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웹진사이트입니다

행복한교육

정경열 대구논공초등학교 교사 “교사는 아이들이 행복할 때 가장 빛나는 사람입니다”

글_ 편집실

 

우리 옛 것을 소중히 여기는 정 교사는 평소 한복을 즐겨 입는다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라는 말. 언뜻 당연하게 들리면서도 이를 교단에서 실천하기란 실로 녹록치 않다. 그런데 여기, 지난 30여 년의 세월 동안 외길을 걸으며 이를 실천해 온 한 교육자가 있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좋은 교사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아버지는 교도관이셨다. 기억이 희미한 어린 시절부터 세상에 죄를 지은 이들의 이야기는 늘 귓가에 머물렀다. 어느 날, 느지막이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교도소에서 만난 한 청년의 이야기를 어린 딸에게 들려줬다. 순박해 보이던 그 청년은 아버지가 고위공직자인 집안의 자제였다. 공부를 잘하던 형과 늘 비교 당했던 그는 순간적인 분노에 휩싸여 형의 머리를 내리쳤고, 의도치 않은 죽음을 목격한 어머니마저 칼로 찔러 살해했다. 
  지은 죄는 너무도 무겁지만, 그 순간을 매일 자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린 딸 가슴에 내내 머물렀다. 늦기 전에 “마음을 위로하고 보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자라면서 점점 “행복과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커나갔다. 그렇게 성장한 그 딸은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무한긍정 썬파워’로 불리는 선생님, 정경열(54) 대구논공초등학교 교사는 지난 31년 4개월의 교직인생이 그 때 그 마음을 간직하며 걸어온 길이라고 회고한다.

 

 

교사는 사물놀이부를 이끌며 직접 지도한다.

지난 30여 년간 만난 제자들이 담긴 사진첩

 

직접 만든 인형을 들고 활짝 웃고 있는 6학년 담임반 아이들과  정 교사

논공초 4, 5학년은 사물놀이를 매주 1시간씩 배운다. 정 교사 부임 후 바뀐 변화다.

 

‘무한긍정 썬파워’ 선생님이 된 이유
  얼마나 오래 보고 또 봤을까. 두툼한 앨범의 등이 낡고 헤질 정도가 되려면. 이 빛바랜 앨범은 정 교사가 이사할 때도 제일 먼저 챙긴다는 ‘보물 1호’다. 사진첩에는 교생실습을 나간 날부터 지금까지 만난 제자들의 모습이 모두 담겨있다. 유독 힘든 환경의 제자들과는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오며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10년 상환으로 대출을 받아 전세금과 학자금을 지원한 승환(가명)이, 힘들고 위축될 때 탁구채를 쥐어줬던 경진(가명)이는 어엿한 탁구 코치로 성장했다. 이젠 43살이 된 제자가 그의 탁구 선생님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부임하는 학교마다 어려운 환경의 친구들이 많았어요.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을 만난 건 오히려 행운이라고 할까요? 비록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도 자신의 삶을 행복하고 충실하게 가꿔나가고 있지요. 이젠 만나서 술 한 잔씩 기울일 정도로 격의 없는 사이가 됐죠.”
   그는 한 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세파에 휘둘릴 때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안식처, 어린 제자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더 나아가 인생의 멘토가 되어주고 싶다고 한다.
  그동안 모아온 제자들의 편지들을 살펴보면, 그 노력의 일부분을 엿볼 수 있다. ‘학원에 다니는 모든 여학생이 예뻐서 공부가 잘 되지 않는다.’는 귀여운 고민부터 ‘사업이 어려워 힘들다’는 풀기 힘든 숙제까지 정 교사에게 털어놓는다. 그는 그 때마다 정성어린 답장을 쓰거나 새벽에 걸려오는 전화에도 언제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아이들 정서치유를 위한 푸드테라피 수업

 

학부모들이 만점을 주는 선생님 
  올해 만난 오혁(가명)이는 감정조절을 힘겨워 하는 아이다. 수업 시간에 갑자기 자리를 이탈하거나, 귀를 손으로 막고 괴성을 질러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정신적으로 병약한 어머니는 아이의 이러한 성향을 더욱 부추겼다. 정 교사는 아이와 눈을 맞추고 대화를 시작했다. 점심시간이면 함께 식사도 하고, 학급 친구들이 오혁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어느 날, 수업 발표 시간에 ‘연필이 없어졌다.’며 우는 오혁이를 모두가 어리둥절해 하자, 정 교사는 “연필이 없어진 게 오혁이에게는 정말 슬픈 일일 수 있어. 우리 모두 함께 찾아볼까?”라며 분위기를 가볍게 이끌었다. 아이들은 기꺼이 나섰고 결국 연필을 찾아 환하게 웃는 오혁이를 보며 모두가 기뻐했던 일은 그에겐 작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1년이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오혁이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은 달라졌고, 오혁이 또한 조금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게 됐다. 
  “오혁이 때문에 제가 행복합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이지만, 제겐 항상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이 아이들이 있기에 이 자리에 있는 제가 더욱 빛이 난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말 한 마디 안 하던 수진(가명)가 조금씩 말문을 열던 날, 수진이 어머니는 한 자 한 자 정성껏 그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수진이가 졸업이란 말만 하면 눈물을 글썽거린다.’며 ‘지난 1년은 수진이가 살아가는 방향 설정에 많은 도움이 됐다. 앞으로도 소심한 아이가 있으면 격려와 자신감을 주길 바란다.’는 감사의 마음이 가득 묻어나 있다. 그래서일까. 정 교사는 학부모 만족도 평가에서 매년 만점을 받고 있다.
  “아이들의 입을 막는 순간 모든 것이 사라져요. 무엇보다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언제든지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면, 아이들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요.”
  그는 2004년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상담활동을 통해 학교폭력 예방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지금은 여기서 더 나아가 대안교실에 관심을 쏟으며 ‘모든 아이’에게 다가서고 있다.

 

소외지역에 꽃 피운 문화예술교육  
  주변에선 그를 ‘천생 선생’이라고 한다. 예체능에 능하고, 배우길 좋아하는 성향이 초등학교 선생님에 ‘딱 맞다’는 것. 학창시절에는 부회장을 맡을 정도로 적극적이고, 중학교 사격선수로 전국소년체전에 나가거나 고등학교 때 배구선수로 활약할 정도로 운동신경도 뛰어났다.

교원극단 연극 ‘안티고네’에서 연기한 예언자 장

담임반 아이들과 만나면 10년 후 만날 약속으로 만드는 타임캡슐


  교대에 입학한 이후에는 취미로 태권도 동아리부에 가입해 지금은 공인 3단의 실력도 갖추고 있다. 학교축제 때 태권체조를 처음으로 만들어 발표하기도 했다고. 특히, 평소 우리 전통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판소리 명창인 이명희 선생님으로부터 판소리 흥부가를 지도 받으며 놀부전 공연도 함께 했다.
  이러한 그의 재능은 교직에서 더욱 꽃을 피웠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첫 발령지에서는 탁구부 아이들을 맡아 전국소년체전으로 이끌었고, 북부초등학교에서는 태권도 시범단을 창단해 1998년 미국 캔사스주 태권도협회 초청으로 시범 공연을 펼치기도 했으며 또한, 국악 활성화를 위해 방과후 가야금 병창부를 지도한 결과 아이들의 문화예술적 감수성은 더욱 풍부해졌다. 신서초등학교에서도 태권도부를 창단해 1년만에 전국소년체전에서 금·은·동을 휩쓰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논공초등학교에서는 사물놀이부와 연극부를 운영한 데 이어 지난해는 달성 다문화 어울림 소리단을 조직해 달성국악경연대회에 찬조출연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대구시달성교육청에서 주관하는 국악경연대회에 참여해 최우수상을 거머쥔 실력파들로 성장했다.

그동안 제자들이 보내 온 편지. 모두 모아 보관하고 있다


  “아침에는 차를 우려내고 아이들과 한 잔씩 마십니다. 토의·토론할 때 차를 가운데 놓고 이야기를 하면 다툼이 없어져요. 학급 내에 고자질도 사라지게 됐지요. 문화적 예술성과 감수성은 어릴 때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지난해부터 교육연극을 교단에서 실천하며 교사극단에도 직접 참여하고 있다. 아이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내보이는 데 교육연극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단다. “아이들이 화장하고 꾸미면서 자신을 솔직하게 내보이는 게 밉지 않다. 아이들이 쓰는 말을 함께 쓰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는 그는 요즘 진로교육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네 꿈은 뭐니?’에 머무르는 진로교육이 아니라 삶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꿈을 이루고 난 뒤 그 일을 하는 네가 행복한 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그는 좋은 교사는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1980년대 참교육 운동에 불씨를 지피며 교사운동에도 헌신했던 그는 “아이들로 인해 가장 빛나는 순간”이야 말로 교사다운 삶이며, 자신이 가야할 길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