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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학 성호고등학교 교사 학교 혁신을 꿈꾸는 ‘현장교육 실험가’

글_ 편집실

 

벽화가 그려진 교정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김영학 교사

 

그를 일컬어 누군가는 ‘현장교육 실험가’라고 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를 알고 있거나 이야기를 나눠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학교 혁신을 꿈꾸며 그 아이디어를 구하고자 밤낮으로 고민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가히 ‘실험가’라 부를만하다. 김영학(47) 경기 오산 성호고등학교 교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를 동료 교사와 나누며 교육 현장에 긍정의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무리 우겨 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똥 무덤이 내 집인걸♪♬
  성호고 1층 과학실 문을 열자 흥겨운 노랫소리가 기자를 반긴다. 폭우로 인해 30분 단축 수업이 진행된 이 날, 흐린 날씨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아이들은 어느 때보다 활기찼다. 고2 ‘생명 과학Ⅰ’ 교과 시간. 혈액 간 수혈 관계를 배우기 전 「개똥벌레」 노래를 개사한 ‘혈액형송’이 웃음부터 자아낸다. ‘A형 응집원 A형 응집소 베타(β)♬ O형은 응집원 없고요. 응집소 알파(α) 베타(β)♪’ 딱딱한 과학시간을 노래로 즐겁게 시작하며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노래를 보르는 이가 김영학 과학교사다.
  “단원마다 활동에 필요한 개념을 노래로 만들어 부릅니다. 한 단원을 마치고 모둠별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수행평가를 했는데 아이들이 즐거워하더군요. 그 이후로 쭉~ 부르고 있습니다.”
  인터뷰 요청에 “수업 먼저 보고 얘기 나누자.”고 권한 그는 누구에게나 교실 문을 활짝 열어 놓기로 유명하다. 교내 메신저를 통해 동료 선생님들을 자신의 수업에 초대하는 습관은 1995년 교단에 선 이후부터 20여 년이 넘도록 실천하고 있다.
  “내 수업을 공개하는 것은 수업을 더 잘하기 위한 노력이지요. 함께 보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더 좋은 수업, 더 나은 수업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김 교사는 수업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어디라도 적어 놓았다가 쉬는 시간 동안 컴퓨터에 저장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다. 그렇게 아이디어를 기록하고, 수업에 적용하고, 분석해 수정하고, 다시 적용해 보길 20여 년. 그는 기나긴 그 과정이 마치 “임상실험 같다.”고 했다.

 

20여 년간 함께 써 온 ‘공동 수업일기’


  “사범대가 아닌 교직 이수로 교단에 서게 됐어요. 내가 과연 잘 가르치고 있는지 더 알고 싶었고, 그간 내가 해온 수업들을 꼼꼼히 기록해 온라인에 올리기 시작했죠. 자신의 수업을 끊임없이 내보이고, 평가받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 교과 전문성 향상의 중요한 핵심 요소라고 생각했지요.”
  1999년 교단에 선 지 4년째 되던 해, 그는 ‘재미있는 과학수업 만들기(www.sedu21.com)’란 이름으로 누리집을 개설했다. 그리고 수업은 물론 학급운영을 비롯해 학교에서 무엇이 이뤄졌고, 왜 실패했고,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꼼꼼히 ‘기록’으로 남겼다. 이를 위해 컴퓨터에 해당 파일을 항상 열어 놓고, 잊을세라 쉬는 시간 10분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모든 교수학습 자료를 촬영한 수업 동영상과 함께 홈페이지에 올려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정보로 만들었다.
  그렇게 한두 해가 지나자 점차 입소문을 타고 동료 교사들이 모이더니,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전국 5만여 명의 중등 과학교사 가운데 약 7,600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루 방문객 수만 1,000여 명. ‘이럴 땐 이런 말’ ‘과학행사 아이디어’ 등의 공유 공간에서 교사들은 다양한 문제 상황을 논의하고 해결 방안을 공동으로 모색한다. 그래서 그는 ‘재미있는 과학수업 만들기’를 온라인상에서 동료 교사들과 함께 쓰는 ‘공동 수업일기’라 부른다.
  “아이들이 방학 때 집에서 해 볼 수 있는 활동으로 태양계 모형을 직접 만들어 보게 한 활동을 공유했어요. 이 글에 한 선생님은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학원에 다니는 점을 착안, 보름간 달을 관찰하는 과제를 수행평가로 했다는 경험담을 건네주셨지요.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재차 확인한 것은 ‘수업에 대한 논의하는 시간들이 꼭 필요하다.’
‘아이디어의 공유가 있을수록 더 좋은 수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학생 참여형 과학 강연 ‘쉽게 설명하지 못하면 알지 못하는 것이다!’과 같은 과학 행사나 교내 생태지도 만들기, 인체 기관의 통합적 이해 등 장기 프로젝트 활동의 참신한 아이디어도 공유의 힘에서 탄생했다.

대부분 모둠별 협동학습으로 이뤄지는 과학수업 시간

그가 아이들을 대할 때 철칙은 ‘비난하지 않기’와 ‘학생의 강점 칭찬해주기’이다.

 


함께 하는 교육이 만드는 힘
  ‘교육의 질은 교사 협업의 질을 넘을 수 없다.’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얻은 그의 믿음이다. 그간의 과정을 담은 『과학시간 종이 울리면』(2002), 『나만의 과학수업 만들기』(2009)를 출간하고, 각종 수업혁신 연수 강사로만 200회 이상을 다닌 연유는 여기에 있다. 경기도과학교육원 연구원으로 근무 당시에는 ‘과학수업 아이디어, 함께 나눠요’ 행사를 3년간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전국 600명 이상의 교사를 대상으로 수업 전문성 향상을 위한 나눔에 나섰다. 2011년에는 한국 학교 현장에 적용한 탐구활동 사례를 NSTA(The National Science Teachers Association, 전미과학교사협회)에 발표하고, ‘동아시아 과학교육(Science Education in East Asia)’ 저서의 공동 저자로 한국 교사 국외연수 프로그램의 내용과 그 교육적 효과를 전 세계에 소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교사 협업 플랫폼을 구축하고 교사전문성 향상을 위해 노력한 공적으로 2018년 제7회 대한민국 스승상을 수상했다.
  “지자체 지원으로 7일 동안 핀란드 초·중등학교 10개교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어요. 방문한 학교마다 아이들에게 꼭 던졌던 질문이 있습니다. ‘핀란드 교육이 왜 좋다고 생각하나요?’ 공통된 답변이 있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선생님이나 학교가 어떤 방식으로든 도와줍니다.’였어요. 이는 교사 한 명의 열정과 노력만으론 한계가 있어요. 교육의 주체들이 함께 고민하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교사로 근무하면서 ‘교육공동체 대토론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잠자는 교실, 어떻게 깨울까’, ‘교사상처 없는 행복한 학교 만들기’ 행사를 기획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난해부터는 교내 과학교사들과 틈틈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수업 옹알이’ 모임을 만들어 교사들과 교육 실천을 함께하고 있다.
무엇보다 생명과학 교사로서 배움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하고 있다. 2010년에는 경기도교원장기유학과정에 선발돼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원에서 학업에 매진하고, 교육부 주관 교사 국외연수 교원 전문성 개발 프로그램의 현지 연수 운영 코디네이터 역할을 수행하며 교사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키웠다. 그 이듬해 11월에는 중미 코스타리카 열대우림 현장 연구에 참여해 ‘일꾼 개미 행동 연구’를 수행하고, 그 연구 결과를 탐구활동 자료로 제작해 과학탐구 수업에 적용했다.

 함께 만드는 수업 과정을 통해 집필한 저서들

교실 복도를 따라 전시된 학생들의 학습 결과물

 

‘왜?’가 좋은 선생님… 실천연구를 꿈꾸다
  “가장 좋아하는 말은 ‘왜?’입니다. 아이들이 ‘하나도 모르겠어요.’라는 말이 오히려 좋아요. 여기서부터 배움이 시작되기 때문이지요. 부끄러워하고 숨는 게 아니라 모르겠다고 하는 그 자신감을 사랑하지요(웃음).”
  그가 아이들을 대할 때 철칙은 ‘비난하지 않기’와 ‘학생의 강점 칭찬해주기’이다. 자유롭게 아이들이 떠들도록 하는 것이 그만의 노하우라고.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가고, 합리적 의심을 하는 수업을 ‘좋은 수업’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그의 수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이들은 스스로 만들어간다. 시간기록계를 이용해 물체의 속력을 재는 활동을 해보다 대부분 학생이 종이테이프에 찍힌 타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자 아예 한 시간을 ‘돌돌이 실험장치 탐구’라는 주제로 시간기록계 기록 장치를 갖고 노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개념 이해를 위한 교과서 실험이 아니라 직접 탐구 주제를 정하고 “눈감고 줄넘기를 하면 심장이 더 빨리 뛸까?”를 실험했다. 학교 화단의 생태지도를 그리거나 가상의 생물을 만들어 보는 과제에서 아이들은 잠재되어 있는 창의성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교육 현장의 문제점을 교사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하는 ‘실천연구’가 중요합니다. 교실의 문제 상황에 대한 고민과 작은 대안을 만들어 세상에 공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실천연구를 하는 교사들이 늘어날수록 교직은 전문가집단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최근 제 고민은 단위학교에서 교사 공동체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교사의 ‘자발성’, ‘열정’을 중요시하는 그는 오욱환의 『교사 전문성』, 마이클 풀란의 『학교를 개선하는 교사』 두 권을 초임교사에게 꼭 권하고 싶다고 했다. 교사 스스로 열정적으로 연구하기를 바라는 선배 교사로서의 경험과 협동적 학교문화 만들기에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리라’ 기대하며 교육협업의 임상실험은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지난해 11월 ‘재미있는 과학수업 만들기’ 현장실천 사례 나눔 세미나

중미 코스타리카 열대우림 현장 연구에 참여한 김 교사

그는 ‘마을과 함께 하는 과학 축제’를 10회 이상 직접 기획하고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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