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이달의 기사 전체보기

하늘길과 바닷길 사이 도시, 사천을 머금다

글_ 강지영 명예기자(수필가), 사진_ 김경수 포토그래퍼



[사진제공=사천시]


  산과 논 사이에 난 길을 따라 달린다. 활주로 같이 트인 도로가 검은 물결이 되어 넘실거린다. 청명한 하늘과 티끌 한 점 없이 맑은 공기와 멀리서부터 불어오는 바다 냄새. 막힐 것 없는 아스팔트 도로를 관통하며 나비가 나인지 내가 나비인지 모르겠다던 장자의 말을 곱씹는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물이 밀려 들어오고 페달에서 발을 내리면 물결이 밀려 나가고. 속도를 더하고 덜어내는 동안 나는 어느새 물길이 되어 있다. 바다의 넘실거림과 하늘의 푸르름을 머금은 길을 따라 도착한 곳, 7월의 여행지는 사천이다.



항공도시 사천을 알리는 항공우주박물관

  바닷길을 뒤로하고 하늘길을 먼저 찾는다. 국산 항공기 부활호를 제작한 도시이니만큼 사천공항 근처에 자리한 항공우주박물관이 이번 여정의 첫 목적지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비롯하여 제3훈련비행단, 경남테크노파크 항공우주센터, 군용항공기 감항인증센터 등의 기관이 자리 잡은 사천은 명실공히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항공도시다. 항공우주박물관은 항공도시의 면모를 알리기 위해 2002년 개관, 지역사회의 첨단항공과학을 소개하는 한편 항공 우주 문화체험 기회 제공에 일조하고 있다.
전투기, 훈련기, 구조헬기, 정찰기 등으로 채워진 야외 전시장을 지나온다. 각양각색의 비행기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귀에 담으며 이른 곳은 항공우주관이다. 이곳은 항공발달사를 비롯해 항공기 모형, 우주 관련 전시물로 채워져 있다. 전시는 자유수호관으로 이어진다. 2,600여 점의 사진, 액자, 군장, 기념품 등으로 꾸며진 이곳에서 전쟁의 참상과 전장에서의 군인들의 모습을 마주한다. 전시품을 눈에 담으며 푸른 잔디를 배경으로 평화롭게 잠든 야외 전시장 비행기들을 겹쳐본다. 날개 달린 것들을 전투기가 아닌, 전시물로 만나게 된 이 평화가 세계 곳곳에 깃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가슴을 채워온다.


[사천 항공우주박물관]


노산공원 속 호연재와 박재삼문학관

  노산공원으로 간다. 싱그러운 신록을 한가득 머금고 이른 곳은 한옥 모양의 호연재다. 삼천포 초등학교의 전신이기도 한 호연재는 일제 치하에 그 자취를 감추었다가 2008년 복원되어 현재는 여러 가지 교육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건물 자체가 사연이 되어 남은 호연재를 찬찬히 눈에 담으며 이 나라의 굴곡진 역사를 다시 한번 가슴에 되새긴다. 멀지 않은 곳에 박재삼 문학관이 있다. 공들여 조탁한 언어로 한국의 ‘한’을 탁월하게 담아냈다는 평을 받는 시인의 집필실과 저서를 눈에 담는다. 시 낭송 방에 들러 시인의 시 ‘천년의 바람’을 읊어 본다.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 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시의 여운이 깊다. 시구절을 중얼거리며 팔각정으로 향한다. 퍼런 물결과 삼천포 대교가 눈을 채워온다. 다리와 바다와 산. 자연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멋들어진 풍경을 보며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고립된 섬이 되어가는 내 미욱함을 마주한다. 시인의 말처럼 어떤 시련이 닥친다 해도 ‘지치지 말 일’이다. 팔각정 앞 계단을 내려와 물고기상과 삼천포 아가씨상을 만난다. 은방울 자매가 불렀다는 ‘삼천포 아가씨’가 울려 퍼진다. 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릴 거라는 아가씨의 노랫말이 귀를 두드린다. 기다려보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아직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후회 없을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마음이 가슴을 매만져온다.


[박재삼문학관]


[삼천포 아가씨상]


사천바다케이블카, 발아래 펼쳐지는 바다 풍광

  노산공원을 나와 ‘사천바다케이블카’를 타러 발길을 옮긴다. 2018년 4월 13일 개통된 ‘사천바다케이블카’는 총 2.43㎞를 운행한다. 그중 816m가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어 바다 풍광은 물론 죽방렴, 창선·삼천포대교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초양도와 바다와 각산을 아우르는 케이블카는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탈 캐빈과 밑이 보이지 않는 일반 캐빈 두 종류가 있다. 높은 곳이라면 모골이 송연해지는 여객(旅客)이 선택한 케이블카는 일반 캐빈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바다를 가로지른다. 순식간에 대교와 바다와 산과 섬을 지나온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이 꿈만 같다. 케이블카에 몸을 싣고 구름 위를 걷듯 초양도와 늑도 거쳐 각산에 이른다.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하트 포토존과 봉화대를 지나 전망대에 도착한다. 눈이 시릴 정도로 경이로운 풍경 보여준 것만으로도 모자란 듯 사천은 또 하나의 장관을 선사한다. 삼천포 바다의 한려해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수리 위의 해와, 별이 되어 반짝이는 바다 위 햇살과, 흙에 서린 이야기를 전해오는 섬들. 수평선 어딘가에 시선이 머문다. 바다와 하늘의 닿음이 빚어낸 잔잔한 적요함이 평정을 불러온다. 아등바등, 노심초사하던 마음을 바다에 내려놓는다. 그렇게 다 던져두고 나니 체증이 가신 듯, 갑갑했던 속이 트여온다.

  유람선을 타러 가려던 발길을 돌려 실안 해안으로 방향을 튼다. 바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앉아 수평선을 넘어다본다. 파란 물결 위로 노랗고 붉은 해가 흩뿌려지기 시작한다. 새들의 지저귐 같은 빛이 눈을 간질이고 들어온다. 한반도 남쪽 끝에 자리한 작은 도시에서 받은 위안과 감동이 농묵(濃墨)이 되어 번져온다. 오늘의 석양은 지지지만 사천이 전해준 풍경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있으리라.


[호연재]

열람하신 정보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