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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밥에 담긴 사랑으로 마음의 빗장을 열다

손혜진 서울 휘경공고 전문상담교사

 

학생들의 결석률은 낮아지고, 교실수업 환경이 좋아지면서 학업성취도는 올라갔다.
학기 초, 생기를 잃었던 아이들의 표정은 환하게 밝아졌다.
이는 서울 휘경공고 손혜진 전문상담교사의 아침밥 함께 먹기 아이디어,
곧 선생님들의 사랑이 아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녹이면서 일어난 작은 변화였다.

 

1. 정성이 담긴 아침밥과 함께 인사를 건네는 손혜진 전문상담교사

 


  지난 12월 15일, 서울 휘경공업고등학교(교장 추교수) 본관 2층에 있는 교사식당. 오전 7시 30분 이른 시각인데도 학생들이 삼삼오오 식당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침밥을 거른 채 등교한 학생들이 이곳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다. 컵밥(매주 금요일, 사회적 기업으로부터 후원받는다), 국수, 떡볶이, 빵 등 학생들의 입맛에 맞춘 4가지의 메뉴가 차려졌다. 마침 때 이른 동장군의 기세가 좀처럼 꺾일 줄 모르던 날. 따끈한 국물을 찾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노릇하게 구워진 빵과 잼을 찾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런 학생들 사이로 앞치마를 두른 채 분주히 오가며, 반가이 아침인사를 나누는 사람, 바로 손혜진(36) 전문상담교사다.
“매일 아침 만나서 함께 밥을 먹다 보니 아이들의 얼굴 표정만 봐도 ‘아, 오늘은 저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겼구나!’ 금세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죠. 그렇게 하다 보니 학생들의 사소한 다툼 등 교내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예방하고, 미리미리 대처해 나갈 수 있는 힘도 생겼고요.”

 

2. 학생들 입맛에 맞춘 아침밥 메뉴

 

 

“휘경공고 아이들이 달라졌어요!”
  매년 학기 초면 휘경공고에는 학업성취 등 무력감에 빠지는 아이들이 유독 많았다.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다 보니, 결석률도 늘어나기 일쑤였다. 그런데 2017년 한 해, 그런 아이들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얼굴 표정도 환하게 밝아졌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표정과 몸짓에선 다시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자그마한 희망도 읽혀졌다.


  입학 후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전 교사가 직접 찾아가서 상담했던 지난 3월과 4월. 자신의 방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은 채, 게임에만 매달리는 영민이(가명)를 손 교사가 처음 만난 것도 바로 3월이었다. 끼니를 거르며, 게임에 빠진 영민이에게 “학교에 나와 선생님과 함께 아침밥 먹자”며 설득해 보길 몇 차례. 그의 친구를 통해 연락하고,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까지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 터였다. 그렇게 3일째 되던 날 아침, 손 교사가 일하는 위클래스 상담실 문을 활짝 열고, 자그마한 체구의 그 아이, 영민이가 들어왔다.


  “처음에 샌드위치를 나눠먹으면서 상담을 시작했죠. 떡볶이가 먹고 싶은 날엔 집에서 냄비까지 들고 와 떡볶이를 만들었고요. 그렇게 아침밥을 먹으면서 학생들과 상담을 시작한 지 한 달여. 위클래스에 아침밥 먹으러 오는 학생 수가 40∼50여 명으로 늘어났어요.”


  빵이나 국수 등 식사준비 비용은 손혜진 교사의 사비를 털어야 했다. 그러나 이곳에 100여 명 이상의 학생이 찾게 되면서 학교에도 소문이 나고, 추교수 교장이 용단을 내리면서 따로 예산까지 책정이 됐다. 다른 선생님들도 십시일반,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12월 15일, 이날도 손혜진 교사 외에 여러 선생님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빵을 굽고, 배식을 도왔다. 또 손 교사가 직접 챙기던 식사 준비는 급식실 3명의 조리사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아이들에게 필요했던 건 자신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보듬어주는 사소한 관심이라는 걸 알게 됐죠. 학교에서, 혹은 가정에서 표현 못할 결핍을 느끼다가 마음으로부터 흡족한 사랑이 채워지니 아이들이 잃었던 생기와 웃음을 되찾기 시작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위클래스 교실 복도에는 오전 7시 10분부터 일찌감치 줄을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학생들이 늘어갔다. 은둔형 외톨이처럼, 혼자 지내던 영민이 역시 어느새 학교생활에 적응해 가며, 생기 넘치는 아이로 변모해 있었다.

 

3. 아이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붙여진 게시판. 그가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건네는 말이기도 하다.

 

 

학교 전 구성원의 치유 돕는 컨트롤타워
  학생들이 변화하면서 교실수업에서도 사제 간의 갈등이 해소됐다는 게 손 교사의 전언이다. 현재 흡연하는 학생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휘경공고의 자랑거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어느 날인가는 학교를 방문한 다른 학교 선생님이 손 교사에게 “휘경공고 아이들이 원래 이렇게 밝고 예뻤어요?”라며 물어오더란다. 또 수련회를 떠났던 어느 날, 학교자랑 코너에서 학생들은 “위클래스에서 함께하는 아침식사, 행복한 학교, 휘경공고” 등의 문구를 써 보내와 손 교사를 감동시켰더랬다. 이를 전하면서 손 교사는 “지난 1년 동안 학생들의 아침밥을 챙기면서 한 노력들이 아이들에게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었다는 게 무엇보다 큰 보람이었다.”고 소회를 들려줬다.


  손 교사는 학생들에게 종종 “선생님은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상담교사”라고 말하곤 한다.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더욱 씩씩해진 영민이와 또 다른 휘경공고 친구들처럼, 선생님의 마음을 받아주고, 또 잘 따라주었기 때문이란다. 전문상담교사의 역할이 나누고 베풀면서, 사랑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핵심이라는 본질을 새삼 일깨워준 아이들에게 요즈음 더욱 고마움을 느끼게 됐다는 손 교사다.


  “상담교사의 첫 번째 자격요건이 바로 아이들을 사랑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아이가 말하기 전에 미리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도 중요하고요. 교사가 바라보는 잣대에 따라 언제든지 대상자는 달리 보이게 마련이거든요.”


  손 교사는 2007년 이곳 휘경공고에 부임했다. 2006년 임용고사를 통해 이듬해 3월 발령을 받은 제3기 전문상담교사이다. 일찍부터 전문상담교사로 재직해온 만큼 이들에 대한 애착도 각별하다는 그다.


  “전문상담교사는 학생과 교사, 나아가 학부모까지 학교 전체 구성원의 치유를 돕는 컨트롤타워가 되어야 해요. 상담의 질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면, 소수의 학생에게만 초점을 맞추어서도 안 되고요. 상담교사는 학교 내 구성원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늘 확장시켜나가야 해요.”


  여기에 상담교사의 전문성으로 지목되는 항목 중 하나가 바로 인내심이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그러면서 들려준 일화가 방학기간 중 학부모들의 인내심 부족에 따른 사례였다. 학부모와 자녀와의 소통 부재와 인내심 부족에 따른 불협화음. 이 때문에 방학이 끝나면, 학교를 떠나게 되는 학생들도 종종 발생하곤 한다며 손 교사는 안타까워했다.

 

 

 

아이들에게 학교를 행복한 공간으로!
  “최근 들어서는 학부모들의 상담 신청도 점점 늘어나고 있죠. 상담을 하다 보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하는데, 아이들에 대한 이해보다는 비난이 앞서는 분들이 많죠.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하는데도 말이지요.”
가정에서 필요한 가족 구성원 간의 사랑과 화합, 상담을 하다 보면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는 손 교사. 요즘 가족이 해체되고, 가정 안에서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은 만큼, 학교가 그 아이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보듬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상담교사가 조금만 시선을 달리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더욱 많은 사랑과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죠. 사랑이 담긴, 상담 선생님의 한 마디 말이 아이의 미래를 변하게 할 수 있고요. 처음 샌드위치 아침식사로 제게 마음의 빗장을 열고, 상담에 응해 주었던 우리 휘경공고 아이들처럼 말예요.”


  손혜진 교사는 11년 전, 첫 부임할 때를 되돌아보면서 요즘 반성도 자주 하게 된단다. 혹여 학생의 입장이 아닌, 교사의 입장에서 예단하고, 주장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11년차 전문상담교사로서 꾸는 꿈은 “아이들에게 학교를 행복한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것.” 그리고 “학교가 행복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하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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