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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4 - 캐나다 작은학교 유지 비결은 ‘지역사회 학교’와 ‘복식학급’

글 _ 황석하 부산일보 이슈기획팀장


  2020년 12월 교육 담당 기자가 되고 나서 전임 기자가 작성했던 기사를 훑어보던 중이었다. 그중에서도 학생 수 감소로 2개월 뒤 통폐합되는 한 초등학교 기사가 단연 눈길을 끌었다. 농어촌이 아닌 제2도시 부산에서도 문을 닫는 학교가 발생한다? 게다가 인근의 또 다른 초등학교는 2018년에 통폐합으로 먼저 사라졌다? 일련의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2021년 10월부터 11월까지 9차례 걸쳐 보도한 기획시리즈 ‘학교가 사라진다’는 그때 처음 구상한 것이다.


  첫 보도까지 무려 10개월에 걸친 취재를 이어가던 중 부산시교육청 소속 부산교육정책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으로부터 우연히 캐나다의 최동단,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지역의 작은학교 통폐합 갈등을 접하게 됐다. 또 작은학교를 유지하기 위한 복식학급(Multi-Grade Class)에 대해서도 전해 들었는데, 해당 위원이 그곳에 장기간 거주하면서 직접 본 것이기에 정보를 신뢰할 수 있었다. 때마침 이번 기획시리즈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획취재 지원 사업에 선정돼, 제작비를 지원받고 지난해 10월 초 캐나다까지 날아갈 수 있었다.



지역사회 학교의 본보기, 볼티모어 학교

  지난해 10월 5일 세인트존스에서 50km 떨어진 페리랜드의 한 학교에서 학교 관계자와 인터뷰가 예정돼 있었다. 취재 목적지인 학교는 아름다운 해안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학교 이름은 미국 메릴랜드주의 도시 볼티모어와 같은 ‘볼티모어 학교(Baltimore School)’였다. 


  당시 학교를 찾았을 때 학생들은 학교 식당에 모여 점심식사 중이었다. 볼티모어 학교의 재신타 맥그래스 교감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며 학교에 대해 친절히 설명했다. 볼티모어 학교는 학생 수 187명에 교사가 19명이다. 외딴곳에 있는 학교치고 학생 수가 그렇게 적지 않다고 볼 수 있지만, 알고 보니 ‘K-12 통합학교’였다. 유치원부터 초·중·고 과정이 모두 함께 있는 학교였다. 교사 한 명이 담당하는 학생 수는 10명가량. 맥그래스 교감은 이 때문에 볼티모어 학교의 교육환경이 ‘최고’라고 자랑했다. 


  볼티모어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 사이 상호작용이 뛰어난 것뿐만 아니라 교사들이 한 학생을 오랫동안 관찰할 수 있다. 유치원 입학 때부터 고등학교 과정을 마칠 때까지 말이다. 한국에서는 작은학교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같은 친구들과 지내기 때문에 사회성이 메마를 수 있다는 우려를 심심찮게 듣는다. 반면, 교사가 한 학생을 오랜 기간 지도하면서 학생의 성격과 자질을 누구보다 잘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에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맥그래스 교감은 이 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사들도 마을에 살고 있어 학생들이 상시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게 학생들에게 매우 유익한 일”이라고 말했다.


  볼티모어 학교는 학교를 개방해 지역사회와 함께 공존을 도모하는 ‘지역사회 학교(Community School)’의 좋은 본보기였다. 볼티모어 학교는 다양한 방과 후 과정으로 정평이 나 있다. 체육, 운동, 음악은 물론 탭댄스, 뜨개질에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하이킹, 낚시까지 매우 다채롭다. 교사 수도 얼마 되지 않은 작은학교에서 이 모든 방과 후 과정의 교사를 확보할 수 있었던 비결은 지역사회의 도움이었다. 방과후학교 자원봉사자만 120명이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이 지역주민과 학부모들이다. 지역사회에서 자원과 인력을 지원받아 교육을 이어가는 지역사회 학교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학교는 지역주민을 위한 모임, 운동 장소로도 제공된다. 연말에 볼티모어 학교에서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는데, 그때마다 지역주민들이 모두 함께 즐긴다. 학교가 자연스럽게 마을의 중심이 됐다.


  지역사회 학교는 학령인구 감소 시기에 작은학교를 유지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역사회 학교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다만 기존 작은학교를 지역사회 학교로 탈바꿈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개방성이 요구된다. 우리 교육당국이 가진 폐쇄성과 관료주의를 극복해야만 지역사회 학교 육성도 탄력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캐나다 뉴펀들랜드 래브라도주의  작은 마을 페리랜드에 있는 ‘볼티모어  학교(Baltimore School)’ 전경캐나다 뉴펀들랜드 래브라도주의 작은 마을 페리랜드에 있는 ‘볼티모어 학교(Baltimore School)’ 전경


방과후학교 과정 중 눈썰매를 타고  있는 볼티모어 학교 학생들방과후학교 과정 중 눈썰매를 타고 있는 볼티모어 학교 학생들



복식학급의 재발견

  재신타 맥그래스 교감은 학교 관리자이지만,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의 75%가 수업 진행이다. 볼티모어 학교를 비롯해 주변의 작은학교들은 교사 수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장, 교감 등 관리자도 수업을 한다. 볼티모어 학교에서 또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은 1개 학년 이상으로 구성된 ‘복식학급’이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도 농어촌 지역의 작은학교에서 복식학급 형태의 수업이 있다. 하지만 복식학급은 교사들을 지치게 하고 학업성취도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인식돼 반드시 해소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돼왔다.


  그런데 맥그래스 교감은 뜻밖에도 복식학급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그는 “유치원생과 1학년, 2~3학년을 묶은 체육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라면서 “어린 학생들의 경우 상급 학생이 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더 잘 배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맥그래스 교감은 “복식학급에서 가끔 잘 숙련된 고학년을 모델로 내세우는데, 이를 통해 학생들은 리더십도 기를 수 있어 유익하다.”라고 덧붙였다.


  사실 이 지역에서도 처음부터 복식학급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1967년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주정부는 왕립위원회(Royal Commission)를 설치하고 뉴펀들랜드 메모리얼대학교의 필립 워런 교수 주도하에 지역의 교육 실태를 조사하게 했다. 위원회는 “작은학교에서 학생들은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없고, 복식학급은 학업성취도를 떨어뜨린다.”라며 “작은학교를 통폐합하고, 통학 거리가 길더라도 학생들이 겨울의 빙판길을 걷는 것보다 버스를 타고 큰 학교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결론 내렸다.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수많은 작은학교들이 통폐합으로 사라졌다. 1960년대 800개 마을에 1,266개의 학교가 있었지만, 1980년대에는 307개 마을 535개 학교로 줄었다. 그럼에도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주에서 복식학급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해왔다. 1986년에는 주정부 교육부가 작은학교 조사를 위한 패널을 선정했다. 이번에는 같은 대학의 프랭크 릭스 교수가 주도해 이듬해 위원회와는 정반대의 내용을 담은 ‘작은학교 연구 프로젝트 보고서(Report of the Small Schools Study Project)’를 내놨다.


  릭스 교수는 “복식학급과 단식학급 학생들 사이에서 학업성취도 부문에서는 큰 차이점이 없었다.”라며 “학교 통폐합이 학업성취도를 향상시킨다는 증거도 없다.”라고 위원회의 주장을 반박했다. 학업성취도는 부모의 직업이나 소득, 학력 등 사회경제적 요소가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릭스 교수는 또 그동안 작은학교와 복식학급에 대한 교육당국의 무관심을 지적하면서 “2개 학년을 초과하는 복식학급을 제한하고 작은학교에 더 많은 교사를 배치하는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제안했다.


  복식학급의 장점은 여러 연구에서 발견된다. 같은 대학 교육학부 나딤 새클레인 교수는 ‘복식연령 교육의 총체적 고찰(A Comprehensive Look at Multi-Age Education)’에서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그는 글에서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단식학급과 복식학급 학생들의 학습 성과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보고했다.”라면서도 “우정 형성이나 자존감 향상, 자아 개념과 같은 비인지적 성취의 관점에서는 복식학급 

교육이 우수하다.”라고 언급했다. 해당 글은 또한 “복식학급 학생들은 단일학급 학생들보다 사회 기술을 더 잘 배울 수 있다.”라며 “협력 학습과 동료 튜터링의 개념은 학습자가 자신의 지식을 구성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된 경험을 통해 배운다는 레프 비고츠키(구소련의 교육심리학자)의 사회 건설적 이론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라고 역설한다.



지역주민과 학생이 함께 어울리는  볼티모어 학교 행사지역주민과 학생이 함께 어울리는 볼티모어 학교 행사



복식학급 적응을 위한 전문적 지원 필요

  현재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지역 전체 학교 수는 259곳으로, 학생 수는 6만 3천여 명이다. 이곳의 시골학교 159곳 중 93곳은 학생 수가 100명이 채 안 된다. 그동안 학교 통폐합으로 수많은 학교가 사라졌지만, 작은학교는 여전히 존재한다. 주정부도 작은학교를 100% 없애는 게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일부 지역에는 복식학급 등을 도입해 작은학교를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이 지역에서는 복식학급이 굉장히 흔한 교육 형태로 바뀌었고, 복식학급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개선됐다고 한다.


  결국 복식학급을 무조건 배척할 게 아니라 교사들이 복식학급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이에 맞는 교육과정으로 훈련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 한 교사에게 3~4개 학년을 떠맡기고 단식학급 교육과정대로 아이들을 가르치라고 하면 아무리 훌륭한 교사라도 무리가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한민국 교사는 수업뿐만 아니라 산더미 같은 행정업무까지 해야 하지 않는가. 


  메모리얼대학교 교육학부의 데니스 멀카이 교수도 교사의 훈련과 준비, 지원을 강조한다. 그는 1991년부터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지역의 작은학교와 복식학급을 연구해 왔다. 멀카이 교수는 “복식학급은 학교를 유지하는 데 유용하며, 지금은 이 지역 교사 대부분이 복식학급에 익숙해져 있다.”라면서 “교육당국과 교육기관에서 교사들이 복식학급을 맡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시키고 전문적 지원을 해주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캐나다의 작은학교 취재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이 바로 학령인구 감소시대를 대비한 준비와 훈련이었다. 물론 작은학교를 100% 다 살리는 것은 무리가 뒤따른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기계적으로 학생 수에 따라 학교 통폐합을 진행해 왔다는 점, 그 배경에는 경제적 논리가 우선시됐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결과는 가난한 지역, 소외계층 학생의 학습권이 침해되는 ‘교육의 불평등’이었다. 우리 교육당국은 인구 소멸 지역의 작은학교, 특히 복식학급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을까. 또한, 전국의 수많은 사범대와 교육대학 등 교원 양성기관도 미래의 교사들을 얼마나 잘 양성하고 있는지 돌이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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