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 편집실
뭔가 평범하지 않다. 누군가를 ‘도깨비’에 비유할 때는 남다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까. 오래전부터 ‘도깨비’로 불린다는 이 사람.
정애경(61) 서울국제고등학교 교사를 지칭할 때는 “항상 도전하고 깨어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모두가 도깨비가 됐으면 좋겠다.”는 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온 정 교사의 작은 바람이기도 하다.
꿈꾸는 교사를 위해 NGO 대표가 되다
“오는 8월에는 몽골로 교사 연수를 떠납니다. 9월부터는 네팔과 라오스에서 활동하기 위한 사전교육을 12월까지 하고요. 이듬해 1~2월에 네팔과 라오스로 떠날 예정입니다.”
정애경 교사의 스케줄은 이미 내년 상반기까지 꽉 차 있다. 방학이 시작되기 전부터 해외 일정은 매년 빼곡히 잡혀 있다. 교육개발협력 NGO인 세계시민교육연구소 대표. 그의 명함에 적힌 또 다른 직함이다.
“교사가 교사를 돕고 지원하는 교육개발협력 NGO입니다. 한국의 교사들을 비롯하여 아시아 교사들의 협력이 상생의 아시아교육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 모였지요. 교사들도 국제이해와 세계시민으로서의 역량을 갖추기 위해 국제 교육자원 활동을 통한 교육리더십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우연히 참여한 몽골 울란바토르 녹화사업은 그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었다. 고비사막을 자전거로 타고 넘은 그날 이후, 세상을 향해 열린 그의 마음은 2002년 경희대 NGO대학원에 진학해 더 깊은 공부로 이어졌다. 대학원 인턴십으로 참여한 케냐 북부 수단 난민촌에서의 구호활동은 그에게 해외 교육봉사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했다. 아이들이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길러지고 있는 모습이 교사인 그의 눈에 뼈아프게 남았기 때문이다. 이후부터 그는 아이들과 함께 해외 교육봉사 활동을 다니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해외봉사단체 코피온(COPION)의 청소년 해외봉사 인솔교사로 활동하면서 방학마다 공적개발원조(ODA)를 필요로 하는 아시아 국가를 방문했다. 학생들에게는 개발도상국의 문제를 이해하고 상생의 필요성을 배우는 좋은 기회였지만, 그에게는 매회 같은 지역과 학교를 방문하는 일보다 “현지 학교의 자생력을 키우는 발전적인 방안”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이어졌다. 이후 보다 본격인 활동을 위해 교사들과 힘을 모은 결실이 바로 세계시민교육연구소다.
서로 배우는 나누는 국제 ‘교육자원’ 활동
“우수한 교사로 평가받던 선배 교사가 35년 경력을 뒤로하고 명예퇴직을 신청하셨어요. 자신의 젊은 시절을 모두 바쳤지만 교육 현실에 실망하며 돌아서는 모습을 보고 우리 교사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컸지요. 교사들은 원래 배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열어주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눈을 떴으면 하는 바람도 컸어요.”
그래서 세계시민교육연구소는 ‘꿈꾸는 교사, 행동하는 교육공동체’를 추구하고 있다. 더 나아가 아시아 교육공동체를 구축하는 일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여기에는 85명의 교사 외에도 학부모, NGO 단체를 포함한 총 120여 명이 회원이 되어 함께 뛰고 있다. 온라인 카페 회원까지 하면 500여 명이 훌쩍 넘는다.
이들은 네팔, 라오스, 몽골 3개국을 중심으로 국제 교육자원 활동을 펼친다. 도움을 주는 ‘봉사’를 넘어 서로 배우고 나누는 ‘교육자원’ 활동이다. 네팔에서는 네팔 교사와 학생들과의 워크숍과 협력수업을, 라오스에서는 예비교사들을 위한 교육적 전문성 지원을, 몽골에서는 몽골교사의 교육역량 강화를 위한 워크숍을 연다. 지난해에는 몽골 교육부 산하 교원능력개발원과 협약을 체결하고 체계적인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라오스는 사회주의 국가라 방문조차 쉽지 않았어요. 라오스 교육부 장관을 직접 만나 우리의 계획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했지요. 영어 의사소통에도 제약이 많아 사범대 예비교사들부터 먼저 만나가고 있어요.”
네팔에서는 엄홍길휴먼재단의 네팔 휴먼스쿨을 중심으로 사제동행 국제 교육자원활동이 이뤄진다. 학교를 세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학교 운영을 위한 소프트웨어도 중요하다.”는 데 서로 뜻을 모았기 때문이다.
세계시민교육연구소 활동 결과 자료집
몽골교사 교육역량 강화 워크숍
정 교사가 집필자로 참여한 세계 시민교육 교과서를 들고 있는 서울국제고 학생들
세계시민교육연구소는 교원봉사단을 발족하고 자원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케냐 난민 구호활동 당시 말라리아로 후유증으로 오른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었다. “죽다 살았다.”면서도 그의 열정은 더 커졌다.
이해와 공감에서 시작하는 세계시민교육
현지의 호응은 매우 높다. 오는 겨울방학에는 라오스 교사와 수업 배틀(?)도 약속돼 있다. “한국 교사의 전문성이 무조건 우수하지 않다. 최소 6개월의 교육과정부터 파악하고 만나자.”는 너무도 당당한 라오스 영어교사의 모습을 통해 반성적 성찰과 상호존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것을 계기로 양국의 교육과정을 진지하게 연구하며 진정한 자원활동으로서의 의미까지도 되새기고 있다.
사제동행으로 떠나는 학생들도 서로 간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 몽골에서 양국 학생이 함께 연극무대에 오르기로 한 날, 예기치 않은 갈등이 벌어졌다. 한국 여학생이 입어야 하는 몽골의 전통의상이 노출이 심해 여학생이 “입지 않겠다.”며 울었고, 그 사실을 안 양국 남학생끼리 격한 말이 오간 것. 정 교사는 아이들에게 함께 문제를 풀어보라고 요청했고, 아이들은 모여서 토론한 뒤 서로 사과하며 더욱 친해지게 됐다.
“세계시민은 이해와 공감에서 시작합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생각을 받아들일 줄 알고, 서로 간 공감을 통해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면 하나라는 공감대가 생겨납니다.”
해외 교육자원 활동을 할 때도 3개월간 사전교육을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방문하는 나라 사람들의 삶에 대한 성찰과 문화 이해 교육이다. 매회 자비를 들여 16명 정도의 교사가 떠나는데, 돌아온 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세계시민교육은 더 큰 효과를 보여준다. 별도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보다는 수업 안에서, 아이들의 일상생활에서 스며드는 교육으로 이뤄진다. 국어를 가르치는 정 교사는 수업 시간, 한국 문학뿐 아니라 베트남, 몽골 등 아시아 문학도 다룬다. 특히, UN 기념일이 있는 달에는 두 기념일을 정해 5차시 수업을 한다. 올 3월에는 세계 여성의 날(3.8)과 세계 물의 날(3.22)을 맞아 여성과 물에 관한 글로벌 이슈와 문제들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는 활동을 진행했다.
특히, ‘평화의 동화책’ 수업은 미래의 아들·딸에게 읽어줄 동화책을 만드는 고3 학생 대상 수업이었음에도 호응이 높았다. 동화책에는 나와 다른 이에 대한 이해와 화해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한 남학생은 발표하면서 울음을 터트렸다.”며 나와 너 우리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교사들은 아시아 국가와 협력수업 등을 통해 국제 교육자원활동을 펼진다.
봉사로 세계로 나아가는 교육자의 길
이 외에도 그는 고등학생, 대학생, 학부모 대상 세계시민교육과 국제이해교육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서울 초·중등 국제이해교육연구회와 서울 초·중등 세계시민교육연구회 등 교사들이 세계시민의식에 대한 전문성을 가질 수 있도록, 그리고 교사의 자기개발을 통해 학생과 교육 현장의 변화도 이끌어 낼 수 있는 교육공동체 형성에 힘을 쏟고 있다.
“사람 존중 사회, 사람이 귀하게 여겨지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교육을 통해 이루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는 1981년 교단에 선 이후부터 결손 가정의 학생 정서지도에 힘을 쏟으면서 휴먼에듀 활동을 펼쳐왔다. 이후에도 봉사 지역네트워크를 조성하고 학교 단위 봉사지원기구를 만들어 학교-가정-사회의 삼위일체 봉사릴레이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런 시스템을 정착하기 위해 봉사활동 전 사전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봉사활동을 봉사학습의 차원으로 접근하고, 1990년대부터는 세계화 물결에 동행하면서 세계시민교육을 이어오고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던 교육자의 길, 봉사로 세계로 향하는 그의 삶에 나이테처럼 새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