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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40여 년 교단을 지켜준 사람들

정보 / 행복칼럼

나의 40여 년 교단을 지켜준 사람들
윤태규 대구동평초등학교 교장

  2011년 5월 15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전국적으로 망신살이 뻗친 날이기도 하다. 예능프로 사회자로서 최고령자인 송해 선생님이 하는 전국노래자랑 무대에 선 날이 그날이다. 
나는 음치다. 오죽했으면 교육대학 입학 면접 음치 검사 때 애국가 1절을 두 번이나 불렀을까. 다른 응시자들은 애국가 한 소절만 부르고 거뜬하게 통과를 하는데 말이다. 
발령을 받고도 교실에서 가장 힘들었던 게 음악시간 오르간 연주였고, 시범창이었다. 이런 내가 그 어렵다는 전국노래자랑 예선을 거뜬하게 통과하여 본선 무대에 섰던 것이다.


“선생님, 전국노래자랑 한 번 나가보지 않을래요?”
38년 전 초임지에서 첫 졸업을 시킨 제자 대식이가 대뜸 전화에 대고 한 말이다. 농담 치고는 뜬금없는 농담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올해가 선생님 회갑이잖아요. 우리가 선생님 회갑 기념으로 추억 하나 만들려고 궁리를 하던 중 KBS에서 특집으로 ‘사제가 함께 하는 전국노래자랑’을 한다고 하잖아요. 아주 좋은 기회다 싶어서 신청을 하려고요.”
장난도 아니고 농담도 아니었다. 음치인 선생을 전국적으로 망신 주려는 제자가 어디 있느냐고 화를 내 봤지만 벌써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를 사람과 뒤에서 율동을 할 사람을 다 정해 놓았단다. 나는 그저 마이크 들고 입만 벙긋벙긋 하면 된단다. 기가 막혔다.


  정해진 곡명은 ‘차표 한 장’. KBS 홀에서 예심이 있었다. 전날 여관방에 모여서 합숙 연습을 했지만 음치인 내가 봐도 엉터리다. 전국에서 열다섯 팀을 뽑아 본선에 올리는데 서울 KBS 홀에 온 팀만도 80팀이 넘었다. 가슴에 ‘윤태규 샘과 함께’라는 글자가 새겨진 노란 티셔츠를 입고 18명이 무대에 섰다. 어린애들이나 입을 법한 복장이다. 선생은 60이 넘었고, 제자들도 50이 넘은 사람들이다. 입만 벙긋벙긋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자꾸만 노랫말이 튀어 나왔다. 할 수 없이 마이크를 입에서 멀리 떼고 불렀다.


“어떻게 나오게 되었나요?”
노래가 끝나고 심사위원장이 물었다. 이렇게 묻고 답하는 것도 심사 항목인 모양이었다.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영재가 초등학생처럼 손을 번쩍 들고 나섰다.
“우리 선생님은 음치입니다. 그래서 6학년 때 음악을 한 시간도 안 했습니다. 때문에 우리 모두를 음치로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래서 독하게 마음먹고 연습한 결과 음치 탈출했다고 전국으로 자랑하려고 이렇게 선생님 모시고 나왔습니다.”
조금 전까지 인상이 펴지지 않던 심사위원장이 책상을 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선생님 정말입니까?”


다시 나에게 물었다.
“진실도 있고 거짓도 있습니다. 음치라는 건 진실이고, 음악을 한 시간도 안 했다는 건 거짓입니다. 그래도 몇 시간은 했지 싶습니다.”
  또 빵 터졌다. 심사위원들은 물론 무대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아마도 영재 재치 덕에 예심을 통과 했지 싶다. 서울교대 특설무대에서 펼쳐진 본선에서는 우리 팀이 그래도 제법 노래를 잘 불렀단다. 담당 피디들이 해준 평이다.
그 작당을 벌였던 초임지 첫 졸업생, 벌써 50을 훌쩍 넘긴 사람들이다. 그들과 사이는 남달랐다. 첫사랑이어서 그런지 초등학교 문을 나가는 날부터 우리의 사랑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거저 깊어져 간 게 아니라 우리가 사랑을 한 층 한 층 쌓아가고 만들어 갔던 것이다. 믿음은 세월의 무게만큼 깊어갔던 것이다. 선생과 제자들 사이만이 아니라 저희들 서로 사이도 돈독했다. 초등학교 어린 시절을 마음의 고향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결혼 주례도 내가 도맡아 섰다. 39살에 첫 주례를 시작한 것도 그 사람들부터였다.


  사람들은 어떻게 잘 가르쳤기에 제자들과 그처럼 아름답게 살아가느냐고 한다. 나는 손사래를 친다. 내가 가르친 것은 긴 세월 중에 딱 1년이다. 나는 1년을 가르쳤지만 그 사람들은 내 교단 40여 년을 지켜봐주었다. ‘선생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그들은 늘 나에게 이렇게 힘과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어느 누구보다 신명나게 선생 노릇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 사람들은 내 연인이자 스승들이다.


내가 교단을 떠나는 날 다 같이 몰려오겠다고 또 작당들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와서 뭐라 할까? 설마 음치 만들어 놓았다고 원망하듯이 어린 시절 잘못 가르쳐 놓았다고 원망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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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규 교장선생님은 학교(교실)는 ‘내 모든 것을 바치는 곳’이라는 신념으로 아이들에게 행복감을 주기 위해 애써왔다. 아이들은 행복한 가운데 반듯하게 자란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구동평초등학교 홈페이지만 들어가 봐도 오직 아이들만을 생각하는 윤 교장선생님의 면면을 엿볼 수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일기쓰기 어떻게 시작할까(보리)』, 『1학년 교실 이야기(보리)』, 『햇살 가득한 교실에서(사계절)』, 『신나는 교실(산하)』, 『이상한 학교(한겨레)』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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