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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무섬마을 외나무다리로 이어진 섬, 사람 그리고… 그리움

글_ 심규성 명예기자(영문고등학교 교사)   사진_ 김경수 사진작가

 


무섬에 와서보니 알겠네
메마른 눈짓이었을 뿐이었노라 떠나보낸 시간들이
여기 켜켜이 모래로 쌓이고
물길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는것을
둘 데도 놓을 데도 없이 정처 없는 마음자리일 때
하도 외로운 발길이 하릴없이 물가로 향할 때
여기
그리움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무섬에 와서 보니 알겠네
〈최대봉, ‘무섬에 와서 보니…’ 中〉

 

 

 

  영주 시내를 벗어나 문수면 수도리를 향해 달린다. 잘 닦인 도로에는 낯익은 시골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정표를 따라 얼마나 달렸을까. 흰 백사장에 둘러싸인 아담한 전통마을이 조금씩 가까워진다.

 

 

물 위에 떠 있는 섬, 무섬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 하여 무섬마을이라 불린다.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낙동강 줄기에는 강물이 산에 막혀 물도리동을 만들어 낸 곳이 여럿 있다. 안동의 하회마을, 예천의 회룡포, 그리고 영주의 무섬마을이 이에 해당한다. 같은 물도리동이라도 그 형상에는 차이를 보이는데, 무섬마을의 경우에는 한글 ‘ㄷ’을 연상시킨다.


  풍수지리학적으로는 마을은 매실나무 가지에 꽃이 핀다는 ‘매화낙지형’ 혹은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다는 뜻의 ‘연화부수형’으로 길지다. 또한 모든 집들은 남향이 아니라 남서향으로 되어 있는데 강과 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기운을 그대로 이어받기 위함이라한다. 조선시대의 난과 한국전쟁, 천재지변 등을 거치면서도 그 원형을 잃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마을사람들은 믿고 있다. 그래서인지 무섬마을은 인위적인 느낌보다는 자연적인 느낌이 든다.

 

1) ‘ㅁ’자형 전통가옥이 늘어서 있는 마을 풍경

 

2) 까치구멍. 통풍과 습도 등을 조절하는 집의 숨구멍이다

 

3) 해우당 고택

 

4) 다리 폭이 20~30cm 정도로 매우 좁은 외나무다리

 

5) 무섬마을 자료전시관

 

 

35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마을
  무섬마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350여 년 전인, 1666년이다. 처음 이곳에 들어온 가족은 반남 박씨 입향조인 박수이며, 그 뒤로 선성 김씨가 들어와 박씨 문중과 혼인하면서 오늘날까지 두 집안의 집성촌으로 남아있다.


  마을에는 38동의 전통가옥이 있는데, 반남 박씨 입향조인 박수가 마을에 들어와 건립한 만죽재(晩竹齎)를 비롯해 총 9개 가옥이 경북문화재자료 및 경북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역사가 100년이 넘는 가옥도 16채나 남아있어 조상들의 자취와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마을이 번창했을 때에는 300여 호 1,500여 명의 주민들이 골짜기마다 빈틈없이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하니 그 규모가 시골의 작은 마을 치고는 꽤 큰 편이었던 셈이다.


  마을 가옥들의 가장 큰 특징은 까치구멍집이다. 까치구멍은 음식을 만들면서 나는 연기를 외부로 배출하고 낮에는 빛을 받아들여 어두운 집안을 밝게 해주는 기능, 계절에 관계없이 통풍과 습도를 조절하는 기능을 가진 집의 숨구멍이다. 알고 보니 이곳 무섬마을의 집들은 초가든 한옥이든 모든 집들에 까치구멍이 있는 까치구멍집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까치구멍을 뚫어지라 바라보니 답답했던 가슴이 뚫린 기분이 들었다.


  수도교를 건너 마을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해우당 고택은 고종 때 의금부도사를 지낸 해우당 김낙풍의 집이다. 만죽재 고택은 이 마을의 입향 시조인 박 수 선생이 1666년에 지은 고택이다. 그밖에 김덕진, 김뢰진, 김위진, 김규진, 김정규, 박덕우, 박천립 가옥 등이 고풍스러운 자태를 지금까지 유지하며 견고한 가문의 위상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마을의 가옥들은 경북 북부지역의 전형적인 양반집 구조인 ‘ㅁ’자형 전통가옥이 늘어서 있는 것이 많은데, 그 모습이 장관이다.

 

 

무섬마을로 가는 길, 외나무다리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는 드라마와 영화, 광고 속 아름다운 배경지로 선택돼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이다.


  불과 40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 앞 수도교와 뒤편 무섬교가 이 마을과 바깥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수도교가 생기기 전 마을 사람들은 나무를 이어 다리를 놓고, 쟁기며 지게를 지고 다리를 건너 뭍의 밭으로 일하러 갔다. 장마가 지면 다리는 불어난 물에 휩쓸려 떠내려갔고,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다리를 다시 놓았다.


  다리는 소나무를 반으로 잘라 대충 다듬은 뒤 물길 얕은 곳을 골라 다리발을 세우고 상판을 얹어 놓은 형태인데 길이 150여m, 높이 약 60cm, 다리 폭이 20~30cm 정도로 매우 좁아 빠르게 걸을 수 없는 모습이다. 다리 위에 올라서 조심스럽게 다리를 건너본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앞서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한데, 나는 무게 중심을 잡는데 꽤 애를 먹었다. 


  마을에서는 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외나무다리를 추억하고, 전통문화를 이어가기 위해 해마다 ‘영주 무섬 외나무다리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축제에는 문수면민 화합행사와 선조들의 생활상을 재연한 외나무다리 행렬, 전통혼례, 전통 상여행렬 재연행사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이밖에도 투호놀이, 제기차기, 떡메치기 등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체험행사 등이 함께 이루어져 매년 많은 관광객이 무섬마을을 찾는다. 


  무섬마을은 국가지정 중요민속문화재 제278호로 지정됐으며,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었다.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일이다. 분주하게 살았던 자신을 되돌아본다. 무섬마을은 그 누구에게도 편안한 고향이 되겠다고 한다. 봄내음 가득한 무섬, 그곳이 점점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