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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교육

류제일 아산북수초등학교 교장 "교사는 아이들 곁에 오래 머무는 사람"

글_ 황자경 본지 편집장

 

 

  햇살이 내린다. 아이들 뛰노는 운동장 위로, 말갛게 비치는 유리창 안으로, 교실 책상 위로, 걸음 아래로, 골고루 순조롭게 봄햇살에 젖는다. 두 뼘 흙에서도 작은 생명이 자란다. 쪼그리고 앉아 가만가만 들여다보면 우주만큼 신비롭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노래한 시인처럼, 아이들을 가까이 보는 것을 제일로 여기는 이가 있다. 아이들 사이로 햇살처럼 넉넉히 스며드는 류제일(62) 교장이다.

 

하루 종일 곁에서 봐야 아이들 이해


  그가 걸어온 교육의 길은 교실에 머물지 않았다. 수줍음 많은 아이들과 함께 땀 흘리며 운동장을 뛰었다. 축구골대가 출렁 대면 서로 손바닥을 마주치며 파이팅을 외쳤다. 학교 밖 개울가에 나가 물고기를 잡고, 고추장을 풀어 어죽을 끓였다. 관심 받는 일이 익숙지 않던 시골 아이들에게 류제일 선생님은 특별한 존재였다.
  “교사는 하루 종일 아이들과 살아야 합니다. 오늘은 무얼 하며 노는지, 기분은 어떤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아이들 곁에 있어야 알 수 있지요. 그래야 아이 한 명 한 명이 눈에 들어오고 각각의 특성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교육은 결국 개별적인 존재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류제일 교장에게 교육은 학생들을 변화시켜 한 단계 성장시키는 일이다. 성장은 당장 눈에 나타날 수도 있으나, 먼 훗날 삶의 어느 구비에서 솟구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교사는 학생들의 성장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노력을 다해야 한다.
  교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변화를 지레 예단하는 일이다. ‘올해 맡은 아이들은 별로야’라고 단정 지으면 이미 실패한 교육이 되고 만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학생들과 하루 종일 함께 하다보면 교사의 인간적인 매력이 학생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교사의 부족한 모습으로 인해 학생들의 변화와 성숙을 방해하는 불행한 일이 없어야 하지요. 교사 자신의 인성이 충만해야 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학생들의 변화를 이끌 수 있습니다.”
  올해 스승의 날엔 이미 중년에 접어든 옛 제자들이 찾아와 류제일 선생님과의 추억을 되새겼다. 제자들은 “저희와 함께 도시락을 먹고, 공을 차고, 어죽도 끓여먹으며 동고동락 해주신 분은 선생님밖에 없습니다.”며 감사를 전했다.

 

 

아이들과 더불어 지내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말하는 류제일 교장은 교감으로 재직하던 시절 사라진 특수학급 아동을 단박에 찾아내 가족과 교직원들의 놀라움을 사기도 했다. 평소 아이들 하나하나를 세심히 살펴온 터라 아이가 잘 다니는 길목과 장소를 알고 있었던 덕분이다.

 

 

교장실 탁자 위에는 항상 사탕바구니가 놓여있어 누구라도 교장실에 들르면 서 너 개씩 사탕을 받아간다. 학생은 물론,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류제일 교장은 1978년 교직에 첫발을 디딘 후로 40년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단 한 차례도 근무연한을 채우지 않은 적이 없다. 어느 학교에서나 5년을 꽉 채워야 근무지를 옮겼다. 더러 교통이 좀 편한 곳이나, 환경이 나은 곳으로 기회를 잡아 자리를 옮기는 동료교사들도 있었으나, 그는 지역특성과 아이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주어진 시간만큼 충분히 공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리자가 되기 전까지 28년간 교사로서 한 차례도 학부모의 민원을 받지 않은 비결은 어쩌면 지극한 ‘이해’가 전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류제일 교장이 교정을 거닐자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몰려와 손을 잡는다. 밝은 웃음소리에 파묻힌 류 교장의 모습이 환하다.

 

 

인성교육의 바른 길은 ‘사제동행’


  류제일 교장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인성교육에 주력해 왔다. 학생들이 아버지처럼 그를 따르며 바른 인성을 갖기를 소망했다. 초등학교 담임교사는 학생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한 그는 아버지와 같이 학생을 대하겠다는 각오로 인성교육에 매달렸다.
  “미래 사회에서는 지식보다 역량이 더 중요합니다. 교과지식을 단순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기관리역량, 창의적 사고역량, 공동체역량 등 핵심역량이 필요하지요. 이러한 역량은 바른 인성에서 비롯됩니다.”
  그의 인성교육 원칙은 ‘동행’이다. 교사가 학생들과 어울려 함께 체험하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시간을 공유하는 일이다. 필요할 때는 일일이 가정 방문을 통해 학부모와 더불어 아이의 장래를 고민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즐거운 학교 만들기에도 정성을 쏟았다. 아이들이 등교해서 하교할 때까지 학교가 즐겁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수업시간에 최소한 두 번 이상 노래를 부르거나, 교수·학습에 게임을 도입해 지루할 틈이 없도록 이끌었다.
“교사라면 누가 봐도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교육과정에서, 교수·학습활동에서, 생활지도에서, 학급경영에서, 학부모 및 지역사회와의 관계에서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교사는 학생들에게 사표가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의 말과 행동이 일치되어야만 학생들이 이를 배우고 신뢰합니다. 우리 학생들을 장차 훌륭한 재목으로 성장시킬 밑거름이 바로 지금 선생님의 모습입니다.”

 

 

우리 교장선생님 최고!”라며 아이들이 꼭꼭 눌러쓴 편지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류제일 교장은 교사 출신 학교장으로서 ‘교사들의 자율성’을 경영원리로 삼고 있다. 그 자신이 교사로 일할 때 교사의 자율성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감과 강력한 에너지를 동반하는지 느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과정 설계부터 특색활동 운영까지 교사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한다. 교사들이 고민하고 협의하여 제안한 내용이면 백 가지 가운데 아흔아홉 가지는 충청도 말로 “그류~” 한마디면 그만이다.
  “학교는 학생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활동을 지원하는 교무실·행정실·급식실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와야 합니다. 교직원들이 화합하고 즐거워야 아이들을 잘 교육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류 교장은 행정직원들이 교사의 업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사전 업무협의를 활성화하도록 유도했다. 교사와 행정직원 간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고 원만한 관계를 형성해 교육활동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서다. 또한 급식실 직원들도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직원행사에 모두 참여시켜 소속감을 높이고 유대를 강화했다.
  학교장이 되어 ‘학생이 즐거운 학교, 교사의 자율성이 존중되는 학교, 직원이 화합하는 학교’를 만들어가는 일은 큰 보람이지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경영자가 되고나니 아이들을 직접 대면할 기회가 적어졌다는 점이다.
  류제일 교장은 한 달에 한 번 강당에서 애국조회를 연다. 3~6학년까지 22개 학급 학생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노래도 하고 칭찬도 나누는 자리이다. 각 반에서 무작위로 한 명씩 연단 위에 세워 노래경연을 펼치고 류 교장이 직접 준비한 작은 상금도 나누어준다. 친구들의 노래솜씨도 만끽할 뿐더러 뜻밖에 상금을 받는 횡재도 있으니 아이들에겐 조회시간이 여간 기다려지지 않는다.
  아이들과 울고 웃는 가운데 어느덧 오는 8월 말이면 그는 정년퇴임을 맞는다. 짧지 않은 시간을 반추하니 명치끝에 걸리는 이름이 있다.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던 아이이다. 그는 가정까지 찾아가 진학을 권유해 보았으나 서울로 남의 집 살이를 보내겠노라던 부모를 더 이상 설득할 수 없었다. 그때 중학교 입학금만이라도 만들어주지 못한 것이 후회로 남는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앞에서는 칭찬 받지만 뒤에서는 손가락질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히 모범이 되어야 할 선생님의 뒷모습이 학생에게 귀감이 되지 않는다면 교육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겠지요. 지금껏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실천할 것입니다.”
취재진을 배웅하며 돌아서는 류제일 교장의 등 뒤로 봄햇살이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