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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매화마을 하얀 편지지에 봄을 담아 건네다

글_ 강지영 명예기자(수필가)  사진_ 이대원 사진작가

 

 

섬진강을 따라 하동의 십리 벚꽃 길을 지난다. 남도대교를 건너 구례를 등지고 왼쪽으로 방향은 튼다. 굽은 도로를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백매화와 홍매화가 시야를 장악하고 들어온다. 붉고 흰 꽃이 빚어내는 봄의 향연에 젖어 들어갈 무렵 순백의 꽃길이 상춘객을 맞는다. 나지막한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 절정의 매화꽃이 하얀 손길을 건네는 터, 드넓게 펼쳐진 순백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땅, 청매실 농원이 있는 매화마을이다.

 

 

 

 

 


매화와 섬진강이 빚어낸 무릉도원
  차에서 내려서자 하얀 물결이 가슴을 치고 들어온다. 흰 꽃이 빚어내는 풍경이 할 말을 잃게 한다. 세상이 온통 하얀 게 시간도 정지하고 바람도 멎고 강도 멈춰선 듯하다. 매년 3월이면 꽃 나들이 나온 인파로 발 디딜 곳 없는 매화마을은 올해도 방문객들로 만원이다. 3월의 허연 눈밭이 되는 매화마을. 뽀얀 편지지 같은 마을 속으로 들어서는 상춘객들 얼굴에 웃음이 만발해있다.


  멀찍이 차를 세워두고 매화마을로 들어간다. 참외장아찌, 매실 막걸리, 감말랭이, 매실 아이스크림을 들고 나온 상인들이 곳곳에서 여행객을 맞는다. 그 길을 따라 발을 옮긴다. 걸음마다 채는 하늘거리는 꽃잎이 완연한 봄을 불러온다. 꽃을 길벗 삼아 걷다가 청매실 농원 건물을 만난다. 1대 매실 농사꾼 김오천옹부터 시작해 3대째 내려오고 있는 매실지기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이다. 농원 앞 삼천여 개 옹기와 매화와 섬진강이 빚어내는 풍경 위로 마치 무릉도원이 겹쳐 보이는 것 같다. 

 
  농원을 뒤로 하고 대나무 숲길에 들어선다. 길게 드리워진 대나무 그림자를 밟으며 봄바람이 전하는 이야기를 귀에 담는다. 고즈넉하고 조붓한 길을 따라 이른 곳, 전망대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다. 꼭대기에 서자 넘실거리는 하얀 꽃잎과 푸른 강물이 눈을 치고 들어온다. 포말 같은 꽃잎을 보며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내 눈에 담기는 건 꽃잎이 아니다, 그것은 찬 겨울이 봄의 나를 수신인으로 부친 편지라고.


  그 편지를 손에 꼭 쥐고 길을 내려온다. 전망대 저편으로 있는 벚꽃에 둘러싸인 초가지붕 집에 이른다. 영화 <취화선> 속 장승업을 떠올리며 초가집 처마에서 천천히 매화마을을 둘러본다. 장승업을 그리고 이 많은 인파의 발길을 사로잡은 매화를 눈에 담으며 ‘고결한 마음’이라는 매화의 꽃말을 되새긴다. 꽃, 옹기, 봄, 사람, 그리고 삶이 간직되어 있는 마을을 천천히 내려와 청매실 농원을 올려다본다. 온 마을이 하얀 편지지가 되에 가슴에 담긴다. 빈 편지지에 채워갈 2018년의 이야기를 기대하며 마을을 사진에 담는다.

 

 

와인과 예술이 공존하다, 와인동굴
  정자에서 섬진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나들이객들을 뒤로 하고 광양 시내로 방향을 잡는다. 만발한 매화 길을 관통해 도착한 곳은 와인동굴이다. 와인동굴은 폐쇄된 기차 터널을 활용해 와인과 예술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신개념 복합 문화 예술 공간이다. 이곳은 거대한 와인 셀이 된 기차 터널과 신개념 미디어 아트, 와인 바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새로운 관광명소다. 놀이공원을 떠올리게 하는 출입문을 지나오면 트릭아트와 함께 샤갈, 클림트, 고흐 등의 작품이 담긴 거대한 와인 병 패널이 방문객을 맞는다. 병 가운데 라벨이 자리해야 할 자리에 적힌 와인 관련 설명을 읽어가다 보면 와인 판매대와 카페테리아가 나온다. 그곳을 지나면 트릭아트 포토존과 미디어 파사드가 이어진다. 벽 위의 움직이는 미디어 그림과 착시를 이용한 포토존이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뒤이어 이어지는 와인저장소는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는 ‘미디어 인터랙티브존’ 바닥으로 꾸며져 있다. 마치 다른 세상으로 들어온 것 같은 독특한 경험에 멍해져 있을 즈음, 동굴은 화려한 LED 빛으로 또 한번 놀라움을 선사한다. 사방에서 쏟아져 내리는 조명이 온몸이 빛으로 물든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그 먹먹함에 사로잡혀 발을 옮겨가니 갤러리가 나온다. 몇 점의 그림으로 눈요기를 한 후 도착한 곳은 VR체험관과 공예 체험관이다. 기차가 드나들지 않는 터널 속, 그윽하게 번지는 와인 향과 빛의 향연이 방문객들의 발을 붙든다. 오감을 자극하는 체험을 하는 사이 와인동굴은 꿈을 실은 기차가 되어 기억 한 켠에 남겨진다.

 

 

명장의 혼이 담긴 장도박물관
  매화마을의 봄빛과 와인동굴의 이색적인 빛을 지나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장도박물관이다. 국내 유일의 이 장도전문박물관은 2006년 1월 24일 개관한 이후 많은 내외국인의 방문을 받고 있다. 이곳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故 박용기옹이 14세 때부터 62년 동안 만들어 온 장도와 세계 각국의 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가문화재와 지방문화재, 명장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장도 제작 전통공구들과 장도 작업실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기도 하고 체험학습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관람과 교육, 장도 제작 체험을 동시에 즐기기에 손색없는 곳이다.


  1층으로 들어서면 세계 각국의 도검과 영화 속에 등장했던 칼, 판타지 검, 현대 작가의 칼 등 100여 점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전문가의 손이 지나간 작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무기로서의 칼이 아닌, 예술 작품으로서의 칼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한국 장도의 유래를 담고 있는 영상물은 또 하나의 볼거리다. 2층에 올라가면 장도장의 작품과 한국 유물 200여 점을 구경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한국 칼의 역사는 물론 벽면 대형부조를 통해 박용기옹의 장도 제작 모습도 넘어다볼 수 있다. 빼곡히 진열된 장도 작품들은 노리개나 정조의 상징물로서만이 아닌, 완결한 은공예 작품으로서  한국의 미를 여실히 담아내고 있다. 광양 장도박물관은 한국 장도 제작의 맥을 이어감은 물론 체험학습과 영화관람, 탁본교육 등을 통해 교육의 장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빛, 철, 꽃을 한눈에 담다
  장도박물관을 나오니 어둠이 내려앉아 있다. 마지막으로 가 볼 곳은 광양 시내는 물론 하동과 남해, 여수까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구봉산 전망대다. 전망대 중앙에는 광양을 상징하는 빛, 철, 꽃을 소재로 한 디지털 봉수대가 자리 잡고 있다. 개화한 매화를 형상화했다는 이 봉수대는 LED조명, 투과등, 감성등, 유도등 등을 이용해 더없이 화려한 빛을 발한다. 국내에서 가장 긴 현수교라는 이순신대교도 조명을 밝히고 나선다. 그에 질 새라 광양 제철소에도 불이 들어온다. 고즈넉해 보이는 여수의 묘도를 거쳐 멀리 여수 산업단지도 환한 빛을 밝히고 있다. 해가 지고 하얀 꽃들이 잠드는 시간, 어둠을 배경으로 한 도시의 빛이 꽃이 되어 피어난다.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야경에서 등을 돌려 구봉산 전망대 홍보관으로 향한다. 언젠가 보았던 홍보관 속 연두색 우편함에 편지를 남기기 위해, 매화마을에서 받은 흰 편지지에 그날 하루를 꾹꾹 눌러쓰기 위해, 광양이 선사한 봄을 누군가에게 전하기 위해 발을 돌려 걷는다.


  광양에서 보낸 하루 일정이 아쉽다. 언제 다시 이 허옇고 찬란한 봄을 맞게 될까. 무릉도원 같은 매화마을이 발길을 머뭇거리게 한다. 신라 고승 도선국사가 중수했다는 옥룡사지의 붉은 동백나무 숲, 다도, 도자기, 염색, 전통 손두부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는 도선국사 마을 폐교를 활용해 창작 작가들이 입주한 사라실예술촌, 예술촌 화가들의 붓으로 새옷을 입고 여객(旅客) 맞이에 나선 사라실 벽화마을의 '사라실로 소풍갈래?'라는 벽글이 차례차례 떠오른다. 저마다의 색으로 완연한 봄을 담아내는 뽀얀 편지지 같은 광양이라면 하루쯤 더 머물러도 좋을 것도 같다.

 

 

1. 와인동굴 입구

 

 

2. 3. 장도박물관 전시

 

 

4. 매화마을 길

 

5. 사라실 벽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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