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이달의 기사 전체보기

고창이 부쳐온 푸른 손편지

글_ 강지영 명예기자(수필가)  사진_ 김경수 사진작가

 

고창학원농장 청보리밭

 

 

  바람이 인다. 귀가 간질거린다. 보리 이삭이 손을 잡아끈다. 따뜻한 오월 햇살을 머금으며 보리축제가 한창인 고창으로 들어간다.


  눈앞에서 오월이 일렁인다. 고창이 부쳐온 편지다. 쉬어가라는 이삭의 손짓이 발길을 붙든다. 아기 손 같은 보리 이삭이 건네는 편지를 차마 뜯지 못한 채 만지작거리고 있다. 무슨 사연이 담겨있을까,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까. 오월에 편지를 받은 게 너무 오래되어서인지, 기다리던 소식을 들은 적이 없어서인지. 봉투를 뜯기가 조심스럽다. 보리밭길 언저리를 서성인다. 보리밭길 초입, 바람개비를 만난다. 바람개비가 멈춤 없이 돌아가며 바람의 소리를 전한다. 수수깡 위에 색종이로 만든 바람개비를 꽂아 들고 동네를 내달리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고창이 부쳐 온 이 편지는 어쩌면 지난날이 내게 전하는 안부편지일지 모른다.

 

 

고창학원농장 청보리밭

 

봄의 춤을 추는 보리 이삭
  바람이 보리 이삭을 쓸고 간다. 이 줄기에서 저 줄기로 봄의 춤이 번져나간다. 새벽이슬 같은 이삭의 울림이 파사칼리아가 되어 울려 퍼진다. 삼십만 평이라는 너른 농장 사이사이에 길이 나 있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초록빛 연주를 귀에 담으며 무릎 높이쯤 자란 보리와 함께 봄을 거닌다. 편지 말미의 추신(追伸)이 되어 놓인 보리 사이 유채꽃과, 숨 고르고 가라고 손짓하는 원두막과, 푸른 트임을 선사하는 전망대. 농장에 길을 내고 문을 열어 준 게 농민들이라면 길을 만드는 것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다. 반듯하게 놓인 길이 그곳을 찾은 이들의 발에 다지고 다져져 먼 훗날에는 사연이 되어 남겨지리라.


  보리밭길 너머에서 깡통기차와 마차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하얗게 단장한 말 마차와 깡통에 우산을 단 깡통기차를 눈에 담으며 의종각을 지나 유채꽃 길로 들어선다. 유채밭의 초록과 노랑이 만들어내는 조화가 말을 건네 온다. 봄이 왔노라고,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니 조바심내고 욕심낼 필요가 없다고. 고창이 보내온 편지 봉투를 뜯고 읽어낸 첫 글귀다. 그 말을 가슴에 담고 잉어를 닮아 잉어못이라 불린 못을 지나 대나무밭으로 발을 옮긴다.


  호랑이가 도깨비를 피해 숨어들었다는 대나무밭이 도깨비밭을 마주 보고 있다. 길게 뻗은 대나무 사이에서 내 눈을 사로잡는 건 죽순이다. 죽순 앞에 자세를 낮춰 앉는다. 뾰족한 푸른 잎을 머리에 두른 죽순이 땅의 소리를 울려온다. 금세 하늘만큼 뻗어 올라간다는 작은 대나무가 때를 기다리라는 말을 전해온다. 기다림, 고창이 보낸 편지의 두 번째 구절이다. 기다림을 곱씹으며 대나무 숲의 아늑한 그늘을 벗어난다. 다시 보리밭 초입이다. 날은 화창하고 갈 길은 멀다. 다음은 선운사다. 

 

 

 

선운사

선운사


 
천오백 년 역사를 지닌 고찰, 선운사
  선운사로 방향을 틀기 전, 동학혁명 기포지를 지나온다. 기념탑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섰다가 포교문을 읽는다.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함은 오로지 인륜이 있기 때문이다.’ 고창이 보내온 편지에 적힌 세 번째 글귀다.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되뇌며 선운사로 향한다. 천오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년(577)에 검단선사와 신라 진흥왕의 국사인 의운화상이 창건한 절이다. 검단스님이 못에서 용을 몰아내고 그곳에 절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숲길을 한참 걸어 들어가 선운사를 만난다. 절은 오월 석가탄신일을 맞아 등(燈)으로 단장을 마치고 있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등(燈)과 땅을 장식한 빨간 동백꽃과 사방 널려있는 머위. 곳곳이 봄이다. 동백나무 그늘에 앉아 절을 찾은 이들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영산전으로 들어선다. 거대한 영산전 목조삼존불상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방석을 깔고 몸을 낮춘다. 불상 앞에 고개를 숙이는 것은 나를 들여다보기 위함이라 했던 수필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세 차례 절을 한다. 경내를 쓸고 간 바람을 따라 영산전을 나온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풍경 소리가 기분 좋게 귀를 울린다. 비움은 소리를 만들어낸다. 고창에서 읽은 네 번째 편지 구절이다.

 

 

고인돌 유적지

고창고인돌박물관 야외전시장

고창고인돌박물관 야외전시장

 

세계문화유산 고인돌 유적지
  눈요깃거리가 적지 않은 선운사 앞 장터를 지나 다다른 곳은 고인돌박물관이다. 한국에 있는 30,000여 기의 고인돌 중 고창에만 약 2,000여 기가 있다. 고창에는 밀집도 높고 다양한 고인돌이 산재해 있다. 1965년 이후 발굴과 지표조사, 국제학술 심포지엄에 노력을 기울인 결과 1994년 12월에는 문화재로 지정(사적 391호)되었고 2000년 12월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고인돌박물관은 2004년 12월에 고창고인돌박물관의 시작을 알린 후 2008년 9월 25일에 정식으로 개관했다. 1층의 기획전시실과 영상관을 지나 2층으로 들어서면 고창선사인의 삶을 재현해 놓은 상설 전시실이 이어진다. 가락토기 등으로 꾸며진 전시실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선사시대 삶을 실감할 수 있도록 상당히 정교하게 꾸며놓았다. 전시는 불 피우기, 암각화 그려보기, 고인돌 만들기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 전시실로 이어져 선사시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박물관 밖으로 나오면 독널무덤, 움무덤, 널무덤 등을 전시해둔 전시마당과 고인돌 끌기를 재현한 체험마당, 5개 움집과 2개 망루를 조성해 둔 선사마을이 있는 야외전시장이 있다.


  야외전시장 앞에 빨간 기차가 기다리고 있다. 고인돌군 유적지까지의 여정을 도와줄 기차다. 2009년부터 정기운행 중이라는 모로모로 열차는 어느새 만원이 된다. 봄바람을 가슴에 담으며 다리를 건너 고인돌군 유적지에 이른다. 퍼런 들판에 놓인 네모반듯한 돌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무덤이 되어 놓인 돌에서 세월의 서사를 읽는다. 의미가 부여되지 않으면 돌에 불과했을 바위가 고인돌이라는 이름을 얻고 무덤이 되었다. 수천 년 동안 한 곳을 지켜온 바위가 푸른 봄에 둘러싸여 장구한 세월을 되돌려준다. 고인돌이 탄생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화두를 던진다. 생의 마침표가 되어 놓인 고인돌. 내 마지막은 어떤 구절로 마침표를 찍게 될까. 고창의 고인돌이 내게 던진 다섯 번째 문구는 ‘제대로 사는 것이 제대로 죽는 것이다’이다.

 

 

 

고창읍성

고창읍성에서 바라본 풍경

 

애잔한 역사가 깃든 고창읍성
  철학가가 된 듯 사색에 잠겨 종착지인 고창읍성으로 발을 옮긴다.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때 전라도민들이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해 만든 자연석 성곽이다. 모양성으로도 불리는 고창읍성은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현재는 주민들의 쉼터와 여행객들의 발을 이끄는 관광지, 축제의 현장으로써 사용되고 있다. 작은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도는 답성놀이가 전해 내려오는데 오늘날까지도 9월 9일이면 이 놀이를 재현하고 있다고 한다. 돌을 이고 고창읍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 돌면 사후 극락승천 한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는 후문이다. 성을 빙 둘러 늘어선 철쭉과 성내의 맹종죽과 고창이 한눈에 들어오는 성내의 탁 트인 광경. 그리고 그 속에 깃든 우리네 애잔한 역사. 전쟁은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지만 세월은 그 상처를 안아 새싹을 피워냈다. 사는 것도 이와 같을 것이다. 다시 새 봄이 오고 싹이 돋고 꽃이 피듯, 존재로서 짊어져야 하는 짐이 남긴 상처에도 새 살이 돋고 온기가 돌 것이다. 고창이 전해준 마지막 문구다. 


  전쟁을 위한 방어지에서 사색과 거님의 공간으로 재탄생한 고창읍성처럼 전쟁 같은 나날을 지나온 이들의 가슴에 새싹이 돋아나기를. 그대들의 손에 고창이 전하는 편지가 도착하기를. 그리하여 오월 한 달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웃을 수 있기를.

 


 

열람하신 정보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