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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마음이 행복하다

  벌써 가을이 짙어졌다. 출근하는 길가 수수밭에 수수가 빨갛게 익고 있다. 그 수수를 참새가 까먹을까 봐 양파 담을 때 쓰는 망으로 씌워 놓았다. 멀리서보면 빨간 꽃이 핀 듯이 보인다. 어느 교감 선생님은 SNS에 이런 사진을 올리고 ‘참새! 너 오늘부터 굶어라.’라고 엄포를 놓아서 웃음이 묻어나게 한다.

 

  수수를 보면 어릴 적에 수수를 삶아 가지고 오던 친구가 생각난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 옥수수 삶고 고구마도 삶아 끼니를 때웠다. 산 너머 사는 친구는 수수를 삶아 책보에 넣어가지고 왔다. 소여물 쑤는 솥에다 넣고 쪄온 것이라 소여물 냄새가 좀 났다. 책보를 풀면 친구들이 몰려들어 손을 내밀었고 몇 가닥씩 나누어 주었다. 우리는 그 작은 수수 알을 하나씩 빼 먹으며 행복해했다.

 

  지금도 친구들은 그 때 기억을 이야기한다. 가난한 살림에 그것이 간식거리가 되었지만 으레 나누어 줄줄 알았고 또 고마워하며 받아먹었다. 다음 날은 알밤을 주어 삶아오는 친구가 나누어 주었다. 좀 사는 집 아이들은 땅콩을 삶아 오기도 했다. 지금 아이들에겐 시답잖은 것이겠지만 가을 내내 군것질거리로 행복했었다.

 

  친구들은 수수 알을 빼먹으며 ‘고마워. 꼭 갚을게.’ 이런 말을 했다. 딱히 갖다 줄 것도 없으면서 얻어먹는 것이 염치없어서 하는 말이었다. 혼자 다 먹어도 시원찮을 것을 나누어 주는 마음에 고맙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지금은 참으로 잘 살게 되었다. 너무 배가 불러서 덜 먹어야 한다고 수선을 떠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배부른 세상이 되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행복지수가 높지 않다고 한다. 2013 유엔의 ‘세계 행복 보고서’에 나타난 한국의 행복지수는 41위라고 한다. GDP는 세계 15위인데 반해 너무 낮은 편이다. 배가 부르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결과이다.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스스로 느껴야 하는 것이다. 행복이나 불행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크기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 큰 불행이 찾아와도 내게 이런 시련은 더 노력하라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불행도 곰곰이 되씹으며 왜 나에게만 이런 불행이 찾아올까 억울해하고 비관하고 남을 탓하는 사람이 있다. 나라에서 다양한 복지 혜택을 누리게 해주더라도 그것에 대해 감사하고 스스로가 행복감을 느끼지 않으면 늘 부족하고 불행할 수밖에 없다.

이런 감사하는 마음은 어려서부터 길러져야 한다.

 

  요즘 아이들의 문제점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풍요를 당연하게 여기고 부모가 더해주기를 바란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가 많다보니 부모들은 미안한 마음에 아이가 원하는 것을 무작정 다해주려고 한다. 아이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어떠한 고생을 하면서 부모가 자기의 욕구를 채워주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모에게 감사할 줄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다 해주다가 조금이라도 만족하게 해주지 못하면 어려서는 떼를 쓰고 커서는 부모에게도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나눌 줄도 모른다. 감사할 줄 모르고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은 늘 배가 고프고 무언가를 갈구한다. 자기만 배가 고프고 자기만 부족한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는 별 관심도 없다.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그것을 의아해 한다. 풍족해서 나누는 것이 아니지만 다른 사람 것은 남아서 나누어 주는 거라 생각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된다. 정말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게 한다.

 

  이렇게 남의 도움만을 바라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얻어먹는 생활에 안주하여 의욕 없이 살아가게 된다. 감사할 줄 알아야 훨씬 더 행복해지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길러 주어야겠다. 땀을 식혀주는 바람 한 점에도 고마워하고, 곡식을 알차게 여물도록 내리비치는 햇살 한 자락에도 감사하는 아이로 길러야겠다.

 

  급식을 먹은 후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하며 교실로 가는 아이들이 오늘따라 더 예뻐 보인다.

 

 

  김형식 교장은 아이들은 하얀 도화지 같아서 그림을 그리는 대로 물감을 칠하는 대로 자란다고 믿는다. 저마다의 빛깔을 띠며 자라는 아이들에게 감성을 키워주는 일은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맞는다. 대청호가 보이는 학교에서 아이들 동심을 닮고 싶은 마음으로 아동문학을 하며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동시집 『코스모스 길』, 『꽃그늘술래잡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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