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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진 인천약산초등학교 교사

히어로 아이들(hero54)과 함께 만드는 세상


글_ 김혜진 객원기자




[십 수년째 주제중심 프로젝트 기반의 교육과정을 운영해 오고 있는 구수진 교사]

  인천약산초등학교 구수진 교사의 수업현장에서 ‘교과서는 바로 세상’이다. 아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책을 읽고, 뉴스를 보고, 토론을 하면서 세상을 향한 따스한 발걸음도 내딛는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와 살아가는가?’ 등 6가지 대주제와 함께 질문을 던지고 배우면서 십 수년째 주제중심 프로젝트 기반 교육과정과 ‘Non Sibi’ 교육철학을 구현해 나가고 있는 구수진 교사를 만났다.


  “역사 시간 속으로! 액션∼ 큐!”

  친구들의 ‘큐’ 사인과 함께, 각 팀의 상황극이 차례대로 무대에 올려졌다. 고구려·신라·백제·당나라 왕, 화랑 후보자 등 친구들의 서툰 몸짓, 설익은 대사에선 ‘까르르, 크크’ 웃음보도 터져 나왔다. 인천약산초등학교 5학년 4반 5교시 수업. 구수진 교사의 ‘주제중심 프로젝트 기반 교육과정’ 중 ‘5주제: 세상은 어떻게 변하는가? - 극으로 다시 보는 역사토론’ 수업이 한창이다. 각 팀별 상황극이 끝나고, 토론시간이 되자 학생들은 이내 웃음기를 거두고, 사뭇 진지한 토론자의 자세로 돌아왔다.

  “당나라 왕에게 묻겠습니다. 다른 나라도 있는데 왜 꼭 신라와 연합하게 되었나요?”

  “고구려 병사에게 묻겠습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는 어떻게 살아가게 되나요?”

  “화랑 후보자님은 왜 화랑이 되려고 하나요?”

  극이 진행되는 동안 궁금했던 질문들을 건네면서 학생들은 진지한 토론을 이어갔다. 6교시까지 연계된 수업이 끝나고 기자와 잠깐 마주앉은 오윤지 학생은 “극 중 인물의 역할에 몰입하다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이나 마음까지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이런 수업방식을 좋아한다.”라고 귀띔했다. 윤지 학생은 또 “오늘처럼 토론 수업에서는 질문을 하면서 더 많은 지식을 알게 되고, 또 다른 친구들의 생각을 끌어내기 위해 책읽기나 자료검색 등 수업준비도 더 열심히 하게 돼 내가 점점 더 지혜로워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라면서 이번 수업을 마친 소감을 들려줬다.

  올해로 교직 29년째를 맞는 구수진 교사는 벌써 십 수년째 이 ‘주제중심 프로젝트 기반의 교육과정’을 운영해 오고 있다. 그리고 올해 제8회 대한민국 스승상 시상에서 이 교육과정 개발 및 적용사례의 공로로 초등부문 근정포장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극으로 보는 역사토론 수업의 한 장면]


‘Non Sibi: 나만을 위하지 않는다!’


  “교실수업 현장에서 열심히 연구하고, 또 가르치려고 노력하면서도 자꾸 의문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아이들의 배움의 과정이 그들의 실제적인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왜 요즘의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지 등등에 대해서 말이지요. 그러면서 학창시절의 저는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꿈꿨었는지도 돌아보게 됐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예나 지금이나 교실 속 아이들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더라고요.”

  구 교사는 그러한 익숙한 것들로부터 한번쯤 탈피해 보기로 했다. 처음엔 낯설지라도, 아이들과 함께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직접 디자인해 적용해 보기로 한 것이다. 이즈음 구상하게 된 것이 바로 ‘주제중심 프로젝트 수업’이었다. 처음엔 교과의 한 부분을 세상의 이슈와 연결해 학습주제로 삼았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등등. 학생들로 하여금 제시된 주제에 대해 함께 생각하며 목표를 정하고, 필요한 정보와 해결방법까지 스스로 찾아내어 접근하게 했다. 해가 거듭될수록 한 교과에서 전 교과를 넘나들며 그 영역은 점차 확대되어 갔다. 2014년에는 학습연구년제를 맞으면서 구 교사의 이 프로젝트 수업은 더욱 구체화되었다. 이전 관심 연구 분야였던 ‘세계시민교육’에 대해서도 더욱 깊숙이 들여다볼 기회도 생겼다.

  “2014년 방학을 맞으면서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소금과 빛 국제학교’에서 교육봉사를 했어요. 바로 이 학교에서 만난 교육철학이 ‘Non Sibi’였죠. ‘나만을 위하지 않는’이라는 뜻으로, 이전에 책에서 만난 후에 오랫동안 마음속에 새겨두었던 용어였어요. 그 이전까지는 그저 ‘Non Sibi한 사람이 되자’를 학급비전으로 삼았었지만, 캄보디아에서 교육철학으로 다시 만나면서 저로서는 새롭게 재인식하는 계기가 됐죠.”


세상을 향한 긍휼함을 품는 아이들


  2015년부터 구 교사의 이 주제중심 프로젝트 수업은 ‘Non Sibi 교육과정’으로 새롭게 명명됐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 사는가? 우리는 무엇을 만드는가? 우리는 누구와 살아가는가?(이상 1학기), 세상은 어떻게 변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꿈꾸는가?’ 등 이 6가지 대주제에 대해 탐구하는 이 교육과정에선 ‘세상이 바로 교과서’가 된다. 특히, 첫 번째 대주제인 ‘나(우리)는 누구인가?’를 배우는 연초 2주 동안에는 다른 진도 없이 ‘나’를 되돌아보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만 생각해보는 수업으로 진행이 된다.

  구 교사는 2년 전 운영했던 4학년 3반 아이들의 Non Sibi 프로젝트 수업 중 한 장면이 아직도 또렷하다. 인권 관련 주제였던 ‘우리는 누구와 살아가는가?’에 대한 질문 과정. 장애인에 대한 어른들의 편향된 인식이 아이들 눈높이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그날 수업에서 아이들의 질문은 바로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은 채 간절히 눈물로 애원하던, 한 특수학교 건립과 관련된 뉴스기사’로부터 촉발됐다.

  “그 토론에서 아이들이 내린 결론은 특수학교 건립에 반대하는 어른들로서는 장애인인 친구가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 친구의 입장을 생각할 수 없어서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결코 그런 어른이 되지 않아야겠다 등등, 아이들로부터 끊임없는 이야기와 어른들을 향한 질책이 쏟아져 나왔었죠.”

  당시 아이들은 장애인에게 공정한 교육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면서 ‘공정한 등굣길’ 캠페인도 솔선하여 전개했다. 또 청와대의 대통령께도 ‘공정한 등굣길’이 되게 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로부터 얼마 후, ‘hero43 학생들에게’라는 청와대로부터 온 회신을 받아든 4학년 3반 아이들은 세상을 품에 안은 듯 기뻐했었다.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 대한 긍휼함을 품는다면 세상은 결코 악해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로 하여금 어떤 방식으로든 긍휼을 경험하도록 한다면, 그 마음이 더 나은 세상이 되게 하자는 소망을 품게 할 것이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제가 꿈꾸는 ‘교육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없는 그날’을 함께 소망하게 되길 바라고 있기도 합니다.”

  인터뷰 내내 구 교사가 몇 번이고 강조한 어휘가 바로 이 ‘긍휼함’과 ‘안타까움’이었다. 이는 Non Sibi 교육과정의 철학을 대변하는 개념어들이기도 하다. 구 교사가 인터뷰 도중 여러 차례 강조하던 또 다른 말은 바로 ‘히어로(hero)’였다. Non Sibi 교육과정에 참여하는 아이들을 좀 더 상징화하여 표현한 말이다. 구 교사는 “이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순간순간 ‘히어로처럼’ 성장하고,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볼 때면 이 수업방식을 결코 멈출 수가 없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구 교사는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순간순간 히어로 처럼 성장하고 달라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학급일기, ‘선생님의 눈 속에’


  구수진 교사는 2007년부터 매년 아이들과 함께 댓글로 소통하는 학급일기를 써오고 있다. 한 학년을 마치면 이 온라인일기는 종이책으로 엮여 학생들과 함께 나누어 소장하게 된다. 학급일기 ‘선생님의 눈 속에’는 선생님과 제자들과의 12년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든 역사서인 셈이다. 동료교사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나면서 애독자들도 점점 늘고 있단다. 도입 첫 해, 유독 힘들었던 하루 일과를 마치고 ‘공기마저 무겁다’라는 제목의 푸념 섞인 일기를 쓴 날. 선생님을 위로하는 반 아이들의 사랑스런 댓글이 순식간에 달리기 시작하더란다. 구 교사는 “다음날, 교실에 들어서면서는 어제의 그 무겁던 마음은 씻은 듯 사라지고 여느 날보다 더 활기차고, 힘차게 아이들과 아침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라면서 웃었다.

  “처음엔 자신들만 일기 쓰는 것에 억울해 하는 아이들을 위해 ‘그러면 선생님도 쓸게’ 하면서 시작했어요. 제가 먼저 일기를 쓰고, 댓글로 소통하면서 저의 마음과 아이들의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었고, 그렇게 쌓인 마음들이 모여 두툼한 책으로 엮일 수 있었던 거죠.”

  약산초교로 오기 전 졸업생 제자들과 ‘소울앙상블’ 오케스트라를 창단, 지휘를 맡으면서 인천지역 병원과 복지원 등에서 재능기부활동에도 열심히 참가해 온 구수진 교사. 요즘도 주말이면 캄보디아에서 유학 온 소금과 빛 국제학교 학생들을 돕느라 바쁜 일정을 보내는 중이다.

  “우리나라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듯이, 앞으로 시간이 허락하면 해외 교육봉사활동에도 적극 나설 계획입니다. 그곳의 아이들과 프로젝트 토론수업도 하고, 뮤지컬 공연도 하면서요.”

  늘 ‘긍휼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구수진 교사의 Non Sibi 교육철학은 현재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세계로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2007년부터 아이들과 함께 써온 ‘온라인’ 일기를 엮은 학급일기. 아이들과 구 교사의 12년간의 삶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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