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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떠오르는 시, 윤동주의 <별 헤는 밤>

글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윤동주 시인은 자기완성을 향한 끊임없는 반성과
어두운 역사를 견딘 초상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윤동주가 연희전문 졸업을 기념하기 위해 준비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에는 모두 열여덟 편의 작품과 <서시>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시집의 서문이 함께 실렸다. 그는 시집을 구성하면서 <별 헤는 밤>을 마지막 작품으로 배치했는데, 1941년 11월 5일에 쓴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이 작품은 가을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에게 하나씩 이름을 붙여주는 윤동주의 우주적 상상력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명편이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부활의 예감을 통한 희망의 차원

  시집 첫 작품인 <자화상>과 함께 이 작품은 가을밤을 시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자화상>에서 우물에 비친 자신을 미워하고 가엾이 여기고 다시 미워하고 그리워하는 과정을 통해 “추억처럼” 남은 사나이를 노래했던 윤동주는, ‘우물 안 사나이’에서 ‘밤하늘의 별’로 시선을 옮겨 별을 헤면서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보는 과정을 이어간다. 이때 그는 ‘헤다’라는 함경도 방언을 썼는데, 이 단어에는 ‘세다’라는 원래 의미와 함께 ‘뜻을 헤아리다’ 같은 부가 의미까지 담고 있어서 작품에 제격을 부여하고 있다. 만약 이 작품의 제목이 ‘별 세는 밤’이었으면 어쩔 뻔했는가.

  윤동주가 불러보는 기억 속의 이름은 성장기를 함께했던 친구들, 이국 소녀들, 시집가서 아이를 키우는 여자아이들, 가난한 이웃사람들,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그리고 프랑스 시인 잠과 독일 시인 릴케이다. 이러한 스펙트럼은 이 작품이 쓰이기 얼마 전에 발표된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문장』 1941. 4.)에 대한 오마주(hommage)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윤동주는 백석 시편을 닮은 순서로 호명 과정을 수행하고 난 후 자신의 시를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시켜감으로써 선행 시편을 넘어선다.

  그 하나는 “어머님,/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라는 표현을 통해 이 작품에 역사성을 부여하는 장면에 있다. 이 표현을 통해 이 작품은 에누리 없이 일제강점기에 망명의 땅 북간도를 떠나 한반도 중심에 들어와 유학 생활을 하는 청년 윤동주의 것으로 정착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윤동주가 부른 마지막 이름이 자신의 것이었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결국 ‘별’에 의지하여 부른 이름이 된다.)에 부끄러운 자신의 이름을 써서 흙을 덮어버린 그는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라는 부활의 예감을 통해 이 작품을 새로운 희망의 차원으로 탈바꿈시킨다.


‘부끄럼’에서 ‘자랑’으로

  이처럼 윤동주는 시집 첫걸음을 “한 점 부끄럼”으로 시작하여 마지막을 “자랑처럼”으로 끝냈다. 이 구조는 부끄러운 이름을 쓰고 흙으로 덮어버리고 자랑처럼 풀이 재생하는 과정으로 짜여 있는데, 이러한 자연의 섭리에 그대로 대응되는 은유적 상관물이 “(부끄러운) 내 이름자”이다. 윤동주는 봄이 오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풀의 생태를 통해 ‘부끄럼’이 ‘자랑’으로 재생하고 부활하는 꿈을 꾼 것이다. 이 과정은 수난과 영광에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 시련을 자연의 순리로 받아들이면서 현실을 견디겠다는 자세도 포괄하고 있다. 시집 서문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괴로워했던 윤리적 성실성을 보여준 그는 불가피한 운명과 함께 평생 지고 가야 하는 자신의 한계를 정직하게 고백하면서 시집 끝에 <별 헤는 밤>을 수록함으로써 자기완성을 향한 끊임없는 반성과 어두운 역사를 견딘 초상을 아름답게 보여준 것이다. ‘부끄럼’에서 ‘자랑’으로 옮겨가는 실존적 전이 과정이 아름답게 펼쳐진 <별 헤는 밤>을 가을밤에 떠올려보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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