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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대 홍성여자고등학교 교장 “교육자는 아이들 위해 노력할 때 행복한 사람”

글_ 황자경 본지 편집장

 

 

  은회색 곱슬머리에 그을린 피부, 짙은 눈썹 아래 웃음기 담은 눈매, 둥근 코 양옆으로 이어진 입 꼬리…. 시쳇말로 ‘만찢남’(만화책을 찢고 나온 남자라는 뜻으로 수려한 외모를 빗댐)이긴 한데, 장르가 조금 다른 만화다. 대마왕에 맞서 목표를 성취해 가는 명랑무협만화의 캐릭터처럼, 어려운 조건을 극복하고 학교를 주인공으로 우뚝 세워온 이가 유병대(60) 홍성여고 교장이다.

 

모든 교실로 찾아가 부임인사
  “귀신 잡는 해병대, 해병대 위에 유병대!”
  지난해 9월 1일자로 이 학교에 부임한 유병대 교장은 학생들과의 첫 만남에서 이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눈에 띄는 점은 유 교장이 일일이 교실로 직접 찾아가 부임인사를 전했다는 것이다. 마침 모의고사가 시행되는 날인 데다가 비까지 흩뿌리는 날씨라 학생들을 한데 모으기에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형식에 붙들리지 않는 유연함과 권위의식을 내려놓은 그만의 소통방식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소통은 정을 나누는 것입니다. 마음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학교경영은 교육공동체와의 소통이 중심입니다. 선생님들, 학부모님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특히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하려고 노력합니다.”
  유병대 교장의 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쉬는 시간이면 학생들이 수시로 교장실에 들러 초콜릿 등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서로를 바라보는 표정과 말투에서 친밀감이 묻어난다.

 

학교경영에 있어 교육공동체와의 소통이 중심이라고 믿는 유병대 교장은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하려고 늘 노력한다. 아이들에게 줄 아이스크림을 한아름 들고 가는 교장선생님

 

먹으면 美쳐! 함께 먹으면 완전 美쳐!’
교장실 테이블에 놓인 초콜릿 바구니엔 재밌는 글귀가 쓰여 있다. 누구라도 교장실에 들러 아름다워지는 마법(?)의 초콜릿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자는 메시지다.

 

일반직 공무원에서 아이들의 선생님으로
  유병대 교장은 경북 봉화 출생이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대전의 친척집에 머물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의 명문대 사대 진학에 실패한 후 재수는 꿈도 꾸지 못한 채 부산시 9급 공무원으로서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6년간(1978~1984) 부산시 남구청 산하 동사무소에서 8급 공무원으로 일하던 중 중학교 교사인 고교 동창생을 만나면서 접었던 교사의 꿈을 다시 펴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근무하던 친구가 제자들이 보내준 편지를 보여주기도 하고 교직에 대한 즐거움과 보람을 얘기하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열망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래 나도 대학을 가야 해. 나도 사범대학 시험을 보았었잖아. 꼭 선생님이 되는 거야.’라는 마음으로 ’84년 4월 사표를 내고 새벽부터 밤까지 죽어라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여 만에 공주사대 수학교육과에 합격했지요.” 당시 그의 나이 29세, 마침내 33세에 이르러 첫 교단에 서게 됐다.
  동화 같은 시간이었다. 충남 금산군 복수면에 있는 작은 시골 중학교에서 밤낮으로 아이들과 어울려 지냈다. 근무시간, 퇴근시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선생님을 필요로 할 때면 언제나 그 곁을 지켰다. 늦은 시각에도 아이들을 옆에 끼고 부족한 공부를 가르쳤다. 진심이 통해서였을까. 선생님의 숙직 날이면 아이들은 도리어 선생님을 지켜드리겠다며 숙직실로 모여들었다.

 

유병대 교장은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 한다’는 김제동의 말을 푯말에 새겨 들고 매일 아침 교문에서 학생들을
맞는다. 그는 현재에서 늘 행복을 느끼자고 강조하면서 매순간 최선의 노력을 다짐하고 실천한다.

 

잘 가르치는 교사로 우뚝
  유병대 교장은 잘 가르치는 교사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았다. 당진중학교 근무 당시, 경력교사와 신규교사를 연결하는 ‘초보와 중견의 의기투합’이라는 동아리를 조직해 수업 나눔에 앞장섰다. 동아리 회원들은 당진 군내 전 교사를 대상으로 매달 수업 공개에 나서는 한편, 기초학력부진 학생들을 위해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학습지도에 매달렸다. 유명 강사를 초청해 연수를 실시하고 지역의 문화탐방이나 밤샘 토론을 통해 교사들의 역량을 스스로 키워나갔다.
  교사의 혁신은 학생들의 실력으로 이어졌다. 학력 향상과 동시에 학교폭력이 사라졌다. 유병대 교사가 지도한 수학영재교육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충남과학고에 줄줄이 합격했다. 해마다 여러 명의 학생들이 과학고에 진학하자 ‘충남과학고 부속 당진중학교’라는 우스갯말이 나돌 정도였다.
  유병대 교장은 2005년 전문직에 들어선 이후 충남도 학력신장과 영재교육 등의 사업을 도맡았다. 어디에서나 마지막 한 방울의 땀까지 쥐어짜는 열정으로 학력향상도 전국 1위, 영재교육우수지원청(홍성) 선정 등의 성과를 이루어냈다.
“제가 시골 중학교 출신이고 첫 발령 역시 소규모 중학교에서 시작한 탓인지 작은 학교에서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교육을 마음껏 펼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침 2012년 천북중학교에서 교장 공모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했고 원 없이 노력한 시간이었습니다.”
  천북중학교와 유병대 교장은, 몸을 나누어가진 샴쌍둥이처럼 고락을 함께 했다. 유병대 교장의 교육적 역량을 총합한 천북중학교의 역사가 나날이 새롭게 기록되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유병대 교장

각종 부문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홍성여고

 

모든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 실현
  천북중학교는 한때 기초학력 미달학생이 많아 학력관리 중점학교라는 불명예를 안고 학교폭력이 끊이지 않던 학교였다. 전교생 50여 명의 작은 학교는 ‘1000 BOOK’ 프로젝트(해마다 50권씩 20년간 1000권의 양서 읽기)를 비롯해 1인3악기 연주, 단계별 융합체험학습, 지역민과 함께 하는 스포츠활동, 봉사의 생활화 등을 안착시켜 나갔다.
  “저의 교육 철학은 단 한 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고 교육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천북중학교의 모든 프로그램에는 ‘전교생’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들어갑니다. 전교생 체험, 전교생 봉사, 전교생 스포츠 등 작은 학교의 특성을 살려 한 명도 소외되지 않고 다 함께 참여해 기쁨을 나누자는 것이지요. 교육자란 한 명의 학생을 소중히 여기며 오직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유병대 교장은 학생들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발로 뛰며 지역사회와 유관기관, 이웃 학교의 화합과 협조를 이끌어냈다. 박토에서 생명을 길러내듯 쉼 없이 가꾸고 정성을 다한 시간이었다. 학교는 이윽고 생기를 뿜으며 결실을 만들어냈다. 2014 전국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에 천북중학교가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선정된 학교 가운데 교감이 없는 유일한 초미니 학교였다. 실사를 나온 심사위원들은 ‘동화 속 행복한 학교’라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어 2015 행복학교 박람회를 통해 교육계에 화제를 부르며 ‘작은 학교의 큰 기적’을 선보였다.
  “저에게 교육이란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들의 집합입니다. 매순간 최선을 다했고, 그것이 때론 나에게 다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아무 대가 없이 밤늦도록 가르쳐 과학고에 진학시켰던 제자가, 카이스트 학생이 되어 무보수로 내 아이의 수학 과외를 책임지겠다며 수개월간 애써주기도 했습니다. 천북중학교 시절엔 전학을 마다하고 날마다 3번이나 버스를 갈아타며 왕복 4시간을 등하교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사정을 헤아려 터미널에서 아이를 만나 차로 태워다 주었는데, 졸업식장에서 학부모님이 눈물을 흘리며 감사인사를 전해와 뭉클하기도 하였지요. 또 학생들과 종종 봉사하러 가던 지역 경로당 어르신들이 고마움의 뜻으로 손수 양말선물을 준비해 주셔서 벅찬 보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이 그야말로 행복이었습니다.”
  유병대 교장이 홍성여고에 부임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으나 벌써 여러 부문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등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유 교장은 출발선에 다시 선 팽팽한 에너지를 품으며 명문고의 위상을 드높이겠다는 각오를 내비친다. 여전히 그는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그러니 이제 2년 밖에 남지 않은 정년이 아쉽지는 않을까.
  정년 이후의 계획을 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퇴직하면 학교는 다시 뒤돌아보지 않겠단다. 다 쏟아놓고 가겠다는 이야기로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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