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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자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자

글 | 정종민 성남교육지원청 교수학습국장

 


  어떤 사과나무 과수원이 있었다. 이 과수원에서는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크고 맛있는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다. 이웃 과수원의 농부가 그 비결을 묻자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사과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모두 이름을 붙여 틈틈이 불러 준답니다. 내가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 사과나무들이 알아차릴 수 있도록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들지만, 물이 든 컵을 활용한 양파 재배 실험에서 칭찬받는 양파가 비난받는 양파보다 훨씬 잘 자란다는 결과를 생각하면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다.


  자기 이름이 불리기를 바라는 것은 사람이건 나무나 꽃이건 마찬가지다. 시인 김춘수는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노래했다. 아무리 아름답고 고귀한 꽃이라 하더라도 내가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그냥 그 많은 꽃들 중에 하나일 뿐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은 소통의 출발점이고, 학생 한명 한명을 주체로 존중한다는 의미이며,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다.


  먼저, 이름 불러주기는 소통의 출발점이다. 공기와 물, 음식이 인간의 신체적 생존조건이라면, 소통은 사회적 생존조건이며 공존의 필수조건이다. 행복지수 최하위, 상호 관계와 소통 능력 최하위, 자살률 세계 최고, 엽기적 학교폭력 등 위기의 우리 청소년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소통’이다. 마음의 소통은 신뢰와 믿음, 상호 존중으로 이루어진다. 이름 불러주기는 선생님과 학생 간 신뢰와 믿음, 상호 존중을 통한 좋은 관계의 시작이며, 서로를 가로막고 있는 벽을 허물고 소통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진정한 소통은 마음을 담아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다음으로, 이름 불러주기는 학생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상대방을 향한 인격존중의 표현이다. 이름을 부르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배후에 깔린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존중한다.’는 의식은 더 소중하다. 이름을 불러줄 때 상대방을 불특정 다수의 하나가 아니라, 그 이름을 가진 독립된 인격체와 특별한 존재로 존중하고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름 불러주기는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다. 이름을 불러주면 심층에 있는 잠재 심리가 자극되어 기분이 좋아지고, 상대에게는 호감을 갖게 되며, 서로에게 친밀감이 생긴다. 그리고 이름을 부르면 그 사람이 가진 모든 느낌과 감정을 함께 불러온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고,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자긍심을 갖게 하는 가장 좋은 칭찬이다. 사랑이란 다정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이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다른 생물체와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탄생과 함께 이름이 붙여져 불린다는 것이며, 누구나 자기의 이름이 세상의 모든 말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소중하게 들린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하고 정답게 불러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름을 잘 기억해주고 불러주는 선생님 앞에서는 함부로 나쁜 짓을 못한다. 익명성은 항상 부적절 행동의 온상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자신을 누구인지 모른다고 여길 때 그릇된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만약 각 교실에서 “저기 실장 옆에 앉은 애!, 이 줄 뒤에서 두 번째 너!, 저 쪽 창가에 엎드린 녀석!, 오늘 7일이니까 7번!” 등 체온을 느낄 수 없는 호칭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과연 진정한 배움이 일어날 수 있을까? 창의성과 인성이 신장될 수 있을까? 학교폭력이 줄어들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세상에 이름을 부르는 소리만큼 아름다운 음악은 없다. “얘, 야, 너”라는 말 대신에 “철수야!, 은영아!, 슬기야!”라고 다정한 목소리로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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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민 성남교육지원청 교수학습국장은 수원 창용초등학교 교장을 지내고 현재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교육칼럼집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자』를 펴냈다. 그는 ‘오늘 행복한 사람이 내일도 행복하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이 학습하는 ‘과정’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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