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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근 재한몽골학교 이사장 - 한국과 몽골을 잇는 세계 리더를 키우다!

글 _ 편집실


  지난해까지 54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해낸 재한몽골학교에서부터 나섬아시아청소년학교, 한국베트남학교까지, 국내 거주 이주민 자녀들에게 끊임없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 오고 있는 유해근 이사장. 나그네를 섬기듯, 전 세계의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희망의 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그를 만났다.


유해근 재한몽골학교 이사장유해근 재한몽골학교 이사장



“이 시간에 학교 안 가고, 왜 여기 있니?”

“학교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어요.”

  1997년 말, 외환위기 직후의 일이었다. 경기불황에 문 닫는 기업이 속출하면서 끼니를 걱정하는 이들도 늘어나던 시기였다. 서울 광진구 강변역 인근의 무료급식소.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들도 하나둘씩 찾아와 이곳에서 점심을 먹곤 하였다. 인근 공장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였다. 이듬해인 1998년 1월, 강변역 인근의 협소한 지하 공간. 이 아이들을 따로 불러 모아 무료급식을 하면서 돌보던 이가 있었다. 현 재한몽골학교 유해근(60) 이사장이다. 8명의 아이에게 한국말과 노래 등을 가르쳐 주며 공부방 겸 놀이방처럼 운영하던 이곳은 이주노동자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숫자는 20명, 40명, 80명으로 금세 불어났다. 학생 수가 급증하면서 2005년에는 광장동의 컨테이너 가건물로 옮겼다가, 현재의 터에 자리를 잡은 건 2014년 9월. 초·중등부 12학년제인 재한몽골학교는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몽골의 교육부에서도 학력을 인정해주는 재외학교 첫 사례가 되었다. 



“모든 아이에게 교육받을 권리를!”

  “학생 수는 늘었는데, 어느 순간 아이들이 학교에 오다 안 오다가 하는 겁니다. 학력 인정이 안 되기 때문이었어요. 학교 인가를 받기 위한 절차를 서둘렀지요. 몽골에 가서 교육부 장관을 만났더니, 몽골은 아예 국외에 몽골학교 자체를 두지 않는다고 했어요. 대신 한국 정부로부터 인가가 나면, 몽골도 재외학교로 인정하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었지요.”

  재한몽골학교가 정규 학교 인가를 받기까지 2년이 소요됐다. 당시만 해도 학부모의 절반 정도가 비자가 없던, 비등록 노동자여서 인가가 쉽지 않으리라는 예상은 했던 터였다. 재한몽골학교의 인가는 곧 학부모의 불법체류를 묵인하는 셈이었다.

  “‘모든 아이는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명시한 「유엔아동권리협약」 조항을 들고 교육청을 다시 찾아갔죠. 1989년에 제정된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보면, ‘아동은 어른과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서 갖는 생존, 보호, 발달, 참여 등 기본적인 권리를 가졌으므로, 기본적인 삶을 누리는 데 필요한 권리를 가져야 하며 유해한 것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라고 규정해 놓고 있거든요.”

  당시의 ‘모든 학교는 운동장을 갖추어야 한다’라는 「교육법」 조항도 학교 인가의 걸림돌이었다. 컨테이너 가건물에 입주해 있던 당시로서는 운동장 구비는 말 그대로 사치였다. 유 이사장은 재한몽골학교 인근에 있는 모교인 장로회신학대학교에 운동장 공유를 요청, 그곳에서 학생들이 체육활동을 할 수 있게 했다. 마침내 2005년 2월, 재한몽골학교는 외국인학교로서 정식 인가를 획득할 수 있었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도 우리 아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유해근 이사장다문화가정의 아이도 우리 아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유해근 이사장



“나그네를 섬기고, 나눔으로 섬기고…”

  현재 이곳에는 이주노동자 자녀 외에도 주한몽골대사관 자녀, 기업인 자녀 등 입학생이 다양한 계층으로 확대되고 있다. 몽골에서 유학을 목적으로 온 학생들도 있다.

  재한몽골학교의 교육과정은 한국어와 영어 등 글로벌 인재로서의 소양은 기본이고, 몽골 교육부의 교육과정이 반영되어 운영된다. 말 그대로 몽골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몽골교육과 한국의 교육과정이 융합된 구조다. 지난해까지 이곳에서 배출한 졸업생은 모두 540여 명. 유 이사장은 “얼마 전에도 몽골의 재무부에서 근무하는 졸업생이 서울에 출장차 왔다가 학교에 다녀갔다.”라면서 졸업생 자랑을 하기도 했다. 

  “현재 주몽골 한국대사관에도 우리 학교 졸업생 3명이 근무 중입니다. 한국국제협력단에서 봉사하는 졸업생도 있고요. 졸업생들이 몽골로 돌아가 정부 부처나 주요 요직에 진출하여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뿌듯하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초창기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이주노동자 자녀들도 학교 교육을 잘 마치고 돌아가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직업군에 편입되어 일하고 있기도 하고요.”

  유 이사장은 “재한몽골학교는 이처럼 한국과 몽골을 잇는 충실한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라면서 “이 아이들이 장차 세계를 리드하는 지도자로서 성장해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자랑하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재한몽골학교 외에도 위탁형 대안학교로서 ‘나섬아시아청소년학교’도 운영 중이다. ‘나섬’은 ‘나그네를 섬기고, 나눔으로 섬기고, 나아가서 섬기는’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나섬공동체’에서 따왔다. 유 이사장은 이 나섬공동체의 대표도 맡고 있다. 지난 4월에 새로 출범한 한베학교(한국베트남학교)도 현재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교육프로그램 중 하나다. 평일에는 방과 후 온라인 기반 수업으로 영어와 베트남어를, 주말에는 학교에 나와 축구와 웹툰 등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 아이들이 즐길만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한베학교는 결혼이주여성의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해 5년 전부터 준비해 왔어요. 베트남인 어머니가 있는 아이들에게 어머니 나라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이해시키고, 그 나라의 언어를 배워야 할 이유를 일깨워주자는 게 목표입니다. 앞으로 방학 기간에는 아이들과 함께 캠프도 열고, 산업현장 견학도 가고, 여행자학교 프로그램처럼 1년에 한 번은 아이들과 함께 직접 베트남에도 다녀올 계획입니다.”



“전 세계에 학교를 세우는 꿈을 꿉니다”

  재한몽골학교와 나섬아시아청소년학교, 한베학교를 운영하면서 교육이 곧 자원이자, 교육의 힘이라는 것을 굳게 믿게 되었다는 유해근 이사장. 앞으로 터키와 베트남, 몽골, 인도, 우즈베키스탄 등 전 세계에 학교를 하나씩 세워야겠다는 또 다른 꿈도 꾸고 있단다.


유해근 이사장은 앞으로 터키와 베트남, 몽골, 인도, 우즈베키스탄 등  전 세계에 학교를 하나씩 세우겠다는 꿈을 품고 있다.유해근 이사장은 앞으로 터키와 베트남, 몽골, 인도, 우즈베키스탄 등 전 세계에 학교를 하나씩 세우겠다는 꿈을 품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구한말에 이미 이주민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호러스 G. 언더우드와 헨리 G. 아펜젤러라는 두 인물이 존재했어요. 두 사람은 당시 고아나 어린이들을 가르치면서 근대적 교육기관의 효시인 언더우드학당을,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을 세웠지요. 저 역시 이런 분들처럼, 세계 곳곳에 학교를 세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꿈꿔오곤 했지요.” 

  재한몽골학교 이사장실의 문을 열면, 정면으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지도다. 유 이사장의 이러한 세계로 향하는 ‘마음의 지도’가 구현된 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재한몽골학교의 경우 그동안 운영해 오면서 경영상의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지요. 특히 이주노동자 자녀의 경우는 교육정책의 사각지대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고요. 이 아이들이 지속가능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외국인학교지원법」 등 현실적인 정책적 지원이 마련돼야 할 때입니다.”

  국내 거주 외국인이 250만 명에 이르는 다문화 시대, “다문화가정의 아이도 바로 ‘우리 아이’라는 인식의 변화가 절실하다.”라고 강조하는 유해근 이사장은 지난 4월 6일, 포스코청암재단이 수여하는 ‘2022 포스코청암상 교육상’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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