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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이스키의 안식처 ‘방주’를 찾아가다

엄장수 명예기자


  오래되고 허름한 빌라 2층에 위치한 ‘방주’는 경기도 안산 선부동에 위치한 다문화 청소년 문화클럽이다.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날씨에도 이곳의 열기는 뜨겁기만 하다. 러시아 대안학교인 ‘노아네 학교’를 이끌고 있는 임현숙 대표가 비영리 민간활동 단체로 등록하여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는 ‘방주’는 러시아 대안학교를 5년여간 운영하며 느끼고 있던 고려인과 고려인 자녀의 불편을 해소하고 방과 후 활동을 지원하고 동아리 활동을 운영해 고려인들에 대해 애정과 관심을 통해 동포애를 고취하고자 시작했다고 한다. 불과 한 달여 만에 20여 명의 고려인 자녀들이 이 곳 ‘방주’에 모여들었다.

 

다문화 청소년 문화클럽 방주를 알리는 표지다문화 청소년 문화클럽 방주를 알리는 표지

 

  경기도 안산에는 고려인(카레이스키; 구 소련의 붕괴 이후 독립국가 연합의 국가들에 거주하는 한민족을 이르는 말)이 약 9,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선부 2동지역에 일명 ‘뗏골’이라고 부르는 지역과 한양대 안산캠퍼스 주변을 중심으로 삶의 터전을 잡고 있다. 대부분의 고려인은 외관상으로는 한국인과 흡사하지만, 사고방식은 일반적인 러시아인에 가깝고 언어 또한 1세대의 고려말을 사용하지 않고 러시아어 등 거주 지역의 언어만 이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들 고려인은 동포비자(F2비자)를 발급받아 할아버지, 할머니의 나라인 한국을 찾아왔으나, 언어의 장벽과 사고방식에 따른 편견에 부딪혀 소외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고려인 학생들과 토론하고 있는 임현숙 대표고려인 학생들과 토론하고 있는 임현숙 대표

 

  이에 러시아 대안학교 ‘노아네 학교’를 개설하여 지난 2015년부터 15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러시아 교과서와 러시아 교사를 통해 초.중.고 학생들의 수업과정을 진행하던 임현숙 대표가 일터에 나가는 고려인 부모의 자녀들과 한국에 적응하기 힘들어 하는 고려인 자녀를 대상으로 방과 후 활동을 열기로 결심하게 된 건 지난해. 러시아 대안학교는 러시아에 다시 정착하고자 하는 자녀들이 주로 이용한다면 ‘방주’라고 불리우는 이 곳은 고려인이 한국에서 소외나 외면 받지 않고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보다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1995년 쌍떼페트르부르크에서 유학한 이후, 경기도청에서 파견 교수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농업지역으로 고려인들이 많이 사는 볼고그라드에서 경기도청 파견 교수로 2년여에 걸쳐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해 강의를 하게 된 것이 러시아와의 인연이었다는 임 대표는 안산에서 파견 교수시절 제자들과의 만남 이후로 고려인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고려인들이 러시아로 돌아가서 한국이 너무 좋았고 한국에서 행복한 시간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한러관계의 중요한 외교 사절같다고 말한다.
  현재, 운영을 위한 지원은 대부분이 법무부 안산 법사랑위원회와 종교단체를 통해 나오고 있고, 비정기적인 지원이 가끔 있을 뿐 국가적인 지원은 현재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한국인 중에서는 자신밖에 없어 일이 너무 몰린다는 임대표는 부족한 지원도 지원이지만, 봉사자의 수가 절실히 부족하다며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기를 기대했다. 러시아어에도 능통한 전임강사는 높은 보수에 채용이 어려워 봉사자 중에서 뜻있는 분들이 삼삼오오 모여 방과 후 수업을 무료 봉사해 주고 있다. 그 중에서 국민체육진흥공단 기금조성총괄본부 시흥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윤성 차장과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았다.

 

자원봉사자 김윤성 씨(국민체육진흥공단 기금조성총괄본부)자원봉사자 김윤성 씨(국민체육진흥공단 기금조성총괄본부)

 

Q. ‘방주’에서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A.  몽골에서 2년여간 체류한 적이 있었어요. 다른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매우 어렵더라고요. 외국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이고,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작용하는 것 같아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분들께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바람에서 시작했어요.

Q. 고려인과 접하는 느낌은?
A. 연민이죠. 민족의 역사를 투영하고 있다고 봐야겠죠. 할아버지, 할머니 고향을 찾아 왔는데 삶이란 것이 녹록치 않다고 해야 할까요? 소외와 불이익을 받을 것을 생각하니 반가운 마음이 들다가도 가슴 한 켠으로는 답답했어요.

Q. 현재 수업을 함께 하고 있는 고려인의 한글 수준은?
A. 고려인 대부분이 초급 수준이고 글을 제대로 읽고 쓰기가 어려운 아주 간단한 의사소통만 가능한 수준이에요. 알아듣지 못할 경우에는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이 서로 알려주는 형태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어요.

Q. 어려운 점이 있다면?
A. 우선 보시다시피 환경이 열악하고 지원이 부족하다보니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도 처우가 열악해서 비용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사명감으로 가르치는 것도 한계에 부딪힐 수 있기에 걱정스러운 점입니다. 아시아 발전재단의 교재가 공개되어 있으나, 수업을 듣는 아이들의 수준이 고르지 않아 반편성에도 애를 먹고 있어요. 또한, 일제시대 독립투사의 후손 등에 대한 지원이 더 강화되어 혜택과 관심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2014년 전남 영광에서 학교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국어나 사회 수업을 시작으로 봉사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김 차장은 고려인들은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며 국민적 관심과 포용적 정책이 강화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고려인들이 한국어 습득을 통해 소통과 문화 체득을 하게 되면 한민족이며 하나의 국민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라며 힘주어 이야기했다.
  이 곳 방주는 올해 또 새로운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러시아 학교를 졸업하고도 상급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길거리를 떠도는 고려인 자녀들을 위해 직업전문 기술학교를 개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친 이들이 언어와 문화의 차이, 생활 습관의 문제로 인해 부적응의 길을 가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긴 임대표가 또다른 목표를 쓰고 가꾸어 가고 있었다.
  그는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나를 걸 만한 일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라며 많은 분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모든 것을 걸 만한 일을 찾기를 바란다면서도 열악한 재정과 지원속에서도 굳건히 이어온 자신의 지난날이 떠올랐는지 살짝이 눈물을 보였다. 더 이상 고려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임금체납이나 폭행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그의 고려인 사랑이 좋은 결실을 이루기 바라며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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