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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주름이 살아 움직이는 땅, 부여

역사의 주름이
살아 움직이는 땅, 부여

글_ 강지영 명예기자(수필가) 사진_ 김경수 포토그래퍼

한반도 굽이굽이 서린 사연을 넘어다보며 선택한 2월의 종착지는 부여다. 갓 새해를 맞아들인 2019년의 두 번째 여행지로는 비단결 강이 토지를 감아 흐르는 곳, 백제 문화가 깃들어 있는 터전, 강과 돌이 사연을 전해오는 그 땅이 더없이 좋은 곳이리라. 백제의 제일 큰 강이라는 뜻의 백마강을 찾아 부여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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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제문화단지 사비성

 

백제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백제문화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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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백제 금관


  완공까지 장장 17년이 걸린 백제문화단지로 향한다. 백제 왕궁인 사비궁과 사찰인 능사, 개국 초기 궁전인 위례성과 고분 공원, 백제 숲과 제향루 등으로 꾸며놓은 이곳은 작은 백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백제의 모습을 정교하게 복원해 놓고 있다. 삼국시대 왕궁 모습을 최초로 재현해 놓았다는 사비궁을 지나 능사로 간다. 능사는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절로 현재는 절터로만 남아있다. 능산리 사지를 바탕으로 복원한 절이 능사 5층 목탑, 대웅전, 자효당 등을 재현, 웅장함과 섬세함으로 그 시절 백제를 눈앞에 되살려낸다. 사극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젖어 위례성을 찾는다. 한성백제 시절의 성인 위례성은 온조왕이 고구려에서 남하해 자리 잡아 만든 곳이다. 움집, 고상 가옥, 망루 등을 재현해 둔 이 성은 색색의 단청으로 장식된 사비궁과는 확연히 다른 소담한 멋을 자랑하고 있다. 움집 지붕과 토담을 벗 삼아 걸으며 백제의 옛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화려함과 소박함, 거대함과 미세함, 섬세함과 단아함이 버무려져 오묘한 색을 빚어낸다. 토기 하나도 허투루 만들지 않았던 나라 백제의 생활문화가 깃든 마을의 풍경과 백제역사문화관의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나와 다음 목적지로 발을 옮긴다.

 

사비시대 123년의 백제 도읍지, 부소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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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성백제 시절을 복원한 위례성


  문화단지를 지나 백마강교를 건넌다. 백제보 길을 거쳐 부소산성으로 간다. 부소산은 해발 백 미터 남짓 되는 나지막한 산으로 한쪽은 시가지이고 다른 한쪽으로는 백마강을 마주하고 있다. 백제어로 소나무를 의미하는 부소가 많다 하여 부소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 산에는 영일루, 삼충사, 사자루, 낙화암, 고란사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위기에 처한 백제를 위해 목숨을 내던진 백제의 세 충신 성충, 흥수, 계백을 모신 삼충사 앞에 선다.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야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을 터, 영정을 앞에 두고 2019년의 대한민국에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염원해 본다. 고즈넉한 숲길을 걸어 반월루에 이른다. 누각에 오르니 백마강에 안긴 부여가 한눈에 들어온다. 무채색 한복 치마 위에 손을 가지런히 얹고 앉은 정한 여인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 위로 담박한 위례성 풍경이 겹쳐 보인다. 이 청초함이 부여의 민얼굴이리라. 나당 연합군의 공격을 피해 부소산으로 몸을 피한 후 끝내 죽음을 택한 삼 천 궁녀들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 궁녀사로 간다. 몸을 내던지는 것 외에는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궁녀들의 아픈 사연과 오래전 세상을 떠난 그들을 기리는 애도의 마음에 가슴이 일렁인다. 먼저 떠난 이들을 위해 내미는 따뜻한 손이 있기에 생은 외롭지 않은 것이 아닐까. 삼천궁녀가 꽃이 되어 떨어졌다는 사연이 깃들어 있는 곳, 낙화함으로 향한다. 세상 어디에도 아름답고 기쁜 죽음은 없을 터, 질곡 있는 삶과 가슴 아린 죽음에 이야기를 더해 의미를 입힌 것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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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부소산성 반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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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백제 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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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정림사지를 복원한 모형

 

깎아지른 바위 위에서 백마강을 내려다보는 두 눈에 서리는 것은 꽃잎이 아닌 눈물인 것은 채 피어보지도 못한 채 벼랑 끝에서 몸을 던진 낯모를 이들의 생이 애달파서, 무고한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까닭 모를 전쟁이 한스러워서이리라. 고개 숙여 궁녀들의 죽음을 애도한 후 도착한 곳은 고란사다. 이곳은 비명(非命)에 간 이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사찰이다. 고란수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 후 법당에 들어선다. 어제 세상을 등진 이들이 편안히 잠들기를, 치열하게 이 순간을 마주하고 있는 이들의 오늘이 평안하기를, 찬란한 내일의 해를 맞을 누군가의 하루가 복되기를 기도하며 향에 불을 붙인다.

 

석탑의 계보를 잇는 정림사지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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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있는 정림사지 박물관으로 간다. 정림사는 백제 사비 도읍기에 만들어진 사찰로 현재는 강당과 탑, 연지만 남아있다. 이곳은 1942년 발굴조사에서 ‘태평 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라 적힌 명문기 출토로 정림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정림사지 중심에 자리 잡은 오층석탑은 목조탑에서 빚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돌을 사용해 만든 탑으로 백제 특유의 석탑 양식을 보여준다. 조형미는 물론 기술적으로도 상당한 연구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이 탑은 삼국시대 석탑 연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연지에서 중문을 지나 탑 앞에 이른다. 탑 상부로 갈수록 높이가 줄어드는 구조에서 특유의 안정감이 배어난다. 기단에 새겨진 우주와 탱주를 올려다본다. 시공이 미지의 어딘가로 확장되기라도 하는 듯, 형언할 수 없는 아련함에 눈앞이 아득해진다. 하늘에 감싸 안기는 듯한 기분에 젖어 탑을 한 바퀴 휘두른다. 치맛단을 감싸 쥐듯 탑을 올려다본 후 금당을 거쳐 강당으로 들어간다. 형체만 겨우 남은 정림사지 석불좌상을 앞, 석상에서 바느질 자국을 찾아볼 수 없는 검푸른 한복 치맛자락을 본다. 이 석상이 여느 불상보다 깊은 울림을 남기는 것은 사물에 불과했을 돌에 불법(佛法)으로 만물을 감싼다는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리라.
강당을 돌아 나와 정림사지 박물관으로 들어간다. 범어(梵語) 만(卍)자 형태의 이 박물관에서는 백제 불교 문화와 정림사를 주제로 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정림사지 석탑과 불상, 정림사지에서 출토된 유물, 백제 불상, 백제 탑, 동아시아 고대 불교 관련 내용을 꽤 자세하게 풀어놓았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전시물은 정림사를 복원한 조형물과 탑 건립을 과정을 재현한 것으로 박물관 밖의 정림사지를 전시실 안으로 끌어온 것 같은 생생함을 전해준다. 2층에서는 ‘부여의 영정’과 ‘부여의 금석문화재 탁본’을 주제로 한 ‘부여 예찬’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성왕, 무왕을 비롯한 백제 왕의 영정은 물론 계백 장군과 단군 화상, 금석문화재 탁본까지 덤으로 눈에 담고 박물관을 나온다.


국내 최고(最古)의 인공연못, 궁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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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정림사지 오층석탑


  부여 여행 종착지는 궁남지다. 궁남지는 백제 무왕이 궁성 남쪽에 못을 만든 후 버드나무와 인공 섬 등으로 장식한 인공연못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궁원지(宮苑池)인 궁남지는 백제의 조경기술과 당시의 도교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일본서기』에서는 궁남지의 조경기술이 일본 원지 조경의 원류가 되었다고 전하기도 한다. 중국 전설에 등장하는 삼신산 중 방장 선산을 본 따 만들었다는 섬을 그려보며 나무다리를 건너 포룡정으로 간다. 잎 진 느티나무와 꽃 진 연꽃 대를 고스란히 비춰내는 차디찬 못 위로 누렇고 붉은 노을이 스며든다. 하늘은 어둠에 잠겨가고 노을이 발간 치맛자락이 되어 대지에 펼쳐진다. 노을을 배경으로 이별을 앞두고 서서 신동엽 시인의 시 ‘눈동자’를 나지막이 읊어본다. 묻지 말고 이대로 보내 주옵소서 잊어버리고만 싶은 눈동자여. 말곳 하면, 잘못 꿈 깨어져 버릴 깨끗한 얼굴. 눈물 감추우며 제발 이대로 돌아가게 못 본 척해 주소서. 내 목숨 다 주고도 떠나기 싫은 눈동자여.
백마강이 품어 흐르는 땅 곳곳에 깃든 역사가 멋스러운 시간의 주름을 만들어내고 있는 곳, 그 주름이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하는 곳, 그리하여 오늘의 이 닿음이 역사의 안 페이지로 남겨지게 하는 곳, 부여에서의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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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궁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