서 미술치료사로 근무할 때, 발달장애 아이들의 놀라운 감각을 느끼고 재능 육성반을 꾸렸다. 고작 초등학교 4학년이자 장애 1급이었던 소연이는 놀라운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아이가 늘 지적받았던 상동 행동은 또 다른 예술로 꽃피어졌다. 소연이는 늘 손등에 무언가를 두드리고 냄새 맡는 행동을 했고, 물감 색을 바꿀 때마다 붓을 두드리고 냄새 맡는 행동이 반복적으로 진행됐다. 결국 그것은 아이만의 ‘점묘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의 미각과 후각의 기억을 꽃피우며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 작가로 잘 성장한 소연이는 올해 초 상하이에서 열렸던 초대 개인전에서 완판의 기록을 만들기도 했다. 


이소연 Memory of food series.2이소연 Memory of food series.2



취미 그 이상의 직업으로서의 가능성

  미술반 친구들 속에서 미술적 능력으로 박수받았던 한 친구가 직업 재활 교실에서 정확한 요구를 수행하지 못해 핀잔을 들을 때 몹시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오히려 그림을 판다면 더 즐겁게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장애인들에게 ‘미술’은 직업적 연관성이 없는 ‘취미’ 혹은 ‘치료’라는 관점이 팽배했기에, 생각의 프레임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보았다. 미술 활동이 아닌, 전문작가가 되기 위한 미술, 곧 그것이 직업 재활 관점 그 이상의 고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전략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한 스페셜아트는 발달장애 예술인 16명을 최저시급 이상을 받는 대기업에 예술인으로 취업시키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예술을 통한 관계의 확장

  우리 삼촌과 굉장히 닮아있던 황성정 작가님은 10년이 넘는 시간을 정신과 병동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계신다. 사고로 인해 뇌를 많이 다치고 기억장애를 동반한 중증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그림이라는 매개로 회복이 눈에 두드러지게 보였다. 일차적으로 병원 안에서 그림을 통한 매일의 기록이 기억력을 눈에 띄게 호전시켰고, 이차적으로는 높은 우울감과 낮은 자존감이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짐으로써 자신감과 자존감을 향상시키며 병원 내 사람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로 발전되었다. 또한, 매년 전시를 통해 소식이 끊겼던 입시 시절의 친구와도 연락이 닿았다. 정신과 병동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격리되어 온 긴 시간이 미술을 매개로 끊겼던 관계와 새로운 관계들이 다시 맺어지고 확장되었다. 


장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행복한 교육’ 

  장애인들이 행복한 교육은 무엇일까? ‘행복’을 목적에 두지 않았지만, 적어도 장애 예술인 개개인 고유의 정체성과 예술가적 존중에 대한 태도를 굉장히 중요시했다. 그리고 그들의 ‘전문성’에 집중했다. 나는 그들의 표정에 행복을 유추할 수 있는 감정을 매 순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들이 예술에 몰입하고 있는 동안 장애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교육은 스스로 질적 변화를 추구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발현해 나갈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확인시켜주는 조력자가 교사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변화는 이분법적이지 않다. 변화는 과정의 연속이며, 우리는 변화를 추구해 나가는 과정에서 한계를 단정 지을 수 없다. 


  완성된 작품에 사인을 남길 때 우리 작가들의 표정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들은 그저 예술인이다. 그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교육이 필요하며, 우리는 스스로 질적 변화를 추구할 수 있도록 장애 예술인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그들을 지지할 팬심을 만들어 보았으면 한다. 스페셜아트와 소속 작가들은 장애인의 달을 맞아 4월 7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영갤러리에서 ‘헬로 스페셜아트!’ 전시로 여러분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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